이제훈, 주연으로서의 최선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3.03.03 14:03
글자크기

'모범택시2'로 다시 한번 흥행 마법사 인증

'모범택시2' 이제훈, 사진제공=SBS'모범택시2' 이제훈, 사진제공=SBS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2'(극본 오상호, 연출 이단)는 이제훈이 연기하는 김도기가 더벅머리를 한 채 감옥에서 운동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머리카락이 얼굴의 절반을 덮었지만, 그래서 심중을 읽기가 더 어렵지만, 옹골진 입모양 하나만으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낸다. 의뭉스러운 아우라를 뿜으며 죄수 운송버스에 오르고, 미리 설계해 둔 장치로 버스를 전복 시킨다. 유유히 버스에서 빠져나간 그는 '야타족'처럼 어디선가 택시를 몰고 나타나 버스에 함께 타고있던 죄수들을 태운다. 그 어떤 강요도 없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사고로 경황이 없는 틈을 타 김도기는 죄수들을 움직이게 하고, 수면제를 탄 음료수로 축배까지 든다. 잠이 든 죄수들은 눈 떠보니 낯선 공간이다. 눈앞에 놓인 TV에선 그들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고 그제야 자신들의 상황이 곤란해졌음을 깨닫는다. 환경을 이용해 타깃의 심리를 흔들고 이에 따라 외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사람. 이는 김도기로 보여주는 이제훈의 모습이면서, 역할을 떠나 배우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의도나 역할에 따라 내외면을 바꿔 타깃(시청자)을 사로잡는 일.

하지만 '모범택시2'에서 보여주는 이제훈은 신출귀몰한 극적인 얼굴로 더 넓은 변화의 폭을 보여준다. 어수룩한 취업 준비생, 조직의 우두머리를 가슴 설레게 하는 마성의 남자,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촌티 풀풀 풍기는 시골 청년. 그리고 어떤 상대라도 단숨에 제압하는 특수부대 출신 택시 운전사. 여기서 끝이 아닌 더 다채로운 모습까지 예고됐다.



'모범택시2' 이제훈, 사진제공=SBS'모범택시2' 이제훈, 사진제공=SBS
'모범택시2'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속아 갇혀있는 여러 사람들을 목격했을 때, 그는 그들의 고통과 절박함을 함께 느끼며 눈빛을 일렁인다. 자신과 그 어떤 친분도 없지만 과거 자신이 겪었던 비극(연쇄살인마에 의한 어머니의 죽음)을 겹쳐내며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뜨거운 연민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모범택시' 시즌1부터 '무지개운수 크루'로 함께 호흡하고 있는 김의성은 "이제훈은 책임감이 너무 강하다. 그를 보면서 '주연은 따로 있구나. 저런 사람이 하는 거구나'라고 느꼈다"고 과거 인터뷰에서 말했다. 베테랑 배우 입에서 나온 인정 그 이상의 "주연은 따로 있다"는 극찬에서, 이제훈이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임할지 보지 않아도 그려진다.

1부 대본을 받자마자 첫장에 쓰인 '감옥에 있는 도기, 운동을 하는 모습'이라는 짧은 지문 하나에 "내 인생의 마지막 상의 탈의 장면이라 생각"하며 피땀 흘려 조각 같은 몸을 만들어내면서, 주연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시청자가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이제훈의 순수한 땀의 결과물이자, 주연으로서 책임감이 만들어낸 재미와 공감 100% 복수의 시간이다. '모범택시' 시즌1은 SBS 금토드라마 역대 4위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2년 여만에 돌아온 시즌2는 방송 2주차 만에 최고 시청률 13.2%라는 성적을 거뒀다.


'모범택시2' 이제훈, 사진제공=SBS'모범택시2' 이제훈, 사진제공=SBS
'모범택시2'에서 이제훈은 모험적인 시도를 모범적으로 해낸다. 복수 대상에 따라 안면을 바꾸는 '부캐'의 모습이 가벼이 나부끼지 않도록, 김도기라는 중심 캐릭터에서 차분하고 침착하게 균형을 잡아낸다. 줏대없이 실실대다가도 뒤돌아서 말투부터 눈빛, 미세한 얼굴 근육까지 확 바꿔버리는 모습은 자동차 전복 사고를 목격했을 때처럼 강한 잔상으로 강렬하게 시선을 빼앗는다.

영화 '도굴'을 연출한 박정배 감독은 이제훈을 두고 "괴물같은 배우"라고 말했다. 독립 영화계 아이돌로 불리던 시절부터 각종 영화와 TV 드라마 주연으로 활약하던 순간까지, 그는 연기라는 목표 앞에 한 순간도 대중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파수꾼'의 우울한 소년부터 '건축학개론'의 풋풋한 대학생, '무브 투 헤븐'의 겉바속촉한 상남자형 삼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포용한 수십가지의 얼굴을 담은 김도기까지. 드라마 한 편에서 수십번씩 안면을 바꾸는 '부캐'의 모습에서 시청자가 열광할 수 있었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이제훈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