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SM 사태…전성기 접어든 K팝 위기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23.02.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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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격랑의 SM, K팝의 미래는] ⑥

편집자주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로 촉발된 SM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이수만 전 총괄과현 경영진간 다툼에 카카오, 하이브 등 IT/엔터 공룡들이 가세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글로벌 K팝 위상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격랑에 휩싸인 SM의 앞날은, K팝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한-몽골 경제인 만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3.02.14.[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한-몽골 경제인 만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3.02.14.


K팝의 산업화를 선도한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 싼 인수전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하이브가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14.8%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현 SM 경영진이 반격에 나서는 등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엔터 업계 일각에선 K팝을 대표하는 하이브와 SM 등이 엮인 이번 사태를 두고 우려가 나온다.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K팝의 중추가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걱정때문이다. K팝에 앞서 세계적 인기를 누렸던 일본 J팝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J팝은 1970~80년대 성장기를 거쳐 1990년대에 대형 기획사들이 등장하며 전성기를 누린 바 있다. SM이 국내에 도입했던 기숙사형 시스템도 일본에서 건너 온 것이었다. 엑스재팬 등 밴드 음악의 인기에 힘입어 J팝은 1990년대엔 다양한 장르로 뻗어갔고 전통의 엔카에서 당시 최신 음악이던 힙합까지 일본 내수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하면서 동시에 발전시켜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는 글로벌 스타도 배출하기 시작했다.

아무로 나미에와 SMAP 같은 대형 아이돌 스타들은 아시아 시장에서 큰 인기와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J팝은 2000년대 들어 추락하기 시작했다. 대형 스타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서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다른 문화시장과 마찬가지로 길고 긴 침체기에 빠져버린 탓이다.



특히 버블경제가 꺼지면서 일본의 소비 위축은 음반시장 쇠퇴로도 이어졌다. 디지털 음원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어 오프라인 음반을 끝까지 놓치 않은 것도 일본 음악산업의 실패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K팝의 위기로 흘러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이브의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거나 혹은 반대로 현 경영진 의도대로 카카오 등 외부 투자자 지원을 받은 SM의 독자 생존으로 결론나더라도 K팝의 성공방정식을 무너뜨리는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평론가는 "일본 대형 기획사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고 어린 미소녀의 미성숙한 캐릭터를 앞세워 쉽게 돈을 긁어 모으던 관성을 버리지 못해 실력을 앞세운 K팝 아이돌 가수들에게 밀리면서 망해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라며 "이번 인수전이 누구의 승리로 귀결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SM의 기반을 그대로 살리면서 그 뒤에 제대로 된 안목으로 적시에 적합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영진이 들어서느냐가 제일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진제공 = 하이브 /사진=김창현 기자 chmt@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진제공 = 하이브 /사진=김창현 기자 chmt@
하이브의 독과점 우려에 대해선 의견이 다소 갈렸다. "초대형 기획사가 되면 몰개성의 아이돌을 배출할 수 있다"며 다양성의 부족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세계 음악 시장에서 대결하기 위해선 오히려 국내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국 등 해외 시장을 주타겟으로 하는 글로벌 기획사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행동주의 펀드 등이 이번 사태에 개입돼 있는 것에는 업계에선 부정적 시각이 더 강하다. 지난 15일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거대공룡 기업 및 반사회적 펀드와 야합한 적대적 M&A 행위를 멈추라"며 현 SM 경영진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연제협은 "사모펀드는 문화의 특성이나 제작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안중에도 없으며, 오로지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말 바꾸기를 반복하는가 하면 연예인들을 단지 수익창출의 도구로만 이용하려는 반문화적 집단 이기주의 행동을 일삼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업계가 바라보는 시각은 하이브에 비교적 우호적인 셈이다.

업계에서도 SM을 이끌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전담하는 성공방정식의 효능은 끝났다고 보는 관점이 우세하다. 하이브의 인수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그런 시각에서다.

SM 창업 후 현재까지는 이 전 총괄 프로듀서의 창의력과 지도력으로 이끌 수 있었지만,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과 인프라가 충분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화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SM에 변화가 필요하단 점은 이번 사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체들이 동의하는 바다.

그런 면에서 하이브가 경영권을 확보한다면 국내 시장 '독과점'우려를 해소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평가다. SM이 이번 사태로 무너지지 않고 인수와 투자를 통해 재도약을 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것은 업계 전문가들이 공히 바라는 바다.

이 전 총괄 프로듀서 지분 인수로 우위에 선 하이브에 대해선 국내 음악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황소 개구리'가 돼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하이브는 최근 하이브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 유력 힙합 레이블 'QC 미디어 홀딩스(QC Media Holdings)'를 3140억원에 인수했다. 그에 앞서 하이브는 미국 이타카 홀딩스와 수퍼톤 인수로 음악산업에서의 기술력도 확보했다고 평가받는다.

음반기획을 오래한 업계 전문가는 "K팝의 미래를 위해선 이번 사태가 조기에 정리되고 SM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경영기반 안정으로 종결되는 게 바람직 하다"며 "하이브는 이미 다른 기획사들보다 앞서 글로벌화에 가장 접근한 곳이어서 후발주자지만 지배자적 위치에서 K팝을 넘어 세계 팝시장에 제대로 등장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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