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박연진(임지연 분) 등 가해자그룹은 고데기 온도를 체크한다며 문동은의 신체를 아무렇지 않게 지진다. 가해자들이 희희낙락하며 울부짖는 피해자에게 잔혹한 폭행을 가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장면은 실제로 2006년 청주의 한 여중에서 발생한 이른바 '고데기 폭행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반면 SSG랜더스 소속 프로야구 스타 추신수는 키움히어로즈 투수 안우진이 학폭 전력으로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된 것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피해자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경솔한 발언이라는 비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전국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학폭 심의건수는 9796건에 달했다. 2학기를 포함하면 2만건에 육박할 전망이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대면수업이 다시 시작되면서 학폭 심의건수는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학폭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학폭감소라는 현실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왜 학폭을 다룬 드라마 제목이 '영광'을 뜻하는 영어단어 글로리일까.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는 학폭 사례를 찾아보면서 피해자들의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피해자들은 금전적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피해자들이 되찾는 것은 결국 폭력을 당할 당시에 상실한 인간적 존엄, 명예, 영광이고 피해자들이 그 영광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목을 '더 글로리'로 정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가해자들이 천벌을 받게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나한테도 고통이다. 나는 가해자들이 언젠가는 사과하러 오는 날을 그리며 버틴다"는 한 학폭 피해자의 인터넷 댓글과 일맥상통한다.
끔찍한 학폭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대중의 분노는 폭발하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나 처벌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학폭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피해학생을 잘 보호하는 것도, 가해학생을 교육하고 개선하는 것도 모두 중요하다.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이상 방관자로 머물지 말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동은이 고통의 삶을 벗어나 회복과 치유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바로 가해자의 사과다.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이라고 문동은은 말한다. 이는 역으로 가해자가 깊은 반성을 통해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고 피해자의 인간적 존엄과 명예가 되살아난다면 용서도 가능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진아, 이젠 뭘 해야 할지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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