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팬데믹 이후 급성장할 백신 시장… 뒤처지는 기술력
엔데믹 이후에는 코로나19를 넘어 폐렴구균·자궁경부암 등 고부가가치(프리미엄) 백신 수요가 커질 전망이다. 실제로 화이자와 모더나 등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던 글로벌 제약사들은 후속 제품으로 인플루엔자나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mRNA 백신을 개발 중이다.
그러나 원천 기술력이 부족한 대한민국은 백신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82,100원 ▼600 -0.73%)가 국내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만들었지만 낮은 접종률로 추가 완제품 생산이 중단됐다. 지금까지 접종에 사용된 스카이코비원은 약 5000회분으로 접종률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변이 발생에 따른 후속 개량백신 개발도 정체된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의 mRNA 백신 기술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도쿄 소재의 제약사 다이이찌산쿄는 일본 최초의 mRNA 코로나19 백신 공장을 건설 중이라고 최근 밝혔다. 2024년까지 2000만회분 생산 용량을 갖출 예정이다. 다이이찌산쿄는 mRNA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DS-5670'도 보유 중이다. 지난달 일본 정부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승인이 이뤄지면 일본 최초의 mRNA 코로나19 백신이 탄생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도 에스티팜 (85,700원 ▲200 +0.23%)·아이진 (4,705원 ▲75 +1.62%)·큐라티스 비상장 (5,200원 ▼500 -8.77%)가 mRNA 백신을 개발 중이지만 이들 파이프라인은 모두 임상 1상 혹은 2a상 등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 자금·인력 등 정부 지원 시급… '백신 불신' 국민 신뢰 회복해야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경제연구센터장은 "아무래도 안 가 본 길을 가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패할 확률도 높다.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기관의 적극적인 인허가 지원이 필요하다"며 "시장이 작거나 불확실한 특정 백신 개발에 뛰어들 기업은 아마 없을 것이기에 성공불융자 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백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경우 정부의 구매 확약이 있어야 기업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해 여러 기업이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를 동시에 예방하는 콤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낮은 신뢰로 이들 백신의 접종률이 떨어진다면 전체 산업 성장도 어렵게 된다. 정부는 팬데믹 국면에서 '방역패스' 등 무리한 방역 정책과 잦은 백신 접종 독려로 국민의 피로감을 유발했다. 국민은 백신 접종 보이콧으로 응수했다. 20일 기준 97%에 달하는 1·2차(기초접종) 백신 접종률과 달리 기준 18세 이상 성인의 동절기추가 접종률은 15% 미만이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정부가 계획하는 것처럼 일 년에 한 번 접종하는 등 접종 간격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방에서 주인공으로…팬데믹 속 '8조 신화' K-진단의 미래는?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3년간 우리 진단 기업의 활약은 대단했다. 국내 주요 10개 진단 기업(에스디바이오센서 (16,420원 ▼290 -1.74%), 바이오노트 (5,080원 ▼80 -1.55%), 휴마시스 (2,780원 ▼45 -1.59%), 랩지노믹스 (6,070원 ▼120 -1.94%), 바이오니아 (56,200원 ▲3,600 +6.84%), 제놀루션 (4,735원 ▼90 -1.87%), 수젠텍 (8,390원 ▼40 -0.47%), 씨젠 (24,600원 ▲150 +0.61%), 엑세스바이오 (9,140원 ▼20 -0.22%), 오상헬스케어)이 2020~2022년 3년간 거둔 영업이익(컨센서스 포함, 씨젠·엑세스바이오·오상헬스케어는 2022년의 경우 3분기 누적 실적 기준)은 약 8조4266억원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다.
