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건 못 들고, 걸음이 조금 느린…23학번 '선아씨' 이야기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3.03.0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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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희귀난치성 근육병' 과 함께 사는 신선아씨(21)…세 차례 수술로 4년여간 학업 공백, 남 돕고픈 꿈 이루려 공부해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23학번 합격, "학대피해아동 구하는 사회복지사 되고파"

선천적으로 희귀난치성 근육병이 있는 신선아씨(21). 23학번 새내기인 그는, 어머니의 자수 솜씨가 눈에 띄는, 화사한 가족 방문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사진=남형도 기자선천적으로 희귀난치성 근육병이 있는 신선아씨(21). 23학번 새내기인 그는, 어머니의 자수 솜씨가 눈에 띄는, 화사한 가족 방문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사진=남형도 기자


9년 전이었다. 고작 열두살, 학교는 1년 늦게 들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평소 자주 넘어졌다. 계단도 두 손으로 꽉 붙들어야 올라갔다. 결국 부모님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갔다. 병명을 들을 시간이었다. 정형외과 의사는 "아이의 귀를 막아달라"고 청했다. 부모는 그의 말대로 아이 귀를 두 손으로 꼭 막았다. 의사가 말했다.

"울리히 선천 근디스트로피, 희귀난치성 근육병입니다."



귀를 막아도 다 들렸다. 아이는 자신의 병을 알게 됐다. 엄마·아빠에게 "왜 이리 늦게 왔느냐"고 하던 의사 말도 들었다. 못 들은척 연기를 했다. 무슨 병인지도 실은 잘 몰랐다. 그저 희귀한 병인가보다, 그정도만 알았다.

두 다릴 모두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몇 달은 학교에 갈 수 없게 됐다. 어린 마음에 솔직히 말해 좋았단다. 공부를 잠시 안 해도 된단 생각에. 아이라서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실은 그 수술이 무척 아프고 힘들단 것도, 그걸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세 번 해야한단 것도. 그래서 공부를 하기 힘든 기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단 것까지.



그 아이가 자라 올해 대학에 간다. 23학번 새내기 신선아씨(21)다. 주위 사람의 좋은 마음 덕분에 잘 자란만큼, 오롯이 더 멋있어져서 힘든 아이를 돕겠단 꿈도 생겼다. 근육이 약하고, 그러니 무거운 걸 들기 힘들고, 걸음도 조금 느리다. 폐활량도 다른 이의 30% 정도라 호흡재활도 해야 한다. 어쩌면 남들과 조금은 다를 수 있다.

우린 실은 모두가 다 다르니까. 또 누구나 우연히 그리 될 수 있으니까. 특별한 인간승리라고 쓴 기록이 아니다. 타인의 삶에서 함부로 위로 받으라고 쓴 것도 아니다. 신씨는 평범한 대학생 새내기다. 그가 대학 입학까지 공부해온 이 과정이 더욱 평범해져야 한다고 남기는 글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사회가 뭘 해야할지, 생각해보잔 장(場)을 여는 거다.

중학교부터 고1까지…4년의 '공백'
잘 땐 호흡기를 착용하고 자야 한단다. 호흡 근육도 함께 약해져서다./사진=남형도 기자잘 땐 호흡기를 착용하고 자야 한단다. 호흡 근육도 함께 약해져서다./사진=남형도 기자
신씨의 집에 들어섰을 때, 그와 어머니가 환히 웃으며 맞아줬다. 표정의 온도와, 적당한 집안 온기와, 냉기를 잃을까 보관했다 내어준 바닐라 라떼와, 문을 수놓은 봄 같은 꽃장식 덕분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궁금한 게 많은 이의 여러 물음에도, 신씨는 또렷하고 차분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을줄 아는 사람이었다. 흔들려 온 삶에서 충분히 숙고해 자신을 바라봐 온 이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근육병으로 인해 걷는 게 불편했던 신선아씨. 까치발을 들고 다녀야 했단다./사진=남형도 기자초등학교 4학년 때, 근육병으로 인해 걷는 게 불편했던 신선아씨. 까치발을 들고 다녀야 했단다./사진=남형도 기자
태어나 삶에서 함께해왔고, 앞으로도 함께할 희귀난치성 근육병. 초등학교 4학년 땐 이미 걷는 게 힘들어져 있었다. 어깨가 더 높이 올라갔고, 까치발을 들고 다녔다. 허벅지를 절개해 근육을 잇는 큰 수술을 했다. 초등학교 때만 4학년 때와 졸업할 때, 수술을 두 번 해야했다.

