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주가조작' 의혹으로 시험대에 오른 인도 경제[PADO]

머니투데이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2023.0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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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도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올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이 될 전망입니다. 애플은 중국에 집중돼 있던 제조 라인 일부를 인도로 옮겼습니다. 대중국 의존을 줄이고 아시아 다른 지역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 한국에게도 인도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인도도 한국과 비슷하게 재벌을 필두로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켜왔는데 최근 이 성장모델이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외국 투자기관이 주요 재벌 그룹의 재무상황이 '사기'에 가깝다고 비판하자 그룹 계열사 주식 뿐만 아니라 인도 증시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도 재벌 중심의 성장 전략을 수정해야 할지 모릅니다. 한국 경제의 앞날을 고민하는 독자라면 인도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의 2월 9일 기사를 요약 소개합니다.

(로이터=뉴스1) 강민경 기자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로이터=뉴스1) 강민경 기자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는 국가에 기여하는 기분을 주는 도전을 좋아합니다. 다른 할 수 있는 사업도 많았지만 인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무언가를 만들 때 더 큰 만족을 느낍니다." 가우탐 아다니가 2011년 주간지 <인디아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일군 인도 굴지의 재벌 기업 아다니 그룹의 여정은 지난 1월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한 투자기관이 그룹의 재무상태를 비판했고 그 여파로 그룹 상장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아다니 그룹과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긴밀한 관계인데다가 모디 총리의 경제 성장 야심이 크다보니 전문가들은 인도 정부도 잘못된 길로 인도 경제를 몰고 가는 건 아닐까 의문을 품는다.

힌덴버그 리서치가 아다니 그룹에 대한 보고서를 낸 지(1월 24일) 2주가 지났지만 그 여파는 아직 가라앉을 줄 모른다. 미국 소재의 이 투자회사는 가치가 과대평가됐다고 여기는 기업의 주식을 공매도하여 수익을 내는데 아다니 그룹이 계열사 주가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아다니 그룹은 이를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반발하면서 413페이지나 되는 반박문건을 발표했다.



아다니 회장 역시 안정적인 재정상태를 과시하면서 놀란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주가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2월 6일 아다니 트랜스미션의 주가는 10% 하락해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날 저녁 이 회사는 호실적(好實績)을 발표했고 이튿날 주가가 10% 급등하면서 또다시 거래 중단이 발생했다. 아다니 그룹 전체의 시가총액은 힌덴버그의 보고서가 나온 후 절반 가까이 증발해버렸다.

아다니 그룹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쨌든 아다니 그룹은 (얼마나 과대평가됐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매출을 내는 실질적인 자산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파트리크 푸야네 토탈에너지스 CEO는 수소 투자 연기를 발표하면서도 아다니 그룹과의 합작 천연가스 판매 사업은 여전히 건실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다니 그룹은 지출과 채무를 줄여야 하는 압박감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래픽=The Economist, PADO/그래픽=The Economist, PADO
아다니 그룹은 현재 건설 중인 모든 프로젝트들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재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진 현재로선 적어도 투자계획 중 과감한 것은 속도가 늦춰지고 몇몇은 좌초될 수도 있다.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아다니의 '투자가능' 등급을 유지하면서도 현재의 투자 계획의 많은 부분이 "연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여러모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아다니 그룹은 인도 전역에 투자하고 있다(지도 참조). 인도의 500대 상장기업의 전체 자본지출 중 7%가 아다니 그룹 몫이다. 아다니 그룹은 2030년까지 녹색투자에 700조 달러를 쓰겠다고 공언했는데 이는 인도를 녹색경제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정부 계획의 일부이기도 하다. 리서치 회사 인도경제모니터링센터(CMIE)는 현재 진행중이거나 계획된 정부 및 민간 대규모 자본지출 사업의 데이터베이스를 작성·유지하고 있는데, 아다니 그룹의 투자가 총액으로는 전체의 3%에 해당하지만 2021-22 회계년도(2021년 4월~2022년 3월)에 발표된 최신 사업만 놓고 볼 때는 10%에 달한다. 한마디로 아다니 그룹의 투자 감소는 인도 경제 전체의 큰 그림에서도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아다니 같은 기업을 독보적으로 만드는 점은 규제, 지리한 법적 투쟁, 관료적 타성의 늪을 돌파하는 능력에 있다. 인도는 늘 사업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러한 사업상의 어려움은 문어발처럼 확장해가는 가문 중심의 인도 재벌에게 중소기업 대비 유리한 지위를 부여했다. 영향력과 담보로 무장한 기업은 돈을 쉽게 빌리고 관료들을 움직일 수가 있다. 영향력과 담보는 어느 산업에서나 유용하기 때문에 이런 그룹은 점차 사업범위를 확장하기 마련인데 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이 되게 만드는 능력은 경제성장을 자신의 치적으로 여기는 모디 총리에게 특히 소중하다. 그는 더 많은 투자 유치를 원하는데 특히 제조업 부문의 투자를 바란다. "인도가 원하는 수준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런 양반들이 필요하죠. 이들 없이는 물거품이니까요." 인도 재벌의 부상을 다룬 책 <억만장자의 나라(The Billionaire Raj)>의 저자 제임스 크랩트리의 말이다. "아다니가 부채를 끌어쓰는 걸 좋아한다고 평할 순 있지만… 그러면서 진짜 투자도 이루어지거든요. 항구가 생기고 철도가 생기는데 인도가 필요로 하는 게 바로 이겁니다."

