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포기 못해" 3수, 4수, 5수…정시 합격자 80%가 'N수생'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김인한 기자, 정심교 기자, 유효송 기자 2023.03.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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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이공계 엑소더스'와 '의대 블랙홀'(上)

편집자주 카이스트 등 4대 과학기술원에서 최근 5년간 1000명 넘는 학생이 중도 이탈했다. SKY로 불리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공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의대에 지원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공계와 의료계의 처우 차이가 만들어낸 기현상이다. 이에 이공계 엑소더스 실태와 목소리를 담고, 현재 카이스트 등에서 대책으로 마련 중인 의사과학자 육성 계획을 소개한다. 그리고 의대 입시를 대해부하고, 의료계의 상황도 알아본다.

[단독]의대 정시 합격자 10명 중 8명 'N수생'..장수생 급증했다
① 의대 정시 전형서 3수 이상 장수생 강세 두드러져이공계열 인재 흡수 '의대 블랙홀' 현상 가속화

"의대 포기 못해" 3수, 4수, 5수…정시 합격자 80%가 'N수생'


의대 정시전형 합격자 중 재수생 포함 'N수생' 비율이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3수생 이상 비율만 40%를 넘길 정도로 장수생의 강세가 이어졌다. '이공계 엑소더스'와 '의대 블랙홀'이 만들어낸 기현상이다. 최근에는 최상위권 대학을 포기하고 의대에 진학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1일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민형배 의원실에 제출한 '2020~2022학년도 의대 정시 합격자 현황'을 보면, 3년 간 의대 정시 합격자 중 N수생 비율은 78.7%다. 이 통계는 수험생 선호도가 높은 9개 국립대와 9개 수도권 사립대 의대의 정시 최초합계자를 대상으로 산출됐다. 경상국립대와 가톨릭대, 중앙대, 차의과대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연도별 N수생 합격자의 비율은 2020학년도 77.6%에서 2022학년도 78.0%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N수생 중 장수생 비율은 달랐다. 2020학년도 29.0%였던 3수생 이상의 비율은 2022학년도에 41.9%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4수생 이상의 비율이 9.2%에 17.1%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3수생의 비율도 같은 기간 19.9%에서 24.8%로 늘었다.



◇'의사가 꿈인 나라'..정시 합격자 중 3수생 이상 비율 40% 넘어
"의대 포기 못해" 3수, 4수, 5수…정시 합격자 80%가 'N수생'
2022학년도를 기준으로 강원대 의대의 3수생 이상 비율이 73.3%로 가장 높았다. 충북대(58.6%), 성균관대(54.2%), 충남대(53.8%), 전북대(53.2%), 이화여대(52.4%), 제주대(50.0%) 의대도 정시 합격자 중 3수생 이상의 비율이 50%를 넘었다. 2020학년도에는 50% 이상의 3수생 비율을 기록한 의대가 가천대 한 곳에 불과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이른바 'SKY 대학' 의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대 의대의 지난해 정시 합격자 중 N수생의 비율은 71.0%.다. 3수생 이상의 비율도 41.9%에 이른다. 연세대·고려대 의대의 N수생 비율은 각각 72.3%, 77.8%다. 연·고대 의대의 3수생 이상 비율은 36.2%, 25.9%로 평균보다 다소 낮았다.

N수생 강세가 의대 고유의 현상은 아니다. 2023학년도 수능에서 N수생 응시자의 비율은 28%다. 재학생 응시자의 비율은 매년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하지만 '재수는 필수'라는 얘기가 나오는 서울대만 하더라도 2022학년도 전체 정시 합격자를 기준으로 3수생 이상의 비율이 18.8%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대의 장수생 강세는 유독 두드러진다.


대학가에서는 의대의 장수생 강세를 일찌감치 예견했다. 높은 보수와 사회적 평판, 정년 걱정 없는 안정된 직업이라는 측면에서 장수생을 자처하며 의사를 꿈꾸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 의사의 평균 임금은 2억3070만원이다. 1990년대 이공계열로 몰렸던 수능 전국 수석이 최근 의대로 향하는 것도 달라진 사회 풍토의 한 단면이다.

