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실책으로 시작되고 확대된 우크라 전쟁[PADO]

머니투데이 파이낸셜타임스 2023.03.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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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1년간 지속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예상보다 못한 러시아군의 '졸전'입니다. 전쟁은 한 나라의 국운을 결정하는 사안으로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 이후 혁명을 겪었고, 1차세계 대전 졸전 이후 공산혁명을 겪었습니다. 무모한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철군 이후 페레스트로이카를 걸쳐 소련 해체를 겪었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가 어떻게 될지, 전세계적 권력균형 지도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에 아직은 이릅니다만, 큰 변화가 분명 나타날 것입니다. 푸틴의 독단적 통치가 이번 전쟁과 관련해 어떻게 드러났는지 그 몇몇 장면을 2월 23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가 보도했는데, PADO가 전문 번역해 소개합니다. 이번 전쟁은 6.25 한국전쟁과의 유사성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이웃 국가인 러시아가 군사력과 정치적 지도력을 잃게 되는 경우 한반도 주변 권력균형도 바뀔 것이라는 점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요합니다.

(예레반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 (현지시간)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열린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의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예레반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 (현지시간)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열린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의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년 2월 24일 새벽 1시경,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심란한 전화를 받았다.

몇 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이 넘는 침략 병력을 집결시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침내 침공 명령을 내린 것이다.



라브로프는 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 푸틴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설픈 분위기에서 TV에 중계된 연방 안전보장회의에서 돈바스(러시아와 맞닿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산업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한 두 개 지역을 국가로 인정하는 데 대한 장관들의 견해를 물었지만 누구도 푸틴의 본심을 눈치채지 못했다.

소수의 측근과만 상의를 하는 경향이 있는 푸틴이 라브로프와 상의 없이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외교적 입지가 약화되는 경우에도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문제의 전화로 라브로프는 침공 시작 전에 러시아의 침략 계획을 알게 된 극소수의 일원이 됐다. 크렘린의 고위급 인사들은 모두 그날 아침 푸틴이 TV에서 '특수군사작전'을 선언하고 나서야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알게 됐다.

침공 선언 후 얼마지나지 않아 올리가르히(러시아 재벌-편집자주) 수십 명이 바로 전날 통보된 회의 참석을 위해 크렘린에 모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구의 제재가 들어오면 자신들의 제국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들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죠."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의 말이다.

회의를 기다리던 올리가르히 중 하나가 라브로프가 다른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걸 발견하고는 그를 찾아가 왜 푸틴이 침략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라브로프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가 회의에서 만난 크렘린 관계자들은 자기보다 아는 게 더 없었다.


충격을 받은 올리가르히는 어떻게 푸틴이 그토록 거대한 침략 전쟁을 극소수의 인사와 계획할 수 있느냐고 라브로프에게 물었다. 크렘린의 고위급 인사, 러시아의 경제 부문 관료, 러시아의 재계 엘리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 침공이 가능하리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에겐 세 명의 고문이 있어요." 그 올리가르히가 전한 라브로프의 대답이다.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 예카테리나 대제입니다."

멋드러진 전격전으로 러시아군이 유혈 사태를 최소화하면서 며칠 내로 키이우를 점령한다는 게 푸틴의 침공 계획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역사에 손꼽힐만한 규모의 수렁이 됐다. 1년이 지난 오늘날, 푸틴의 침략 전쟁으로 러시아군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미국과 유럽 관계자들은 평가한다.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던 전차, 포, 크루즈미사일은 대부분 소모됐다. 또한 러시아는 세계 금융시장과 서방의 공급망에서 격리된 상태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전쟁으로 푸틴이 자신이 모호하게 밝힌 목표인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와 '탈나치화'를 조금이라도 달성한 것도 아니다. 러시아는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크라이나의 영토 17%를 통제하고 있지만 전쟁 초반에 점령했던 지역의 절반 가량에서 퇴각했다. 러시아가 유일하게 통제하고 있던 주도(州都)급 도시 헤르손의 경우, 푸틴이 합병을 선언한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굴욕적인 패배와 함께 군대를 퇴각시켜야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무런 기약 없이 질질 끄는 가운데 푸틴은 아직까지 물러설 뜻을 비친 적이 없다.