모디의 경제성장 모델은 그가 구자라트 주 수상으로 재직하던 2001년부터 2014년에 걸쳐 형성됐고 이후 인도의 수상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도입됐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의 밀란 바이쉬나브는 그 성장 모델에 대해 "정부가 일군의 기업에게 토지, 자본, 세금, 환경 및 건축 관련 규제 등에 대해 특혜를 제공하고 기업은 그 대가로 공장과 가게를 차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건 이 성장 모델이 전국 차원으로 규모가 커진 버전입니다. 모디 정부가 인도의 국가대표급 기업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채용하고 있다는 게 뚜렷해졌죠."

/그래픽=The Economist, PADO/그래픽=The Economist, PADO
모디 총리에겐 인도의 경제를 성장시킬 역량이 있는 기업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다니 그룹 외에도 대규모 투자를 실시할 수 있는 기업은 많다. 2016년 릴라이언스 그룹은 중저가 4G 통신망 지오(Jio)를 출범해 인도의 무선통신 환경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작년에 타타 그룹은 빚에 허덕이던 국적항공사 에어인디아를 인수했는데 정부가 오랫동안 민영화하려고 애를 썼던 회사였다. (에어인디아는 과거 타타 그룹 소유였는데 1953년 국유화됐다.) 다른 인도 재벌 몇몇은 아다니 그룹처럼 자본 차입에 적극적인데도 불구하고 아다니 보다 규모도 크고, 재무상태도 건전하고 수익률도 높다.

하지만 인도 재벌의 계속되는 성장은 양날의 칼이다. 재벌은 훗날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편이다. 중소기업들은 정부 사업을 수주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불평한다. 정부와 연줄이 있는 기업이 한 산업에 진출하거나 입찰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기업들은 경쟁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게 되고, 이로써 경쟁도 투자도 줄어들게 된다. "분명한 건 다른 민간 투자자에게도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투자은행 내틱시스의 이코노미스트인 트린 응우옌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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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자본 투자에서 별로 성적이 좋지 않다. 2000년대 들어 릴라이언스, GVK, GMR 같은 재벌 그룹이 역대급 투자붐을 이끌었다. 2011년 자본지출은 GDP의 39%에 달했는데 이는 25% 미만이었던 2002년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증가세다. 하지만 당시 투자 사업의 상당수가 너무 낙관적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고유가, 인플레이션, 루피화 평가절하를 겪으며 많은 사업이 시들었다. 은행은 엄청난 규모의 악성 채권을 떠안게 됐다. 투자는 다시 GDP의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도는 그 이후 아직까지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다.

아다니 사태로 민간 투자의 부활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주가 조작과 부실한 회계감사에 대한 고발은 인도 주식시장, 기업 거버넌스, 정부의 관리감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이번 사태는 인도의 국가, 사회 제도 전반(정치적 견제와 균형, 언론, 시민 사회)에 대한 시험이 될 수도 있는데 인도가 이를 통과하리란 보장은 없다.

모디 총리의 경제성장 모델은 그동안 아다니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모디 본인도 인도 정치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상에 차린 음식이 원하는 수준의 투자를 유치할 정도로 군침을 돌게 만들지는 못하는 듯하다. 아다니 회장 말마따나 구자라트 사람의 성공에 대한 열정이 그만치 강하다면 같은 구자라트 사람인 모디 총리는 보다 신중하게 상을 차려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국제시사·문예 버티컬 PADO의 '아다니 그룹 사태로 흔들리는 인도 경제'를 요약한 것입니다.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독자 여러분이 급변하는 세상의 파도에 올라타도록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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