◇사법고시처럼 '장수생' 속출하는 의대 입학...이공계열 인재들이 떠난다

"의대 포기 못해" 3수, 4수, 5수…정시 합격자 80%가 'N수생'
입시업계는 '이공계 엑소더스'와 '의대 블랙홀'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의 중도탈락자(자퇴생 등)는 1874명이다. 이 중 자연계열 중도탈락자만 1421명이다. 'SKY 대학' 자연계열의 중도탈락자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지난해 중도탈락자도 100명이다. 지방대 의대를 그만두고 수도권 의대로 진학하는 수요 역시 상당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의 연간 선발인원이 3000명 수준인데 정시 비율이 40%라고 치면 해마다 1200명을 정시로 뽑는다"며 "서연고 자연계열과 카이스트의 중도탈락자가 1200명을 훌쩍 뛰어 넘는 상황에서 재학생들이 이들과 경합하는 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도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입시) 소비자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공계 엑소더스'와 '의대 블랙홀'은 올해 정시에서도 이어졌다. 2023학년도 정시에서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합격자 중 최종적으로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은 1343명이다. 이 중 자연계열 등록포기자는 737명이다. 이들 상당수는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야심차게 지원책을 마련한 반도체학과도 등록포기자가 많았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몇 년 더 투자하더라도 충분히 수익률이 높다고 확신하고, 퇴임 연령과 상대적인 명예·지위 등이 월등하다고 생각하면 의대 광풍이 불게 되는 것"이라며 "인재들이 한 곳으로만 몰리면 기초과학 등 발전시켜야 할 학문에서 성과가 더딜 수밖에 없고, 의대 입시를 위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도 좋은 현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의대 포기 못해" 3수, 4수, 5수…정시 합격자 80%가 'N수생'
의대로 떠나는 우주·반도체 인재…이공계 '엑소더스' 실체
② 이공계 병역특례 줄고 대학원 생활 경제적 궁핍학·석·박사 10년 버텨도 의사와 비교하면 '박봉'

"의대 포기 못해" 3수, 4수, 5수…정시 합격자 80%가 'N수생'
#1.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항공우주공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A씨는 대학원을 중퇴하고 2021년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치전원)을 진학했다.

#2.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졸업생 중 대다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 학과를 졸업한 B씨는 2020년 차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선택했다.

#3. 한국과학영재학교(영재고)를 조기 졸업하고 2016년 카이스트 1학년(무학과 제도)으로 진학했던 C씨. 그는 휴학 후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러 이듬해 연세대 의학대학(의대)으로 떠났다.

1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카이스트를 포함한 4대 과학기술원에서 의학계로 떠나는 '이공계 엑소더스' 현상은 학과·학년을 불문하고 나타났다. 카이스트 17개 학부에서 매년 학교를 중퇴하고 의대를 가거나 졸업 후 의전원·치전원으로 향하는 사례가 나왔다.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디지스트(대구경북과학기술원)·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4대 과기원에 수시 전형으로 진학하는 과학고·영재고 출신 학생들은 수능(정시 전형)을 치르지 않는 전략으로, 학부 4년 졸업 후 의·치전원으로 향했다. 이 학생들은 학과 내 최상위권(4.3 만점에 4.1 이상) 성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 생활 내내 경쟁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치전원에 가려는 학생들이 융합·협력을 필요로 하는 연구와 교육 분위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국가적으로 최고급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세금을 지원하는 과학고·영재고, 4대 과기원 설립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실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알리미 공시 자료에 따르면, 4대 과기원에서 최근 5년간 1006명이 중도 이탈했다. 자퇴, 미등록, 유급 등으로 졸업하지 못한 이들로 대다수가 의학계열로 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이스트의 경우 5년간 연평균 100명가량이 학교를 그만뒀다.

◇병역특례 혜택 줄고, 대학원 생활도 궁핍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는 최근 석·박사 1737명을 대상으로 '연구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학생들의 대학원 입학 목적은 공부 자체 욕구(24.38%)와 전공 전문성 향상(32.11%) 등 자발적 동기가 가장 컸다.

반면 이들이 가장 바라는 점은 인건비 상한선과 수당 등 경제 환경 개선이 32.56%로 가장 높았다. 월 평균 수입 설문조사에선 학업과 연구 수입으로 받는 금액은 매월 160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주52시간 기준으로 평균 시급은 7644원으로, 법정 최저 시급에 못 미친다. 이 설문에 참여한 학생 절반(49.52%)가량은 29세 이상(1995년 이전 출생)으로, 또래 친구들 대다수가 경제 활동을 하는 나이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총학생회가 석사 662명과 박사 10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월 평균 수입 데이터. / 사진=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총학생회가 석사 662명과 박사 10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월 평균 수입 데이터. / 사진=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생 경제적 처우도 궁핍할뿐더러 그 이후 격차는 더 크다. 카이스트 박사를 마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들어가면 초임 연봉은 평균 4260만원(2021년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수준이다. 15년 이상 중견급 연구자가 돼야 평균 보수가 1억원까지 올라간다. 반면 의대 6년과 인턴·레지던트를 마친 의사가 병원에서 근무하면 최소 억대 연봉이다. 2020년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선 의사 평균 연봉은 2억3070만원으로 집계됐다.

