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은 10년 이상이 걸렸다. 배우의 성장이 마치 경제의 성장처럼 모든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염원하는 일이 아닌 이상, 차근차근 시간이 걸리고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그 누구의 질책이나 찬사로도 이뤄지지 않는다. 오로지 배우의 깨달음과 노력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제를 꾸준히 넘어가야 가능하다.
손나은은 ‘대행사’에서 극 중 배경이 되는 VC기획의 상무 강한나를 연기했는데, 재벌가의 3세로 안온한 환경에서 화려한 꽃처럼 자란 인물이다. 그런 그가 가족의 회사에 상무로 출근하며 벌어지는 풍파가 ‘대행사’의 주된 줄거리였다. 광야의 거친 잡초처럼 자라온 고아인(이보영) 상무와 온실의 화초 같은 강한나 상무의 강한 대비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드라마의 주제와도 어느 정도 연결돼 있었다.
여튼 극 초반부터 언론과 여론을 통해 제기된 연기력 논란은 막바지 배우들의 인터뷰에서도 손나은과 호흡을 맞추는 소감을 다른 배우들에게 묻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손나은의 연기는 물론 미숙해보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극의 몰입에 치명적인 방해가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보는 시청자가 아니라면 그의 장면들은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공주님 강한나가 요즘 시대에 공감하기 힘든 호감도가 떨어지는 캐릭터인 것이 '연기력 논란'을 키운 면도 없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번 강한나 역할과 관련된 논란은 자연스레 나왔다기보다는 목적을 갖고 ‘양산됐다’는 의구심을 갖게도 했다. 손나은의 연기력과 그다지 관계가 없는 화보나 일상생활의 모습에서도 ‘연기력’과 관련된 기사가 키워드화 됐다는 것은 이러한 키워드가 화제성이 높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억울함을 빨리 벗어나려면 손나은 스스로가 연기력을 성장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그의 약점은 가수출신임에도 약한 발성에 있다. 평상시 일반적인 감정의 대사를 할 때 이 부분은 드러나지 않지만 감정을 넣어야 할 때 발성의 부족은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일정 감정 이상의 감정을 요하는 표정과 동작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이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그랬던 것처럼, 감정이 급변하는 역할이나 상황 속에 자신을 던지는 용감한 시도를 통해서 개선될 수 있다.
꼭 해외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스스로 밝혔던 것처럼 주지훈이나 김민희 등 한국의 배우들도 자신의 초반 미숙함을 극복하고 하나의 일가를 이루는 배우가 됐다. 이는 배우로서 나이가 드는 성숙의 과정 때문인 것도 있지만 스스로가 작품이나 캐릭터에 한계를 정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나갔기 때문이다.
손나은에게도 해결책은 비슷할 수 있다. 그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작품들은 ‘대행사’에서 그렇듯 안온한 보살핌이 있는 화려한 모습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태생적으로 시련을 겪고, 사연이 많은 손나은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서, 그의 외모가 다양한 사연을 표현하기에는 예뻤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성장 중인 배우에게 미리 한계를 정하는 일이 될 수 없다. 손나은의 연기가 우리의 생활을 제약하지 않았듯, 우리의 시선이나 선입견이 손나은의 연기발전을 제약할 수 없다. 결국 알을 깨는 것은 배우의 몫이고, 우리는 그 모습이 극도로 싫지 않은 이상에는 성장의 시간을 줘야 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나오기까지는 대중들의 기다림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야구에서 홈런을 많이 때리는 ‘거포 타자’를 키우기 위해서 ‘삼진을 세금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성공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실패가 따르고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손나은의 나이 이제 우리나이로 서른이다. 그가 진정 환골탈태해 우리에게 연기의 황홀경을 보여줄 때, 우리는 지금의 이 질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손나은에게도, 우리에게도 노력과 시간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