지난 2월 21일 시정연설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라의 존망이 걸린 것"이며 서방이 그로 하여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강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전쟁을 시작한 장본인입니다. 우린 이를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침략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명백해진 와중에도 푸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현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그를 아는 이들은 말한다.

"수십만 명이 죽을 거라는 건 당초 계획에 전혀 없었어요. 끔찍할 정도로 엇나갔습니다." 러시아 전직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초의 계획이 엉망이 되자 푸틴은 전쟁을 계속 수행할 새로운 근거를 찾으면서 어쩔 수 없이 침략을 개시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다.

"푸틴은 측근에게 이렇게 말해요. '우린 전혀 준비되지 않았더군. 군대도 엉망이고 산업도 엉망이야. 하지만 이렇게라도 알게 되서 다행이지. 나토가 쳐들어왔을 때 알게 된 것보다야.'" 전직 고위 관계자가 덧붙인 말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의 오랜 측근 여섯 명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련된 인물,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를 통해 푸틴이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침공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후 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오히려 더 밀어부치게 됐는지를 살펴봤다. 민감한 사안이라 모두 익명을 전제로 답했다.

푸틴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전쟁을 시작한 이후 더욱 고립됐다고 한다. "스탈린은 악당이었지만 좋은 관리자였죠. 누구도 스탈린에게 거짓말을 할 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푸틴에겐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푸틴을 아는 한 사람의 말이다.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 소수의 사람만 신뢰하게 됩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나가라'
푸틴이 침략 계획을 가까운 참모들에게 숨긴 건 작년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름 반도를 빼앗았을 때 푸틴은 이를 국가안전보장회의에도 미리 알리지 않았다. 대신 크름 반도 병합 이후의 시나리오에 대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그리고 최고위 안보 관계자 셋과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밤새도록 논의했다.

처음에 참모들은 크름에 병력을 보내려는 푸틴을 만류하려 했다는 게 전직 러시아 고위 관계자와 전직 미국 고위 관계자의 이야기다. "푸틴의 반응은 이랬죠.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네. 동의하지 않으면 나가도 좋네.'" 전직 러시아 관계자의 전언이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을 악화시킬 것과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경제적 관계를 망가뜨릴 걸 우려한 서방은 러시아의 크름 반도 병합에 대해 솜방망이식 대응 밖에 하지 않았고 푸틴은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확신하게 됐다 한다.

2014년의 침략 이후 푸틴의 최측근 그룹의 크기는 한층 더 쪼그라들었다. 푸틴이 점차 자신이 생각하는 서방의 러시아 안보 위협에 더 집착하게 됐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그의 고립은 더 심화됐다. 세균에 대한 결벽증이 심한 푸틴 때문에 최고위 관계자들조차 그를 독대하기 전에 몇 주간 격리를 해야 했다.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있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군 파견을 논의하는 국가안보회의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C) AFP=뉴스1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있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군 파견을 논의하는 국가안보회의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C) AFP=뉴스1
유리 코발추크는 푸틴과 오래 지낸 극소수 중 하나다. 전직 물리학자로 19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 별장을 갖고 있었는데 이웃한 별장이 바로 푸틴의 별장이었다.

