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연임 과정의 불투명성을 지적하고 지난달 윤 대통령까지 KT와 포스코 등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KT안팎에서는 여권과 정부의 압박에 구 대표가 더이상 버티기 힘들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CEO 선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KT는 올스톱 상태였다. 연말로 예정됐던 임직원 인사는 물론 사업계획까지 확정하지 못하면서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연임에 성공해도 조직이 휘청일게 뻔했다. 결국 구 대표가 조직을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린 셈이다.
안타까운 것은 KT 이사회가 앞선 두 차례 대표선임 과정에 있어 좀 더 신중했어야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문제제기 이후, 이사회는 후보측 요청으로 복수후보 심사를 비공개했다고 밝히면서도 심사기준과 절차는 공개하지 않았다. 지배구조 위원회를 통과한 3명의 최종후보가 추려졌을 때에도 면접절차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다.
물론 개개인들은 충분한 자격과 요건을 갖췄다고 자부할 것이다. 또 KT와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어야만 CEO 후보로 지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료와 정치경험을 통해 축적한 넓은 시야와 정무적 역량, 리더십이 조직을 쇄신하고 더이상의 외풍을 막는데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원 5만8000명에 50개 계열사, 시총 10조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 KT의 CEO는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KT안팎의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챗 GPT로 상징되는 AI(인공지능)의 전방위 확산 속 국내외 빅테크간 생존경쟁이 고조되고 있다. 클라우드와 메타버스, 혁신 모빌리티 같은 컨버전스 신성장동력 발굴 등 현안이 산적해있다. 국내 통신사끼리 점유율 경쟁하던 한가한 시절이 아니다. ICT 전문성이 낮은 인사가 낙점된다면 낙하산 논란이 불보듯 뻔하다. 가급적 KT의 사정과 글로벌 ICT 트랜드에 밝고 성장 비전과 혁신전략을 고민해온 역량있는 인사를 우선 순위에 둬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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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직원들 사이에선 KT CEO가 얼마나 만만하기에 이 지경이 됐느냐는 자조와 푸념이 들린다. 누군가 윤심을 받았다는 설들도 난무한다. 개인의 자가발전에서 비롯된 착각이거나 낭설이길 바란다. 혹여 정치권에 줄대 어부지리를 노리려한다면 그런 인사부터 걸러내야한다. 구현모 대표의 바통을 이어받을 적임자를 찾는게 어렵겠지만, 적어도 '디지코 KT'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사람 만큼은 막아야한다.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