학교에 못 갔던 중학교 시절엔 좋아하는 그림을 자주 그리며, 취미를 공유하고 소통했다고. 할머니를 꽃으로 표현한 신선아씨. 그림이 참 곱다./사진=남형도 기자학교에 못 갔던 중학교 시절엔 좋아하는 그림을 자주 그리며, 취미를 공유하고 소통했다고. 할머니를 꽃으로 표현한 신선아씨. 그림이 참 곱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냥 너무 아프더라고요. 무통주사를 맞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그때 알았죠.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하구나', 싶더라고요."

중학교 3년은 학교에 못 갔다. '꿈사랑학교'로 다녔다. 건강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화상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원격 수업이 으레 그렇듯, 신씨도 집중하기 힘들었단다. 그는 "처음엔 열심히 들어보려 하다가 점점 딴짓하고, 고1 때까진 거의 공부를 안 했다시피 했다"고 웃으며 털어놓았다. 학업 공백이 4년 정도는 생긴 셈이었다.

호흡 근육도 약해진단 걸 알아서, 2017년부터는 호흡 재활 치료도 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서 지원하는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 재활 센터서 치료를 받았다. 희귀질환자 중 아동청소년은 2942명(2020년 기준)인데, 병원·시설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고2 때 돌아간 학교, 3개월만에 또 '수술'…"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빼곡히 필기한 노트에서, 꿈이 생겨 그걸 이루고픈 이의 마음이 느껴진다./사진=신선아씨 제공빼곡히 필기한 노트에서, 꿈이 생겨 그걸 이루고픈 이의 마음이 느껴진다./사진=신선아씨 제공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로 돌아갔다. 무려 4년 만이었다. 긴장이 되었다. 등교 첫날, 교실에 들어갔더니 그를 돕는 친구들이 셋이나 있었다. 휠체어도 밀어주고, 무거운 책도 들어주고, 급식을 대신 받아주기도 했다. 신씨는 "다 챙겨주려고 하고 엄청 상냥하게 해주어서 안심이 되었다""긴장이 풀어졌었다"고 회상했다. 다름을 메우는 우정이었다.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로도 적응하기 힘든 게 있었다. 병 때문에 잘 챙기지 못했던 학업이었다. 단단히 맘 먹고 잘해보려 애썼다. 코로나19로 줌 수업을 할 땐, 다른 친구들이 화면을 끌 때도 항상 켜놓고 들었다. 수업을 잘 들으려 강제성을 부여하려던 거였다. "그렇게 하니 수업 집중도 잘 되고, 딴 짓도 안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뭘 복습해야 할지, 어떤 게 시험에 나올지, 어떻게 공부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단다. 첫 시험을 봤다. 예상대로 중간고사 성적은 참담했다.

"엄마가 특히 충격 받았어요. 초등학교 땐 공부가 뒤쳐지던 편이 아니었어서, 제가 공부 잘하는 줄 알고 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시험 보니 완전히 하위권이더라고요. 저도 충격 받았지요."

엎친데 덮치는 일까지 생겼다. 학교에 다닌지 3개월, 막 적응할 무렵에 다리가 아파왔다. 뼈가 부러지는 게 아닌가 싶은 통증이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또 해야된단 말을 들었다. 신씨는 "솔직히 시험도 그렇고, 학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었다""다리 수술이란 핑계가 생겨서, 그런 마음도 좀 있었다"고 했다. 한쪽 다리 수술을 그리 또 했다.

아이들 돕고 싶단 '꿈' 생겨…함께해준 고마운 선생님과 친구들
3개월 정도 함께한 뒤 다시 수술을 받으러 가야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친구들이 신선아씨에게 남겨준 롤링페이퍼. "내년에도  꼭 만나자", 빼곡히 쓴 글에서 마음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사진=신선아씨 제공3개월 정도 함께한 뒤 다시 수술을 받으러 가야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친구들이 신선아씨에게 남겨준 롤링페이퍼. "내년에도 꼭 만나자", 빼곡히 쓴 글에서 마음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사진=신선아씨 제공
"뭘 해도 안 돼,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렇게 엄청 부정적으로 파고들게 되더라고요. 대학 어디를 지원해도 못 붙는단 게 확실히 보이기도 했고요. 재수하겠다고 선생님께 얘기한 것도, 그래서였고요. 두려웠어요."

고3을 앞두고 신씨는 자존감이 이리 낮아져 있었다. 그때 도움을 준 게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었다. 학교 다니기 힘들다, 투정부리던 날이었다. 선생님이 신씨에게 말했다. "선아야, 너 4년 동안 학교 안 다녔잖아. 되게 잘하고 있는 거야, 지금 그 정도만 해도." 그 진심의 말은 좋은 기운을 가득 품고 있었다.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단다.