의학계에 비해 낮은 보수에 더해 병역을 대체할 전문연구요원 제도 혜택도 줄었다. 과학기술 인재들이 군 복무 대신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은 뒤 36개월간 대학·출연연, 기업 부설 연구소 등에서 연구하며 대체 복무하는 제도다. 최근 전문연구요원으로 갈 곳이 줄어들다 보니 적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카이스트 등에서 본인 성적과 무관하게 졸업이 늦어지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과학고·영재고 조기 졸업 후 과기원에 진학하는 학생이 의대 진학을 원하는 부모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학과장은 "의대 진학을 위해 자퇴하는 학생 대다수와 이야기해보면 부모 영향이 크다"며 "과거처럼 국가가 못 살 땐 고연봉의 안정적 직업이 중요했지만, 시대가 바뀐 상황에서 부모 세대가 이를 자식에 주입하는 현상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병원도 의사 없어 사망"…필수의료 기피, 연봉도 점점 줄었다
"의대 포기 못해" 3수, 4수, 5수…정시 합격자 80%가 'N수생'
# 지난해 7월, 국내 최대 규모 병상을 가진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치료받지 못해 사망했다.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에선 의사들의 학회 참석으로 뇌혈관을 긴급 수술할

최근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필수 의료과는 의사 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특정 진료과의 쏠림 현상과 그로 인한 의사 수 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진료과는 넘쳐나는데, 기피 과는 '씨'가 마르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진료과별 전공의 충원율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정신건강의학과(105%), 피부과·성형외과(100%) 등 '인기 좋은' 진료과의 경우 전공의 지원자가 넘쳐났지만 방사선종양학과(21.7%), 흉부외과(64.6%), 비뇨의학과(68%), 산부인과(76.8%), 소아청소년과(89.7%), 응급의학과(94.3%) 등 소위 '기피 과'의 충원율은 정원에 미달했다.

대체로 진료과별 소득이 높을수록 인기와 비례하는 모습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0 한국의 직업정보'에 따르면 '인기과'인 이비인후과(1억3934만원), 성형외과(1억3230만원), 피부과(1억3053만원) 의사의 평균소득은 전체 진료과 가운데 '톱3'에 나란히 들었다.

반면 기피 과로 꼽히는 소아청소년과(1억807만원) 의사의 평균소득은 전체 의사 가운데 10위(상위 소득 50개 직업 중에서는 11위)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기피 과 의사의 주머니 사정은 점차 악화하고 있다. 산부인과(1억2123만원)와 비뇨의학과(1억1108만원), 방사선과(9607만원), 마취병리과(9250만원)의 2020년 평균소득은 2019년보다 각각 439만원, 1425만원, 1212만원, 2791만원씩 감소했다. 이와 달리 최상위 소득 3개 과인 이비인후과·성형외과·피부과의 경우 같은 기간 평균소득이 각각 308만원, 100만원, 1560만원씩 늘었다.

"의대 포기 못해" 3수, 4수, 5수…정시 합격자 80%가 'N수생'
◇진료과뿐 아니라 지방도 기피… 30%가 서울에

현직·예비 의사들의 기피 현상은 '지역'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지역별 의사 수 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고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인구 10만명당 근무 의사 수는 서울이 305.6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은 126.5명으로 가장 적었다. 서울이 경북보다 2.42배 높았으며, 전체 의사의 30% 가까이가 서울 지역에 몰려 있었다.

최근 벌어진 속초의료원 응급실 인력 부족 사태는 지방 의사 부족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강원도 속초시에 위치한 속초의료원은 최근 인력난으로 응급실 운영을 축소했다. 연초 응급실 전문의 5명 가운데 3명이 퇴사하거나 퇴사를 앞두면서다. 이곳의 응급실 의료진 공백으로 지난 1일부터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4일만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원에선 일단 응급 환자를 인근의 강릉아산병원이나 속초보광병원으로 안내하는 실정이다.

속초의료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3명을 충원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채용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1차에선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고, 2차에선 연봉 4억원대로 국내 의료원 최고 수준의 대우를 제시했지만 1명을 겨우 충원했다. 당시 지원자 3명 중 1명은 서류심사에서 탈락했지만 1명은 면접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에 이 의료원은 나머지 2명을 더 뽑기 위해 지난 24일 3차 공고를 냈다.