은행가이자 언론 재벌인 코발추크는 매우 비밀스러워서(미국 정부는 그가 푸틴의 개인 재산을 관리한다고 본다) 공개 석상에서 거의 발언을 하지 않으며 파이낸셜타임스의 질의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유리 코발추크와 그의 형 미하일 코발추크가 과거 러시아 제국을 회복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미하일 코발추크는 미국이 슈퍼 군인과 '인종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물리학자인데 푸틴의 연설에서도 그의 음모론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에 달했을 때 푸틴은 과거에 가까웠던 자유주의적, 서구적 마인드의 측근들과 거의 단절된 상태였다. 그 대신 그는 러시아 북부의 호수 마을 발다이에 있는 관저에서 유리 코발추크와 사실상 봉쇄 상태로 몇 개월을 함께 지냈다. 코발추크는 푸틴에게 표트르 대제처럼 러시아의 위대함을 확고히 하는 것이 그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종교와 표트르 대제에 대해 말하는 걸 다 정말로 믿고 있어요. 나중에 자신이 표트르 대제처럼 기억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전직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젊은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점차 우크라이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젤렌스키가 집권 직후 착수했던 일 중 하나는 푸틴의 가까운 친구이자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최대 야당을 이끌고 있던 빅토르 메드베드추크의 영향력을 차단한 것이었다. 전임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은 메드베드추크를 러시아 정부와의 중요한 소통 창구로 활용했으나 젤렌스키는 푸틴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고 여겨 다른 창구를 찾았다.

그러나 푸틴이 침략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자 메드베데추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군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 계획에는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탄핵돼 러시아로 망명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메드베데추크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영상 메시지를 발표하고 메드베데추크를 러시아의 지원 아래 우크라이나 지도자로 임명하는 게 포함돼 있었다.

이 계획은 우크라이나의 정치 상황과 크게 어긋나 있었다. 메드베데추크가 대변하는 친러 세력은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그를 혐오하는 세력에 비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푸틴은 이 계획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메드베데추크의 정당으로 돈을 보내 현지의 조력자를 포섭하는 걸 재가했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회의론이 팽배했다. "메드베데추크가 비가 온다고 하면 창 밖을 봐야 합니다. 십중팔구 화창할 거거든요." 다른 러시아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있고 정보기관도 있는데 어떻게 메드베데추크가 하는 말을 믿고 진지하게 뭔가를 합니까?"

그러나 KGB의 후신인 FSB(연방보안국)는 메드베데추크의 판단을 지지했다. 계획이 성공할 것이 틀림없다고 푸틴을 확신시켰고 우크라이나 관계자들을 매수하기 위해 많은 돈을 뿌렸다.

"FSB는 보스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데에는 도가 텄습니다. 엄청난 예산이 배정됐고 모든 단계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했죠." 서방 정보 관계자의 말이다. "상부에 적절한 얘기를 해주고 나도 한몫 챙기는 거죠."

러시아의 해외 첩보기관 SVR(해외정보국)과 정부 일각에서는 회의론을 제기하려 했다. 침공 사흘 전의 안전보장회의 회의에서는 푸틴의 가장 오랜 조력자이자 가장 호전적인 인물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조차도 외교적 시도를 호소했다.

"그는 군의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알았고 푸틴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크렘린에 가까운 인사의 전언이다.

그러나 2014년에 그랬던 것처럼 푸틴은 자신이 상황을 더 잘 알고 있다며 회의론을 일축했다.

"푸틴은 너무 자신만만했어요." 전직 미국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자기 참모들보다 상황을 더 잘 안다는 건 딱 히틀러가 자기 장성들에게 했던 소리죠."

전쟁은 개전 초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은 키이우 인근의 호스토멜 공군기지를 점령한 후 이곳을 거점으로 러시아의 정예 공수부대를 젤렌스키 행정부 건물로 투입해 공격하게끔 만들 계획을 세웠다.

메드베데추크의 협력자 몇몇은 진격하는 러시아군을 주요 지점으로 인도하기 위해 건물과 고속도로에 페인트로 표식을 남겼다. 다른 몇몇은 우크라이나 정부 건물 공격에 가담했다. 우크라이나 남부에서는 메드베데추크의 협력자들이 헤르손을 비롯한 상당한 크기의 지역을 별다른 저항없이 점령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메드베데추크의 인맥 대부분은 침략 행위에 가담하기를 거부하고 그냥 돈만 챙겨 달아났다.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 하나와 전직 미국, 러시아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에 가서 자신들이 러시아에 어떤 조언을 해주었는지 일러주는 이들도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하더라도 전쟁이 발발하면 우크라이나군이 궤멸될 거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이는 러시아 공군이 신속히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장악하리라는 추정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지리멸렬했던 러시아군은 침략 초반 상당수의 아군기를 격추시켰다. 서방 관계자 둘과 우크라이나 관계자 하나에 따르면 이로 인해 지상군과의 작전 경험이 있는 출격 가능한 파일럿이 부족해졌다.

