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

머니투데이 최성근 전문위원, 김상희 기자 2023.0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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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글로벌 스캐너 #27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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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키우=AP/뉴시스]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열차 차량 기지가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파괴돼 잔해만 남아 있다. 2022.09.29.[하르키우=AP/뉴시스]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열차 차량 기지가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파괴돼 잔해만 남아 있다. 2022.09.29.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다. 러시아의 초반 압승으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서방세계 지원을 힘입은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지난 1년간의 전쟁 결과 양측 군인 사망자만 약 30만 명, 우크라이나 난민은 약 1800만 명에 달한다. 현재도 동부 전선의 돈바스 지역에서 바흐무트 등 핵심 거점을 탈환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진행 중이다.

최근 총사령관을 전격 교체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한 러시아는 봄철 '라스푸티차'(진흙탕이 되는 시기)가 오기 전에 우크라이나를 향한 대공세를 시작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징집한 30만 명의 예비군 중 훈련을 마친 일부 병력들을 동부전선에 집중 배치하고,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전투기와 헬리콥터 등 공중 병력을 배치했으며, 흑해 함대는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를 향한 순항미사일 공격을 재개했다. 한편에서는 미국과 독일의 최신식 탱크가 전력화되기 전에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2년 차로 접어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향후 장기화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고, 전쟁이 멈출 변수들을 짚어 봤다.

제로섬 게임이 돼버린 전쟁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가까울 시일 내에 전면적인 승리나 평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서방 세계가 러시아와의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쟁의 양상이 양측이 물러설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이 됐다는 데 있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 러시아의 영광 회복으로 2024년 대선에서 재집권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전쟁을 시작한 푸틴에게 이미 병합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동부 4개 주는 포기할 수 없는 전리품이자 성과물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수도를 포함해 동남부 지역 대부분의 도시들이 잿더미가 됐고 수천 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18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했다. 또 흑해 무역항과 산업 및 광업 중심지인 돈바스 지역, 농경지를 포함한 영토의 5분의 1을 러시아에게 무력으로 점령당한 상황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크림반도를 포함한 영토의 완전한 수복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태세다.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알렉산더 가든에서 '조국 수호자의 날'을 맞아 무명 용사의 묘 헌화식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알렉산더 가든에서 '조국 수호자의 날'을 맞아 무명 용사의 묘 헌화식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쟁은 러시아의 물량 공세와 서방의 지원이 맞물려 소모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현재 러시아가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물량 면에서 우크라이나에 비해 월등하다. 탄약, 포탄, 미사일, 탱크 등 군수물자 생산도 늘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 세계로부터 각종 최신 무기와 함께 전술 지원까지 지속되면서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압도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된다. 더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군은 훈련도 부족하고 사기 면에서 우크라이나 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지상작전보다 미사일과 드론 폭격을 포함한 물량 공세에 치중한다.


우크라이나는 모든 전력을 외부에 의존하다 보니 탄약과 포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독일의 최신식 탱크 지원에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데다 다양한 무기 체계의 호환과 보급 문제 등으로 전쟁 수행에 많은 애를 먹고 있다.

나토의 단결로 러시아의 침공이 무력화되는 측면도 장기화 원인으로 지적된다. 푸틴은 당초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 등 에너지 무기화를 통해 나토의 분열을 예상했다. 그러나 푸틴의 기대와는 달리 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안보의식이 한층 고조됐다. 중립국으로 남아있던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폴란드와 발트 3국 등 러시아와 인접한 나토 회원국들은 병력을 대폭 증강했고, 전쟁에 소극적이었던 독일은 대규모 무기 구매를 위해 1000억 유로의 특별 방위 기금을 책정했다.

평화 또는 종전 협상을 위한 명분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전쟁 발발 이후 양측은 5차례 협상을 가졌으나 모두 무산됐다. 이후 평화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들이 제시됐지만 서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거부했다. 협상이 재개되려면 어느 한쪽이 핵심적인 요구사항들을 변경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그런 명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엄청난 소모전으로 더 이상 협상 전제조건을 고수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러서야 명분이 마련될 수밖에 없다.

평화 협상을 위한 상호 간 신뢰도 부족하다. 우크라이나가 이미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끔찍한 전쟁 범죄까지 당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협상을 위한 파트너로 신뢰할 수 없는 상대다. 양측이 서로 이길 수 있다고 믿을 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태에서 평화 협상은 불가능하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석좌교수는 포린어페어스에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크림반도를 포함해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반대로 러시아가 현재 점령한 영토를 유지하는 것은 상상이 가능하다"며 "종국적으로 전쟁 해결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양보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합의가 안될 수도 있고 과거 한국 전쟁처럼 양측의 얼어붙은 갈등으로 끝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종식시킬 와일드카드는?
전쟁 장기화를 피할 길이 적어 보이지만 갑작스러운 변수에 의해 전쟁이 멈추거나 중단되는 '와일드카드'가 등장할 수 있다.

우선 푸틴 대통령이 반대파에 의해 몰락하는 상황이다. 푸틴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전황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전쟁을 앞장서 수행하고 있는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국방부가 자신에 대한 반감으로 군수품 지원을 거부하면서 병력 피해가 커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때 용병을 대규모 참전시켜 권력 실세로 부상한 그가 내부 권력투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예비군 징집과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여론도 조금씩 돌아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지도부의 권력 투쟁이 푸틴의 몰락 또는 사망으로 이어질 경우 전쟁은 빠르게 종식될 수 있다.

러시아군이 패퇴할 경우에도 전쟁 중단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전쟁을 수행하는 데 반해 죄수들까지 병력에 포함시킨 러시아군은 오합지졸에 가깝다. 젤렌스키는 최전방 부대를 시찰하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푸틴은 먼 모스크바에서 지시만 내린다. 서방의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군대가 연승해 주요 점령지역들을 차례로 잃게 될 경우 푸틴은 종전 협상에 나설 수 있다.

(키이우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앞두고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포옹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키이우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앞두고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포옹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대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미국의 우크라이나 원조액은 약 2000억 달러에 달한다. 독일 약 1700억 달러, 그 밖의 국가들도 약 800억 달러에 달하는 지원을 했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억 6000만 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다. 미국 내에서도 전쟁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최근 의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우크라이나 피로 결의안'이 하원 외교위원회에 회부됐다. 만약 서방세계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줄어들거나 중단될 경우 휴전 또는 종전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핵무기 배치 등 극단적인 위기 상황이 펼쳐질 때다. 러시아가 주요 거점 패퇴와 크림반도까지 잃어버리는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 위해 핵무기를 실전에 배치하거나 전술핵무기 사용 등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게 될 경우다. NATO 등 서방세계는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참전하거나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장거리 미사일 등을 지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대전 발생을 우려한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이 급물살을 타면서 역으로 휴전 협정이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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