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아기 낳지…"돈 주고 끝 아냐" 출산율 2배 뛴 기적의 日마을

머니투데이 정혜인 기자 2023.02.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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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나기정' 출산지원책
보육비·의료비·월세 등 지원금 외 '사회적 지원' 다양
공동보육공간 구축…고령층 일자리사업도 함께 해결
2019년 출산율 2.95명 기록, 기시다 총리 방문하기도

일본 오카야마현 나기정의 육아지원센터 '나기 차일드 홈'의 모습 /사진=나기 차일드 홈 페이스북일본 오카야마현 나기정의 육아지원센터 '나기 차일드 홈'의 모습 /사진=나기 차일드 홈 페이스북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이하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인구 소멸 얘기가 진작부터 나온 일본(지난해 1.27명 추정)보다도 크게 낮다.

한국 통계청 자료 발표 며칠 전인 지난 주말(19일) 일본에선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을 방문한 일이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기적의 마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곳은 일본 지자체들이 연이어 탐방할 정도로 부러움 사고 있다. 2019년 기준 출산율 2.95명,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 2.1명을 훌쩍 넘긴 이 마을엔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인구 6000명 작은 마을의 변화
일본 오카야마현 '나기'정의 위치 /사진=구글지도일본 오카야마현 '나기'정의 위치 /사진=구글지도
일본 서부 오카야마현의 인구 6000명이 안 되는 산속 마을 '나기'정(町·한국 '읍'에 해당). 오카야마 공항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의 나기정은 줄어드는 주민 수로 위기를 맞았다. 2005년 출산율 1.41명. 하지만 2019년엔 2.95명으로 당시 일본 전국 평균(1.36명) 대비 두 배가 넘었다. 이듬해(2020년) 출산율이 2.20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전국 평균(1.33명)보다 크게 높다.

아사히·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나기정은 지역의원·공무원 수까지 줄여가며 2004년부터 적극 시행한 독자적인 출산·육아 지원 정책으로 공동 육아 시설 등 주민참가형 지역 출산·육아 네트워크 구축에 힘쏟은 점이 특징이다.



나기정의 '육아 응원' 대사인 스기우라 도요사는 최근 세토나이카이(KSB) 방송 인터뷰에서 "아이를 안심하고 낳을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출산율도 높일 수 없다"며 "육아는 모두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육아 선배나 같은 연령대의 아이들을 가진 부모와 의견을 교환하면서 '육아는 고독이 아니다'라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단번에 수치를 올리려는 방식이 아닌 지역사회 전체가 자연스레 출산과 육아를 독려하는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힘써왔다. 지난해 10월 닛케이에서 이곳의 한 공무원은 "주민 요구를 반영해 10~20년 동안 조금씩 경제적, 정신적 지원을 늘린 결과"라고 나기정의 다양한 지원책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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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 끝이 아냐…같이 참여할 공간을 만든다
나기정 홈페이지에는 '나기정 육아 응원 선언'이 올라와 있다. 이 페이지엔 지역의 자체 출산·육아 지원 내용이 설명돼 있는데 경제적, 사회적 지원 등 항목이 20개 이상이다.

일본 지방정부 '나기'정의 홈페이지는 육아·교육 부문(왼쪽 메뉴)을 가장 위에 두고 있으며, 출산율이 2019년 2.95명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지방정부 '나기'정의 홈페이지는 육아·교육 부문(왼쪽 메뉴)을 가장 위에 두고 있으며, 출산율이 2019년 2.95명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적 지원에는 △재택 육아 지원금(보육원 보내지 않는 경우 아동 1명당 월 1만5000엔) △보육료 50% 지원 △초중교 급식비 지원 △교재비 지원 △무료 의료비(고등학생까지) △월 5만엔(약 48만원)의 '젊은 층 주택' 지원 △청소년 취학 지원 △출산 축하금 △난임 치료비 지원 △아동수당(중학생까지) 등이 포함된다.


사회적 지원은 맞벌이 가족·직ㅇ장인 여성을 위한 육아 시설이 포함되는데 이중 나기정을 대표하는 육아하는 이들의 광장 역할을 하는 '나기 차일드 홈(어린이집)'과 부모가 아이와 함께 있는 일하는 공간 '나기 시코토스탠드(일자리 매장)'가 눈에 띈다. 기시다 총리도 19일 '나기 차일드 홈' 등을 둘러봤으며, 이후 "귀중한 영감을 많이 받았다"면서 저출산 대책의 핵심이 사회 전체 의식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9일 일본 오카야마현 나기정의 육아지원센터 '나기 차일드 홈'에 방문해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나기 차일드 홈 페이스북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9일 일본 오카야마현 나기정의 육아지원센터 '나기 차일드 홈'에 방문해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나기 차일드 홈 페이스북
/사진=나기 차일드 홈 페이스북/사진=나기 차일드 홈 페이스북
'나기 차일드 홈'은 1998년 자녀 양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가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에서 시작돼 2004년 정식 육아 지원사업으로 채택됐다. 나기정 주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 센터에는 육아 상담원이 상주해 육아 관련 상담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육아 선배'가 시간당 300엔(2900원)에 아이를 돌봐주기도 하고, 자원한 보호자 등의 진행으로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하는 '자주 보육' 개념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올해 3살과 2살, 두 아이를 둔 하지야 미츠루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고, 부모는 센터에 있는 직원에게 육아 상담을 하거나 센터를 찾은 다른 부모와의 교류가 가능한 곳"이라며 "이런 (시설이 있는) 마을이라면 아이 2명이라도 키울 수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른 주민은 "나기 차일드 홈에 오면 아이도 저도 친구가 생기고 막연한 안도감이 생긴다. (육아) 불안이 해소되는 것"이라며 공무원 아닌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육아에 힘을 쏟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7년 나기정 취업 지원의 일환으로 설치된 '나기 시코토스탠드'는 "사람, 지역, 사물의 연결"이라는 목표로 청소, 잔디 깎기, 바느질 등 시간제 근로자가 필요한 업체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을 연결해주고 있다.

/사진=일본TBS 뉴스 방송화면/사진=일본TBS 뉴스 방송화면
이 시설은 당초 일할 곳이 없는 고령자의 일자리를 마련하고자 설립됐지만, 저출산 대책으로 쓰이고 있다. 매일 출근하고, 긴 업무시간이 부담스러운 육아 여성들에게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경제 활동도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간의 한쪽에서는 보호자가 일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다.



남편을 따라 규슈에서 나기정으로 이사를 왔다는 두 아이를 둔 한 여성은 일본TBS와 인터뷰에서 "나기 시코토스탠드을 통해 2개월에 한 번 1~2시간씩 '라벨 붙이기' 일을 하고 있다"며 "가끔 (일하러) 가기 때문에 육아와 일의 양립이 쉽다.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 다른 직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만족했다.

출산 지원책의 +α(플러스 알파) 효과가 있다?
앞서 언급됐지만 나기정의 출산 지원책은 어린 아이에 머물지 않는다. 성인에 가까운 고등학생에게도 3년 동안 연 13만5000엔(약 130만원)을 지원한다. 현지 공무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7월 아사히신문에서 "저출산 대책은 가장 큰 노인 복지"라고 말했다. 육아를 하는 세대에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면 다른 연령대의 삶도 좋아진다는 생각이다.

이에 따르면 고등학생에 대한 지원금은 이는 버스비 보조의 성격이다. 이들이 버스를 매일같이 타면서 버스 운영이 안정되고, 이는 곧 노인들이 병원·상점을 갈 수 있는 중요한 교통수단을 지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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