전직 고위 미국 관계자는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격추된 러시아 군용기의 수가 "두 자리 수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 1~2대 보다는 많다"고 한다. "러시아군의 오인사격이 많았습니다."

"우크라이나까지 날아가 그 정신나간 상황에 목숨을 걸고자 하는 실전 경험 있는 파일럿이 없었을 수도 있고요." 그가 덧붙인 말이다.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 부국장 바딤 스키비츠키의 말이다. "포병 부대부터 전차 부대에 이르까지 러시아군끼리의 오인사격이 발생했습니다. 러시아군 통신 감청에서도 확인했죠. 자국군의 헬리콥터를 격추시키고 자국군의 항공기를 격추시켰습니다."

지상에서는 러시아의 진군에 큰 희생이 뒤따랐으며 헤르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주요 도시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작년 3월 말이 되자 러시아군의 상황은 매우 나빠져 우크라이나의 중부와 동북부 대부분에서 물러났다. 러시아는 이를 두고 '선의의 제스처'라고 표현했다.

푸틴의 완벽한 계획은 실패로 판명됐다.

"러시아는 일을 완전히 망쳤죠." 스키비츠키 부국장의 말이다. "게라시모프(참모총장)는 처음에는 그렇게 모든 방향에서 진격하길 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FSB와 다른 모두가 우크라이나 사람들 모두가 러시아군을 기다리고 있고 어떠한 저항도 없을 거라고 확언했습니다."

'세계사에 유례 없는 독특한 전쟁'
자신의 침략 결정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졌는지 뚜렷해지자 푸틴은 이 모든 것의 시초가 된 정보 실패의 책임을 질 희생양을 찾았다. 그 희생양은 바로 세르게이 베세다였다. FSB에서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제5국의 국장이었는데 서방 관계자 둘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있는 조력자에게 뇌물을 줘 침략 전쟁을 준비하는 일도 5국에서 했다 한다.

이들 관계자에 따르면 베세다는 처음에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러나 그의 수난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주 후 미국 정보 관계자들이 러시아 관계자들과 회의를 위해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베세다가 가택연금 중이란 소식이 러시아 매체를 통해 알려진 터라 미국 관계자들은 과연 베세다가 나타날 것인지, 러시아 관계자들이 어떻게 이를 해명할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베세다가 나타나 마크 트웨인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저의 종말에 대한 루머는 대단히 과장된 것입니다." 전직 미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베세다의 빠른 복귀는 참모들이 보는 푸틴의 가장 큰 약점을 잘 보여준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푸틴은 실력보다는 충성심을 중시하며 비밀에 대한 집착이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 또한 부하들이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관료주의적 문화에 젖어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지속되는 동시에 푸틴이 엘리트에게 충성심을 요구하면서 참모들이 더더욱 그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주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게 푸틴을 아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푸틴)의 정신은 멀쩡해요. 이성적입니다. 미치거나 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누구도 모든 일에 대한 전문가가 될 순 없는 일이잖아요. 참모들이 정직하게 말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는 게 문제죠." 오랫동안 푸틴의 측근이었던 인사의 말이다. "관리 체계에 큰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그가 갖고 있는 지식에도 구멍이 크게 나는 거고 그가 접하는 정보의 수준도 떨어지는 겁니다."

푸틴 주변의 엘리트들에겐 거짓말도 일종의 생존 전술이다. 푸틴 행정부와 경제부처 소속 인물 대부분이 자기 친구들에게 자신은 전쟁을 반대하지만 너무 무력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정말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전쟁이죠. 모든 엘리트가 반대하는 전쟁이니까요." 한 전직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전직 기후 특별대사 아나톨리 추바이스를 비롯한 소수의 인사들이 조용히 사임했다. 현재 대형 공기업의 대표로 있는 전직 고위 관계자는 (그와 가까운 인사 둘에 따르면) 심지어 현직이던 시절에 이스라엘 여권을 신청하고 러시아를 떠날 준비를 하기까지 했다 한다.

