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삼성전자가 없다면

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1부장 2023.03.0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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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무역수지가 53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12개월째다.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은 제품가격이 떨어지면서 44억달러(42.5%) 급감했다. 7개월째 내리막이다. 당장 호전될 기미는 없다. 시장조사업체의 전망은 비관 일색이다. 트렌드포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1, 2분기에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봤다. 가트너 등은 올해 반도체 시장이 역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적자는 기정사실이고 언제, 얼마나 회복하느냐가 관건이다.

반도체업황 악화의 파급효과는 환율에도 미친다. 한미 금리차가 22년 만에 최대치다. 업황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1300원대 초반인 원/달러 환율이 더 위로 튀는 요인이 된다. 석유, 천연가스, 밀 등 에너지와 식량을 거의 전량 사 와야 하니 물가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난방비 폭등에서 보듯 민생문제로 번지기 알맞다. 성장에도 부정적이다. 한국은행은 올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6%로 낮추면서 부동산 경기하강과 함께 반도체 수출부진을 그 이유로 꼽았다.



주식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스피 시가총액 1위와 3위다. 삼성전자 주주는 600만명이 넘는다. SK하이닉스 주주도 95만명가량이다. 실적이 나빠 주가가 내리면 이들의 자산이 줄어든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지분은 각각 7.82%, 8.17%다. 2200만명이 가입한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좋을 리 없다. 이렇듯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고용된 14만여명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등 반도체산업 생태계, 나아가 한국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지정학적 변수와 마주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반도체 패권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한다. 미국과 일본, 대만, 유럽연합(EU) 등 각국은 반도체산업을 키우기 위해 국익 차원에서 접근한다. 보조금을 주고 세금을 깎아준다. 예컨대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자국 내 반도체 연구지원과 생산보조에 52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반도체 설비투자 비용의 25%를 세액공제해준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일명 K칩스법)이 국회에 묶여 있다. 이 법은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의 설비투자 세액공제를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는 게 핵심이다. 야당은 '재벌대기업 특혜', 또는 '부자감세'라는 낡은 수사를 동원해 반대한다. 마땅한 자국 기업이 없는 일본이 대만 TSMC의 반도체공장 건립비의 40%(4760억엔)를 대는 세상이다. 그것이 '일본을 위한 특별한 혜택'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삼성전자가 없다면


반도체기업은 한국을 먹여살리는 밥줄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환경은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은 보조금을 주되 초과이익을 내놓으라 하고 국가안보를 내세워 연구와 제조시설 공개까지 요구한다. 앞으로 10년간 중국 등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면 안 된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한국 반도체의 가장 큰 수요처인 중국 시장을 날릴 수 있다.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할 만큼 입지가 좁다.

야당도 사정을 인지하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산업 동향을 보면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이라며 "삼성전자를 포함한 우리 기업들이 미·중 기술 패권경쟁의 희생양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미국 반도체법에 대한 정부의 외교적 대응과 별개로 K칩스법이 빨리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투자시기를 놓치고 경쟁에서 뒤처져 점유율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도태된다면, 그래서 특혜를 줄 기업이 사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생과 경제에 비극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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