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감사제' 벌써 손본다고? 회계업계 "갑을관계 또 뒤바뀐다"

머니투데이 정혜윤 기자 2023.03.0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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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재계 vs 회계, 지정감사제 갈등②..."사회적 인식 바꾸려면 10년은 필요"

편집자주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단행한 회계개혁의 핵심 제도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기로에 섰다. 재계와 회계업계가 지정감사제를 두고 극심한 갈등을 벌이고 있어서다. 재계는 제도 폐지를, 회계업계는 현행 유지를 주장한다. 금융당국이 개선책 논의에 나섰으나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정감사제 존속을 둘러싼 찬반 주장과 핵심 쟁점을 살펴봤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지난해 9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회계법인 CEO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지난해 9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회계법인 CEO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감사 시장은 독특한 시장이다. 돈을 내고 감사를 받게 돼 있다. 그런데 감사는 공익적 목적이 크다. 일반 용역시장과 똑같이 판단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한 회계법인 대표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이하 지정감사제)와 관련해 이 같이 말했다. 지정감사제는 기업이 감사인을 6년간 자유롭게 선택하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2017년 외부감사법 개정에 따라 2019년부터 시행됐다.



회계업계는 지정제 완화 논의는 회계개혁의 후퇴라며 난색을 표한다. 회계제도 개혁으로 감사인의 독립성이 보장돼 감사품질이 향상되고 투명해지기 시작했는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자율 수임은 (감사인이) 정신적 독립성을 지키기 쉽지 않다"며 "감사 수행과정에서 회계사들이 증거를 다 요구했을 때 기업이 '너무 까다롭게 구는 거 아니냐' 해서 기업 눈치를 보면 제대로 된 감사가 나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기업 주장대로 실제 주기적 지정제 등 신외감법 시행 이후 기업 주장처럼 감사보수, 시간 등이 모두 증가했다. 한국회계학회에 따르면 감사보수 평균값은 2020년과 2021년 전년대비 각각 25.02%, 7.65% 상승했다. 감사시간도 같은 기간 전년대비 각각 10.73%, 2.53% 상승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감사 시간과 보수 상승은 회계 품질과 투명성 향상의 밑거름이 됐단 주장이다. 한 회계법인 임원은 "코스닥 상장사나 작은 기업들은 내부통제가 잘 안돼 있고 대주주-경영자에게 (회사가)좌지우지되는 등 횡령문제도 많이 터졌다"며 "지정제를 하면서 기업이 느끼는 불편은 커졌겠지만 길게 봤을때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도움이 됐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주기적 지정'으로 기업·감사인 모두 긴장
'지정감사제' 벌써 손본다고? 회계업계 "갑을관계 또 뒤바뀐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도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는데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 지정감사인이 바뀐다고 하면 현재 감사인과 기업 모두 긴장한다"며 "새로 들여다보니 과거 관행적으로 넘어갔던 부분이나 혹시 잘못된 게 있으면 미리미리 수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우진·백복현 서울대 경영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2020년 주기적 지정제 대상이 된 기업들은 감사인을 지정받기 직전 연도인 2019년 '5% 이상 당기순이익 감사조정'을 한 비율이 50.26%로 나타났다. 2014~2018년까지 조정비율이 20.51~34.01%였던 것을 고려하면 급격히 상승했다. 2021년 감사인 지정을 받는 기업의 경우도 비슷한 패턴을 나타냈다. 결국 기업이 금융당국의 감사인 지정 전후에 더 엄격한 감사 조정을 하고, 자체 회계 품질 개선을 위해 더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재윤 삼일회계법인 부대표는 "기본적으로 대상 기업이 한 번씩은 지정될 때까지 기존 의도대로 시행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대표는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미치려면 한 10년 정도는 해야 한다"며 "중간에 힘들다고 바꾸다 보면 의도와 달리 변형되고 결국 효과도 못 살려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 되기 쉬울 것"이라고 짚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도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재형 한국공인회계사회 기획조정팀장은 지난달 열린 '회계개혁제도 평가 및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올해 자유선임 1년차로 제도의 효과성을 확인할 수 없는 시기"라며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느냐하는 논의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정제 완화는 노조 회계 장부 공개 등을 추진하는 현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않단 설명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노조·비영리민간 단체 회계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회계 투명성 강화와 거꾸로가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체질을 개선하려면 고통이 따르는 것도 사실인데 (감사인 지정제가) 좀 더 정착돼서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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