전쟁이 계속 산발적으로 맥없이 흘러감에 따라 푸틴에게도 러시아가 얼마나 큰 판단 착오를 했는지 그 실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러자 푸틴이 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으려고 시도하게 됐다고 한다. 현 러시아 군부에 비판적인 극렬민족주의자 블로거들이 작년 여름 이래 푸틴과 최소 두 차례의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이들 중 몇몇은 작년 9월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의 합병 행사에 귀빈으로 초대되기도 했다.

푸틴은 자신의 비공식 채널로 습득한 정보를 갖고 공개 석상에서 고위 관계자를 질책하기도 했다. 데니스 만투로프 부총리가 지난달 푸틴에게 러시아 정부가 자국 항공기업체와 신규 항공기 생산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항공산업은 서방의 제재로 부품 수급이 어려워져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은 부문이다. 푸틴은 이렇게 답했다. "계약이 된 게 없는 걸 아는데 무슨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업체 대표들이 제게 말했어요. 계약이 언제 완료됩니까? 업체 대표들은 계약을 한 게 없다고 말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부총리는 제게 계약이 다 돼 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푸틴이 새로 갖게 된 회의적 태도에도 한계는 있다. 우크라이나 침략이 애당초 실수였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자유주의 성향 관계자 몇몇은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리키며 전쟁을 끝내도록 푸틴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푸틴은 "경제적 악영향은 이미 계산한 것"이라고 답한다. 다른 러시아 전직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푸틴은 '그래, 큰 대가를 치렀지. 대가가 얼마나 클지에 대해 과소평가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친 사람을 어떻게 설득합니까? 자기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으면 아마 뇌가 녹아버릴 겁니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아요."

부실한 장비에 대해 국방부에서 내는 공식 설명과 최전선의 병사들이 하는 불평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는 질문을 작년 12월에 받았을 때, 푸틴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련 시절을 배경으로 한 첩보 드라마 <봄의 17개 순간>의 대사를 인용해 답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오직 저만 믿으세요." 그리곤 조용히 웃었다.

(서울=뉴스1) 조태형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 째인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가빛섬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인 노란색과 파란색 조명이 밝혀져 있다. 2023.2.2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조태형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 째인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가빛섬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인 노란색과 파란색 조명이 밝혀져 있다. 2023.2.2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싸움은 계속된다
지난 2월 21일 시정연설에서 푸틴은 "우리 앞의 숙제를 하나씩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러시아의 전쟁은 승리로 끝날 때까지 계속되리라고 역설했다.

이 발언은 적대적인 서방의 위협에 대한 푸틴의 인식이 스스로를 잠식하면서 작금의 전쟁이 푸틴에겐 자신의 실존과 직결될 정도로 심각해졌음을 보여준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자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분노를 미국에 쏟아부으며 미국이 러시아를 "파괴"하려하며 "국가반역자"들을 동원해 러시아를 산산조각내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날 연설에는 작년 가을 이후 처음으로 핵전쟁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그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핵으로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로 인해 나토의 핵 보유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는 만일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재래식 무기로 보복하겠다는 공동 서한을 러시아에 전달했다고 전직 미국, 러시아 관계자들은 말했다.

