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에 떠는 재계, 기업·경제는 실험대상인가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임동욱 기자 2023.02.2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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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거대 야당 여론 역주행에 재계 아연실색

"마지막 남은 둑까지 무너지는 듯 하다."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는 모습을 본 재계 고위 관계자의 촌평이다. 노동조합의 불법행위를 두고봐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거대 야당의 역주행에 기업들은 고개를 떨군다. 국내외 경영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기업엔 한 층 어려운 여건이 예상된다.



모든 갈등 파업으로 이어질 것..재계 우려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노란봉투법 입법 촉구 농성장 앞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노란봉투법 입법 촉구 농성장 앞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일호 상의 고용노동정책실장은 21일 긴급 진행된 웨비나에서 "노란봉투법은 기존 교섭·쟁의행위체계와 궤를 달리하는 입법으로 현장 혼란과 경제적 충격을 피할 수 없다"며 "논의조차 없이 몇몇 조항을 바꾸는건데 어떠냐는 식의 입법은 기업과 경제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행위이며,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을 맞이한 재계는 대부분 같은 반응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이제 모든 갈등이 파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영상 판단과 재판 중 사건을 쟁의행위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법이 금도를 넘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변호사도 "지금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만 파업할 수 있지만 법이 통과되면 언제든 근로조건에 대해 파업할 수 있다"며 "노사간 이견 발생 시 법원을 통해 다투기보다 파업을 통해 해결하려는 '파업만능주의'를 조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총이 지난 15일 주요기업 3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 노란봉투법이 기업 경쟁력을 악화시킬거라는 응답이 100%(매우부정적 83.3%, 부정적 16.7%)였다. 기업들은 '교섭기간 및 노사분쟁이 장기화될 것'(93.3%)이라고 우려했다. '노동조합의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사실상 제한하는 조치'(90%)라는 평가도 주류였다.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은 이미 해외서도 우려를 표할 정도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21년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시간당 42.9달러라며 경제수준에 비해 낮다고 발표했다. 미국(74.8달러)이나 독일(68.3달러), 프랑스(66.7달러)는 물론 영국(59.1달러)보다도 낮았다. 그러면서 OECD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노조 쟁의행위에 대해 기업들이 방어권을 갖지 못하는 것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노사 관계가 이전 정부를 거치며 가뜩이나 노동자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노란봉투법은 그런 흐름의 결정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기업 해외이전 가속화 전망도
(의왕=뉴스1) 신웅수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9일 오후 경기 의왕시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총파업 철회 발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화물연대는 파업 16일 만에 총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했다. 2022.1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의왕=뉴스1) 신웅수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9일 오후 경기 의왕시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총파업 철회 발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화물연대는 파업 16일 만에 총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했다. 2022.1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코로나19(COVID-19) 이후 상황은 우리 기업들에게는 말 그대로 잔혹사다. 글로벌 경기부진 속에서 미국과 중국, EU(유럽연합) 등이 무역장벽을 높게 쳤다. 대부분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높은 에너지세율에 따른 에너지가격 부담, 제한적인 세제지원, 경직된 노동제도 등은 "한국서 기업하기 어렵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세계 최대 수출시장 중 하나인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리쇼어링(해외생산기지 국내 유턴)과 IRA(인플레이션방지법)는 기업에 더 큰 압박이다. 해외 진출 미국 기업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자국 내 생산부품만을 사용하도록 사실상 강제한다. 미국 기업들과 협업이 필수적인 한국 기업들로서는 굳이 한국에 생산기지를 둘 필요가 없다.

가뜩이나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시행을 목전에 둔 노란봉투법이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건 이 때문이다. 악전고투하는 기업을 두고 '횡재세'를 언급하는 등 일부 정치권의 왜곡된 시선에 기업은 더 지친다.

날로 더해지는 각종 규제와 정치권의 무리한 압박은 경영환경을 악화시킨다. 미국 텍사스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및 TSMC 팹(반도체 생산설비)이 착공까지 6개월이 걸린 반면, SK하이닉스의 용인 팹 착공엔 72개월(6년)이 걸린건 유명한 사례다. 포스코그룹은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 본사를 지역 여론에 밀려 결국 포항으로 옮길 판이다. 배경에 정치인들이 있다는건 다 아는 비밀이다.

최근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한 한 중견기업 CEO는 "정치인들을 만나 산업용 전기요금 얘기를 나누다가 '그냥 해외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던 기억이 난다"며 "노사관계에선 무엇보다 균형이 중요한데 노란봉투법까지 만들어내 기업을 죄악시한다면 우리 회사와 같은 같은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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