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지정감사제' 갈등… 금융당국, '고심' 깊어진다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2023.03.0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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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재계 vs 회계, 지정감사제 갈등①

편집자주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단행한 회계개혁의 핵심 제도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기로에 섰다. 재계와 회계업계가 지정감사제를 두고 극심한 갈등을 벌이고 있어서다. 재계는 제도 폐지를, 회계업계는 현행 유지를 주장한다. 금융당국이 개선책 논의에 나섰으나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정감사제 존속을 둘러싼 찬반 주장과 핵심 쟁점을 살펴봤다.

길어지는 '지정감사제' 갈등… 금융당국, '고심' 깊어진다


2019년부터 시행된 기업 회계개혁의 핵심 제도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이하 지정감사제)를 두고 재계와 회계업계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안긴다는 이유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지정감사제 도입에 따른 회계투명성 개선 효과를 강조하는 회계업계는 현행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금융당국은 지정감사제를 포함한 회계 제도 개선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재계와 회계업계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재계 "품질 떨어지고 부담만 커져" vs 회계업계 "투명성 개선 효과 사라질 것"
지정감사제를 둘러싼 재계와 회계업계의 갈등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금융위원회에 폐지를 요청하는 경제계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재점화했다. 대한상의는 지난달 9일 의견서 제출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여론전에 나섰다. 대한상의는 "지정감사제 도입이 감사인·피감기업 간 유착관계 방지 등 독립성 강화에 치중돼 감사 품질이 떨어지고 기업 부담만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주장했다.



지정감사제는 기업이 6개 사업연도의 감사인을 자유선임하면 이후 3개 사업연도의 감사인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제도(6+3)다. 기업과 회계법인 간 유착 가능성을 낮춰 분식회계 등 사고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지정감사제는 표준감사시간제,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의무화와 함께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2017년 단행한 회계 개혁의 결과물이다.

한국회계학회는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회계개혁제도 평가 및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정혜윤 기자.한국회계학회는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회계개혁제도 평가 및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정혜윤 기자.


회계업계는 지정감사제를 완화할 경우 회계투명성 개선이라는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제도 시행 4년차에 불과해 평가를 위한 객관적 근거 자체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노동조합의 회계투명성 확보를 주창하는 것과 배치되는 행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회계법인 임원은 "중간에 조금 힘드니까 바꾸자고 하면 '결국 후퇴하는 구나'라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며 "노조와 관련한 회계개혁에 나선 현 정권의 행보와도 반대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회계학회가 내놓은 '회계개혁 제도 평가 및 개선 방안'을 두고서도 재계와 회계업계는 엇갈린 해석을 내놨다. 재계는 회계학회가 △자유선임 기간 확대(6년→9년) △지정기간 단축(3년→2년) △직권지정 사유 축소를 대안으로 제시한 점을 근거로 "규제 완화 필요성이 증명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회계업계에서는 '현 시점에선 분석의 한계로 정책적 판단이 요구되며, 제도가 충분히 시행된 시점(3~5년)에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반드시 재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회계학회의 입장을 부각한다.

금융위, 추진단 꾸렸지만 6개월째 논의만… "의견 청취 중"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금융위원회. /사진=김창현 기자 chmt@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금융위원회.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금융위는 지난해 9월 '회계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을 꾸리고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상장사협회, 코스닥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공인회계사회, 회계법인, 학계 인사 등으로 추진단을 구성했다. 추진단은 첫 회의에서 △표준감사시간제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의무화 △주기적 지정감사제 등 지정제 확대를 주요 논의 과제로 정했다.

첫 회의 이후 진행 과정은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다. 추진단이 논의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제도 개선에 대한 재계와 회계업계 간 입장이 명확하게 엇갈리면서 타협점 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말 한 언론이 '정부가 지정감사제 대폭 완화를 결정했다'고 보도했으나, 금융위는 구체적 개선 방안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놨다. 지난달 초 비슷한 보도가 나오자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지난 3일 나온 현행 유지 보도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의 고심이 길어지면서 재계와 회계업계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추진단뿐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며 "아직 어떤 방안도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올해로 시행 4년차… 지정비율 '50% 돌파'
지정감사제의 법적 근거를 담은 개정 외부감사법(신외감법)은 2017년 10월 공포됐다. 실제 시행은 2020사업연도부터 이뤄졌다. 올해로 시행 4년차다. 모든 상장사와 대규모 비상장사가 적용 대상이다. 감사인 지정주체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다. 3년 연속 영업손실, 투자주의환기종목 지정, 3년간 최대주주 2회 이상 변경 등 직권지정 사유에 해당하면 자유선임 기간이라도 감사인 지정이 가능하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감사인 지정 상장사는 1256곳으로 전체 상장사의 54%에 해당한다. 현행 방식을 도입하기 전인 2017년(177곳)과 비교하면 상장사 지정비율이 8%에서 54%로 46%포인트(p) 높아졌다.

금융위는 지난해 7월 지정 대상 확대에 따른 감사품질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 보완을 단행했다.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기업의 지정감사는 감사품질관리 수준이 가장 높은 회계법인에 맡기고, 회계법인의 감사인 지정점수에 품질관리 지표를 반영하는 내용이다.

또 중견 회계법인으로 지정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회계부정 위험이 큰 기업의 경우 하향 재지정을 제한했다. 하향 재지정은 기업이 속한 군(자산총액 기준 분류)보다 상위 군에 속한 회계법인 지정을 받은 경우 하위 군 회계법인으로 재지정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기업과 회계법인을 각각 4개 군으로 분류하 지정군 방식에 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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