크렘린과 가까운 인사 둘에 따르면 푸틴은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핵을 사용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검토했으며 국지적인 핵공격조차도 러시아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

"푸틴이 발사 버튼을 누를 이유가 없어요. 우크라이나를 핵으로 때려서 얻을 게 뭐겠습니까? 자포리자(푸틴이 러시아 영토로 선언한 주의 주도로 현재 우크라이나가 수복한 상태다)에 전술핵을 떨어뜨린다고 해봐요." 전직 러시아 관계자의 말이다. "모든 게 방사능으로 오염돼서 안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거기가 러시아 영토라면서요. 그러니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푸틴은 그 대신 러시아가 뉴스타트 협정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뉴스타트 협정은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감축을 위해 만든 마지막 남은 군축 협정이다. 협정 참여 중단 선언은 전쟁 발발 이래 푸틴이 긴장 증대를 위해 취한 조치 중 가장 구체적인 것이다. 옌스 스톨텐버그 나토 사무총장은 "모든 군비 통제 체제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어쨌든 푸틴은 이번에는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푸틴이 러시아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전쟁이 일 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푸틴은 오랫동안 자신이 우크라이나가 아닌 서방 전체와 싸우고 있다고 말해왔죠. 언제까지고 계속 그렇게 말만 할 수는 없습니다. 뭔가 실질적인 걸 단계적으로 보여줘야 하죠." 과거 푸틴의 연설문을 썼던 아바스 갈리야모프의 말이다. "푸틴의 사고방식 속에서는 뭔가 실질적인 걸 보여주지 못하면 서방이 러시아를 두들겨 패는데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칠 겁니다."

푸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집착이 서방보다 강하고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크렘린과 가까운 인사들의 전언이다. 미국의 고위 공화당 정치인들은 미국이 언제까지 우크라이나를 현상태로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2024년에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적지 않다.

서방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가 완전히 패배하는 것 외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전쟁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 푸틴이 살아남아 시간을 벌게 되는 상황이 되길 바라나요?" 유럽연합의 한 외무장관의 말이다. "그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휴지기와 같은 겁니다."

푸틴을 아는 이들은 그가 지금의 대대적인 혼란을 돌파할 수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개전 초기 전반적으로 상황이 정상적이던 시기에 크렘린은 러시아 국민 대부분이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푸틴은 사회 전체가 전쟁을 두고 단결해야 한다며 동원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2월 22일 열린 애국 콘서트는 푸틴의 방향 전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5년 전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한 군인은 러시아의 군 합창단 앞에서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고난의 시간"에 대한 랩을 했고 전사자 부모들이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관중 앞에서 연설을 했다. 진행자는 작년 봄 러시아가 초토화시킨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도시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이 "구출"했다는 어린이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푸틴이 등장했다. 몇몇 군인들과 악수를 한 뒤 이들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국민에게 말했다. "조국은 우리의 가족입니다. 여기 조국을 위해 떨쳐일어난 이들은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 우리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섰습니다. 영웅적으로, 용감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러시아 독립 매체는 이 애국 콘서트 참석을 독려하기 위해 공무원, 공기업 종사자 수만 명에게 약간의 돈을 주거나 참석을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강요 없이는 푸틴 지지 행사가 열리는 스타디움을 채울 수 없으리라고 크렘린이 생각했다는 것은 앞으로의 전쟁에 러시아 국민을 동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쟁에서 바로 승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푸틴 스스로도 알고 있어요.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이 따를 겁니다." 전직 미국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지금 70세죠. 그리고 이를 위한 자원, 석유와 천연가스도 있다고 생각하지요. 푸틴은 표트르 대제처럼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한 것으로 기억될 겁니다."

그러나 한 전직 고위 크렘린 관계자는 푸틴이 반대의 시나리오를 고려하기가 너무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전쟁이 러시아의 패배로 끝난다면 어떤 재앙이 뒤따를지 생각만해도 두렵죠.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총알로든 독극물로든 말이죠. 만약 세상에 정의라는 게 없다면 아무도 정의가 실현되는 걸 못 보겠죠."

"체스를 두는 것과 비슷해요. 지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체스판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때립니다. 그렇다고 그가 이기는 걸까요? 아니죠, 그저 절망에서 나온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 원문: How Putin blundered into Ukraine -- then doubled down © 2023 The Financial Times Ltd. All rights reserved.
- 취재: Max Seddon (모스크바), Christopher Miller (키이우), Felicia Schwartz (워싱턴), Henry Foy (브뤼셀), Anastasia Stognei (리가)
- 번역: 김수빈, 편집: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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