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시안1·2공장은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약 40%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비록 투자금액은 크지만, 평범한 성공 스토리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형성이 목표
![미·중 반도체 전쟁에 낀 韓, "고래 싸움에 등 터질 판"[차이나는 중국]](https://thumb.mt.co.kr/06/2023/03/2023030219101690978_2.jpg/dims/optimize/)
위의 4가지를 보면 미국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인다. 즉,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을 형성해서 국가 안보에 필요한 반도체 공급을 보장받고 미국의 반도체 주도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여기도 미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이번 기금 지원 공고에서 눈여겨볼 단어는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다. 이 단어는 75페이지에 달하는 공고에서 52번이나 등장하며 핵심 키워드임을 드러냈다.
미국 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게 390억 달러, 연구개발(R&D)에 13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할 계획인데 요구 조건이 제법 까다롭다. 설비투자 금액의 5~15% 수준, 최대 35%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지만, 보조금 수혜 기업은 보조금으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급을 할 수 없고 노조에 가입한 현지 근로자를 고용하는 한편 미국산 철강을 사용해야 한다.
또 1억5000만 달러가 넘는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수익이 전망치를 월등히 초과할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에 달하는 초과수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하며 △회사 내 육아시설 설치도 의무사항이다.
특히 미국은 보조금 수혜 기업이 10년간 중국 등 우려국과 공동연구 또는 우려국 내 반도체 설비 증설을 금지하는 가드레일(Guardrail·안전장치) 조항을 뒀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조만간 미국은 가드레일 조항의 세부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던지는 당근과 채찍미국은 중국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디커플링(분리)시키기 위해 삼성전자·TSMC 등 외국 반도체 업체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반도체 지원법은 외국 반도체 기업에게 보조금, 즉 당근을 줘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동참시키려는 계획이다.

당근보다 더 강력한 건 채찍이다. 지난해 10월 미 상무부 산업안전국(BIS)은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시스템 반도체 생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다행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은 1년간 유예조치를 통해 장비 수입의 예외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에게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하는 협상중인 가운데 지난 23일 예상치 못한 뉴스가 보도됐다.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포럼에 참석한 앨런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 담당 차관이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출하량의 약 40%를, SK하이닉스가 우시공장에서 전체 D램 출하량의 약 50%를 생산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다. SK하이닉스가 2020년까지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249억 달러에 달한다.
더구나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90억 달러를 주고 인텔로부터 중국 다롄의 낸드플래시 공장을 인수하며 중국 사업 비중이 확대돼 더 난감한 상황이다. 지난 2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반도체업체들이 미중 갈등이 고조되자 근래 중국 투자를 줄였다며 인텔이 다롄 공장을 매각한 사실을 들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아쉬운 타이밍이다.
미국 반도체지원법 보조금의 독소조항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중국 반도체 공급망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분리시키겠다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다. 당근(보조금)은 굳이 거부하려면 거부할 수 있겠지만,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한 채찍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중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수도 없다.
2018년 여름 방문했던 삼성전자 시안공장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번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