양질의 진단 제품 공급으로 글로벌 팬데믹 대응에 기여했단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또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바이오 산업의 변방에 머물던 진단이란 영역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맞아 K진단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제 만들기만 하면 수요가 넘치던 코로나19 진단 시장은 사라졌다. 주요 진단 기업의 실적 역성장은 이미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우리 진단 산업이 기술 고도화, 해외 시장 공략 등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지위를 굳건히 할지, 팬데믹 시기 운 좋게 일회성으로 떼돈을 벌고 사라지는 그저 그런 사업으로 그칠지는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엔데믹을 앞둔 지금. 백신과 치료제와 달리 국내 진단 기술이 어떻게 팬데믹 국면에서 막대한 부를 창출했는지 살피는 일은 우리 바이오 산업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엔데믹 시기 우리 진단 산업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업계 전반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 K진단은 어떻게 떼돈을 벌었나
국내 진단 기업이 팬데믹 초기 비교적 발 빠르게 코로나19 진단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공급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진단 업계 현장에선 국내 진단 기업들이 팬데믹이 오기 전 큰돈을 벌지 못하면서도 수년간 연구 개발에 전념하며 쌓은 기술 경쟁력을 첫손에 꼽는다. 다양한 질환과 질병에 대한 여러 종류의 진단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보다 빠른 코로나19 대응이 가능했단 설명이다.
또 한 가지 핵심 요인으로 정부와 협업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국내 진단 기업들에 바이러스주를 분양하고 진단 제품 개발 과정에서 긴밀히 협의하는 등 민간 업계와 활발하게 협업했다.
특히 우리 정부는 긴급승인제도 운영 등을 통해 한 박자 빠른 품목허가로 국산 코로나19 진단 제품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도왔다. 팬데믹 초반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받은 한국산 코로나19 진단 제품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품질을 앞세워 여러 나라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이는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규제기관과 민간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약·바이오는 시장 선점 효과가 크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코로나19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개발로 엄청난 이익을 창출한 반면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이 빛을 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시장 선점 효과를 들 수 있다. 그만큼 신속한 개발과 규제기관의 승인이 중요하단 의미다.
한 진단 업계 관계자는 "진단 시장이 척박한 환경임에도 다수의 국내 기업이 사스와 메르스 등 감염병이 확산할 때 실전에서 통할 수 있는 기술 역량을 꾸준히 확보한 게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선제적 대응에 주효했다"며 "또 코로나19 진단 제품 개발과 생산능력 확보, 인허가 등 모든 과정에서 민간과 정부 부처 등 관련 기관의 신속한 협업이 빛을 발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팬데믹 시기 K진단의 성공 교훈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함께 공유하며 발전의 계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며 "기초 기반 기술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 시장과 규제기관의 신뢰 확보 및 협업 등이 시너지를 내야 후발주자인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진단은 끝물? 선진시장 승부·기술 고도화가 살길
우리 진단 업계가 '끝물 아니냐'는 부정적 평가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남아있는 과제가 적지 않다. 주가가 급등한 뒤 급락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개인투자자가 손실을 떠안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내 진단 업계가 팬데믹 때 외형을 키운 만큼 그에 맞는 내부 시스템 정비, 펀더멘탈(기초체력) 강화, 시장과 소통 확대 등 내실 있는 경영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특히 팬데믹 국면에서 번 막대한 자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글로벌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해외 시장, 특히 규모가 큰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엔데믹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
이미 일부 긍정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의 경우 최근 미국 진단 기업 메리디안바이오사이언스를 약 2조원에 인수하는 등 대규모 M&A(인수합병)를 완료했다. 메리디안 인수를 통해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M&A의 궁극적인 성적표는 향후 시너지 효과 등을 살펴야겠지만 비교적 신속하게 대형 M&A에 나서며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단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또 진단 기술 고도화와 영역 확장, 더 나아가 진단의 디지털 전환 및 예방의학과 접목 등 꾸준한 연구와 새 시장 창출이 뒷받침돼야 한다. 팬데믹 전이라면 우리 진단 업계가 감히 도전하기 힘든 영역이다.
그만큼 우리 진단 업계가 팬데믹 때 확보한 해외 시장 영업망을 비롯한 글로벌 네트워크, 진단 제품의 신속한 개발과 대량생산 및 글로벌 공급 노하우, 탄탄한 자금력 등이 강력한 무기란 뜻이기도 하다. 다양한 국가에 진단 제품을 수출하며 판로를 개척했고, 여러 나라에서 인허가를 획득한 경험을 얻었다. 이 같은 자산은 향후 다른 팬데믹이 올 때 우리 진단 업계가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진단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며 전체 규모를 키우고 더 나아가 우리 국민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진단 업계 오너와 경영진의 투철한 기업가 정신도 중요하다. 일부 진단 기업의 경우 법인의 이익 분배 문제를 두고 소액주주와 다툼을 벌이고 있고, 일부 오너는 팬데믹 시기 창출한 부를 바탕으로 지분을 매각해 큰 돈을 손에 쥐었다. 물론 기업 오너의 차익 실현 그 자체를 나쁘게 볼 수 없단 사실은 자명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업의 미래 가치, 시장과 소통, 주주와 관계 등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추후 더 따져볼 일이다.