대신 이번엔 응시 자격 문턱을 낮췄다. 의료원은 당초 두 차례의 채용 공고에서는 '의사면허 및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로 응시 조건을 한정했다. 그러나 3차 채용에서는 '의사면허 및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 또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4년 수료자'로 조건을 확대했다. 전공의는 전문의의 전(前) 단계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 중인 의사를 말한다. 흔히 '레지던트'라고도 부른다. 다만 의료원 측은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가 채용될 경우 연봉은 별도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진로 방향 틀어서라도 '돈 되는 진료과'로 뛰어들어

의사고시에 합격한 후 바로 '돈 되는 진료과목'을 선택하거나, 다른 과를 전공했지만 돈 되는 진료과목으로 방향을 트는 사례도 적잖다. 인기과인 성형외과·피부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기준으로 전국 성형외과의원(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1차 의료 기관) 수는 1610곳으로, 2010년 2월(770곳)보다 2.1배 증가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개원한 곳은 제외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이 없으면서 피부과·성형외과 진료를 시행하는 의원까지 합하면 3만여 곳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성형외과·피부과가 아닌 타과의 전문의이거나 ▶의사고시에 합격했지만 전문의 과정을 아예 밟지 않은 일반 의사 즉, '피부과 비전문의', 성형외과 비전문의'가 성형외과·피부과를 진료하는 '미용 의료' 영역에 뛰어드는 경우가 해당 과 전문의가 개원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기과의 경우 해당 과목을 전공하지 않은 '비(非)전문의'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 A씨는 "흉부외과나 산부인과나 전공의 지원율이 정원에 미달한 지 오래일 정도로 기피 과"라며 "얼마 전 산부인과 전문의가 보톡스·필러·레이저 등 '돈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 성형외과를 진료과목으로 둔 의원을 개원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성형외과 전문의 B씨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사람 즉 '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라고 해서 성형외과를 진료하는 것 자체는 위법이 아니지만 수술이 많은 특성상 성형외과 비(非)전문의의 안전사고 우려를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 공백 채운 불법 'PA', 간호법 제정으로 '맞불'

진료과별 전공의의 쏠림 현상으로 '구멍' 난 진료과의 경우 상급종합병원에선 구멍을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PA' 간호사를 두고 있다.

PA는 '공식적'으로는 우리나라에 없는 직종이다. 이 개념은 미국에서 처음 생겨났는데, 미국에서 'PA'는 의사 보조를 뜻하는 '피지션 어시스턴트(physician assistant)'의 약자로, '진료 보조 간호사'라고도 불린다. 미국에서 PA가 되려면 관련 면허를 취득하고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유망 직종으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PA를 둘 수 없다. 현행법상 '의료인'의 분류에 PA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법 제2조에 따르면 '의료인'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에 국한한다. 그런데도 'PA 간호사'로 불리는 인력은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전국에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PA'로 불리는 간호사는 보통 병원에서 일반 간호사 가운데 일부 인원을 차출해 외래 병동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서 의사 ID를 통한 진료의뢰서 발급, 진단서 작성, 투약, 검사 처방, 수술, 시술 등의 업무를 도맡아 사실상 전공의의 역할을 대체한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대학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C씨는 "흉부외과처럼 몇 시간 동안 꼬박 서서 육체적 노동을 해야 하는 진료과는 기피 현상이 심해 의사의 씨가 마른 지경"이라며 "전문의·전공의 자체가 크게 줄다 보니 PA 같은 간호사의 존재가 절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대한간호협회가 27일 개최한 제90회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들이 '간호법 제정'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며 시위하고 있다. /사진=대한간호협회대한간호협회가 27일 개최한 제90회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들이 '간호법 제정'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며 시위하고 있다. /사진=대한간호협회
간호사들은 이미 업무가 과도한 데다, 불법적인 'PA' 역할까지 도맡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간호협회를 필두로 한 간호사들은 '간호법'을 제정해 업무 영역 선 긋기에 나서고 있다. 간호법 제5장 24조엔 '누구든지 간호사 등에게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정부는 위기에 직면한 필수 의료 인력을 육성하고 지역의료 격차 해소,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등을 위해 '의료현안 협의체'를 꾸리고 지난달 30일과 이달 9일 1, 2차 회의를 열었다. 이는 앞서 2020년 의사단체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안건을 놓고 팽팽히 맞선 지 2년여 만에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협의체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9일 간호법과 의사면허 취소법이 국회 본회의로 직 회부되자 의사 단체의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12일 대한의사협회(의협) 대의원회는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긴급 운영 위원회를 열고 "정부와의 대화를 중단할 것"을 집행부에 권고했다. 16일 3차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의협 집행부는 의료현안 협의체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 의사단체와 정부의 대화 창구가 막히면서 의료인력 격차 문제는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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