좋은 친구들도 곁에 있었다. 2학년 2학기 때 수술한 뒤 시험보러 학교에 왔을 때였다. 친구들이 말했다.

"네가 있었던 3개월 덕분에, 우리 반 분위기 엄청 좋았었어. 내년에 꼭 만나자."

고3이 된 뒤 친한 친구들과 다른 반이 되었다. 그래도 초반엔 계속 신씨가 있는 교실로 찾아와 불렀단다. 그러니 친구였다.

그 무렵엔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꿈이 생긴 거였다. 신씨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힘들 때마다 그랬다""나도 저런 분들처럼 남들에게 도움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복지사, 특히 아이들을 돕는 이가 되고 싶었단다. 특히 아동학대로 피해가 큰 아이들을 집에서 빼내고, 행복하게 만드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친구와 잠 깨우며 새벽까지 공부해 '합격'…"희귀병 가진 친구들 위한 입시정보 많아졌으면"
고된 공부를 이겨내는 글귀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다./사진=신선아씨 제공고된 공부를 이겨내는 글귀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다./사진=신선아씨 제공
이란 게 처음 생겼다. 이젠 공부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러니 동기부여가 됐다. 고3 때부터는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생각부터 바꿨다. "목표하는 게 있잖아요. 그럴 거면 실패해도 나중에 생각하자, 뭐라도 되자, 그렇게 맘 먹었어요. 차근차근 쌓아보기로요. 오늘은 이만큼만 하자, 다음엔 이정도 시험을 보고, 그 다음엔 이정도 발표하고, 목표를 정하니 그만큼은 되더라고요."

공부 시간도 늘렸다. 실은 신씨에겐 쉽지 않았다. 근육병 때문에 오래 앉아 있으면 온몸이 엄청 아파서였다. 체력도 부쳤다. 진짜 심할 땐 학교를 몇 번 빠지기도 했다.
평범한 공부도 어쩌면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끈을 놓지 않았고 결국 이루게 되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사진=신선아씨 제공평범한 공부도 어쩌면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끈을 놓지 않았고 결국 이루게 되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사진=신선아씨 제공
그래도 공부를 붙들었다. 시험 기간엔 새벽 2시까지 커피를 마셔가며 몰입했다. 친구와 줌 화면을 켜놓고, 서로 감시했다. 신씨는 "자고 있으면 전화를 수십통 걸어서 '너 대학 가야지, 뭐 하는 거야'라고 깨워줬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봐줬다. '장애인 입학전형'을 보는 대학을 찾아봐주고, 입학처에서 상담 받을 수 있게 도와줬다. 그는 수업시간에 신씨에게 매번 "선아, 이거 뭐야?"하며 이해했는지 물어봐주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게 아녀야 하고, 앞으로 조금 더 평범해져야 하며, 신선아씨처럼 공부하는 이들의 노고는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고. 학업의 길은 더 넓고 누구에게나 공평해야만 한다./사진=남형도 기자이 이야기는 특별한 게 아녀야 하고, 앞으로 조금 더 평범해져야 하며, 신선아씨처럼 공부하는 이들의 노고는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고. 학업의 길은 더 넓고 누구에게나 공평해야만 한다./사진=남형도 기자
길이 보였고, 노력을 더했고, 그 덕분에 신씨는 교과 우수상도 받았다. 성적도 고1, 고2 때 대비해 월등히 오를 수 있었다. 수시 전형으로 강남대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했다. 경쟁률이 6대 1이었다. 합격자 발표 땐 너무 떨렸단다. 신씨는 "판으로 화면을 이렇게 가리고 천천히 치우며 봤다(웃음)"고 했다. 예비 번호 2번이었다. 최종 합격을 한 뒤엔 "오, 진짜? 오, 내가 붙었어?"하고 외치며 뛸듯이 기뻐했다. 새내기가 되었다.

신씨는 그처럼 희귀병을 가진 이들이,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었음 좋겠다고 했다. "저처럼 근육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었음 싶고, 기회가 있단 걸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특히 수시 전형 등에서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고. 그는 "카페에도 몇년 전 얘기만 있고, 선생님도 장애인 전형을 잘 모르셨다" "이미 있는 건 홍보하고 없는 건 보완해서, 좀 더 편하게 입시에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희귀질환을 가진 이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남들과 다른 길을 한단 불안감이 있으니, 상담을 해줘서 자신감을 갖고 공부할 수 있게 해줬으면 싶다"고 했다. 그가 힘들 때 지탱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처럼.

그런 이들에게, 끝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의 좋은 점이 모이고 모여서, 그게 지금의 저를 이룬 게 아닐까 싶어요. 곁에 있던 선생님들,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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