유철욱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은 "코로나19로 국내 진단기업의 면역화학검사 기반 신속진단키트가 해외에 많이 팔렸다"며 "앞으론 자가혈당측정, 현장진단, 분자진단, 혈액진단, 조직진단, 진단화학 검사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시약과 검사기기, 측정기기, 체외진단 소프트웨어, 조직병리기기 등을 개발하고 상업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특히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디지털 전환을 통해 대량 진단, 적용 질환 확대, 플랫폼 기반 기술 구축 등에 나서야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며 "전 세계 체외진단시장은 2026년까지 1400억달러(약 179조2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우리 진단 기업이 얼마나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진단 기업의 투철한 노력은 물론이고, 이에 더해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정책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때 中눈치 안 봤다면 어땠을까"…세계 방역관제탑 WHO의 조건

중국이 우한시에 빗장을 걸었을 때 유엔 산하 전문기구이자 글로벌 방역 관제탑인 세계보건기구(WHO)가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어땠을까. 국제사회가 '팬데믹의 덫'에 걸려 3년을 잃어버리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 WHO 코로나19 독립조사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기 직전인 2020년 2월을 '잃어버린 한 달'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같은 반성도 담겨 있다. '팬데믹을 막을 수 있었지만 초기 대응이 늦어져 기회를 놓쳤다.'
■ "이런 WHO를 봤나"…세계는 할 말을 잃었다

바이러스 집단감염 사태를 숨기던 중국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WHO에 보고를 한 지 70여일이 지나서야 팬데믹 결정을 내렸다. 이때는 이미 세계 118개국에서 12만명 이상이 감염돼 4300여명이 사망한 뒤였다. 갑작스런 팬데믹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세계 각국이 WHO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매끄럽지 않았다.
팬데믹 늦장 선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스크 착용 여부, 무증상 전파 이유, 부스터샷 효과, 팬데믹 종식 등 같은 사안을 놓고도 입장이 계속 달라졌다. WHO 사무국에는 팬데믹 대응을 경험했거나 선제적으로 판단할 전문가가 부족했다. 2017년 취임 후 처음으로 마주한 팬데믹 대응에 서툰 모습을 보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리더십도 도마에 올랐다.
■ 중국 눈치 볼 수밖에 없었던 WHO의 속사정

코로나19 기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은 지금까지도 WHO의 발목을 잡고 있다. 팬데믹 기원 조사팀을 우한에 파견하고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지 못해 학계와 의료계의 공분을 샀다. 의기양양해진 중국이 WHO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미국 포틀랜드 육군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퍼졌다고 주장하며 미국 기원설을 조사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WHO의 예산 구조를 들여다보면 왜 특정 국가의 입김에 휘둘려 중심을 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WHO는 각 회원국이 내는 의무분담금과 자발적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전체 예산의 80%가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이뤄지는데 대부분 특정한 용처를 정한 지정기부금이어서 예산 운용 폭이 좁다. 의무분담금 역시 강제력이 없어 특정 국가가 자금 집행을 하지 않아도 손쓸 방법이 없다.
그동안 WHO에 가장 많은 금액을 지원해 온 국가는 미국이었다. 그런데도 코로나19 초기 노골적으로 중국 편들기에 나선 것은 앞으로 10년간 600억위안(약 11조3000억원)을 WHO에 기부하겠다는 중국의 약속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3년간의 팬데믹을 겪으며 WHO의 한계가 드러났다. 일각에선 세계 보건 비상사태에 대비할 새 보건기구 창설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보다는 WHO의 조직·예산·인력 등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산이 부족해 특정 국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힘 없는 리더십 구조를 만들어 놓고 지적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WHO 각 회원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차지호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입은 피해액의 10%만 선제적으로 투자했어도 최악의 팬데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세계 각국이 글로벌 보건에 대한 기여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