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상징 '백신', 전염병 끝나도 핵심 산업… 국가 역량 집중해야

머니투데이 이창섭 기자 2023.02.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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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팬데믹 3년, 엔데믹이 보인다③

편집자주 2020년 1월 30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한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한 지 3년이 지났다. 이제 전 세계를 괴롭힌 이 바이러스는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WHO의 비상사태 종료 선언이 유력한 오는 4월은 팬데믹(대규모 유행)의 끝이자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 출발선에 섰지만 3년의 팬데믹은 국내에서만 3000만명 이상의 확진자와 3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방역정책과 백신·치료제 개발의 시행착오가 발생했다. 진단키트를 중심으로 팬데믹에서 기회를 잡은 바이오산업은 새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엔데믹의 시작은 보건·의료·산업 전반의 '리셋'이기도 한 셈이다. 팬데믹 3년의 명암을 짚어보고 엔데믹의 미래를 내다본다.

팬데믹 상징 '백신', 전염병 끝나도 핵심 산업… 국가 역량 집중해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대한민국 백신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동시에 백신 접종 자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우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백신은 새로운 팬데믹 대비의 핵심이다. 관련 산업은 엔데믹 이후 주요 먹거리로 부상할 전망이다. 대한민국 백신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300% 커졌다. 글로벌 시장도 향후 연평균 10% 이상 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새로운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백신 기술력은 걸음마 수준이다. 국내 1호 코로나19 백신이 탄생했지만 경쟁 제품에 밀려 접종률은 0%대에 불과하다. 일본이 최근 자국에 mRNA 백신 공장을 건설하는 등 한·일 기술 격차도 점점 벌어지는 추세다. 엔데믹 이후 커질 시장을 선점하고 백신 주권을 세우기 위해 정부·산업·국민의 3각 공조가 시급하다.



팬데믹 이후 급성장할 백신 시장… 뒤처지는 기술력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드마켓(Market&Market)에 따르면,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시장 규모는 2020년 6억2000만달러에서 이듬해 980억달로 158배 늘었다. 코로나19를 제외한 백신 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376억5000만달러에서 413억7000만달러로 증가했다. 오는 2026년까지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엔데믹 이후에는 코로나19를 넘어 폐렴구균·자궁경부암 등 고부가가치(프리미엄) 백신 수요가 커질 전망이다. 실제로 화이자와 모더나 등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던 글로벌 제약사들은 후속 제품으로 인플루엔자나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mRNA 백신을 개발 중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백신 시장에서 대한민국 위상도 높아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1년 한국 백신 시장 규모는 3조8050억원으로 전년 대비 322.3% 폭증했다. 팬데믹 초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 OEM(주문자위탁생산) 체계를 구축해 글로벌 백신 허브 도약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원천 기술력이 부족한 대한민국은 백신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57,400원 ▼100 -0.17%)가 국내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만들었지만 낮은 접종률로 추가 완제품 생산이 중단됐다. 지금까지 접종에 사용된 스카이코비원은 약 5000회분으로 접종률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변이 발생에 따른 후속 개량백신 개발도 정체된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의 mRNA 백신 기술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도쿄 소재의 제약사 다이이찌산쿄는 일본 최초의 mRNA 코로나19 백신 공장을 건설 중이라고 최근 밝혔다. 2024년까지 2000만회분 생산 용량을 갖출 예정이다. 다이이찌산쿄는 mRNA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DS-5670'도 보유 중이다. 지난달 일본 정부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승인이 이뤄지면 일본 최초의 mRNA 코로나19 백신이 탄생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도 에스티팜 (85,700원 ▼700 -0.81%)·아이진 (3,040원 ▼40 -1.30%)·큐라티스 비상장 (6,700원 0.00%)가 mRNA 백신을 개발 중이지만 이들 파이프라인은 모두 임상 1상 혹은 2a상 등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자금·인력 등 정부 지원 시급… '백신 불신' 국민 신뢰 회복해야
팬데믹 상징 '백신', 전염병 끝나도 핵심 산업… 국가 역량 집중해야
엔데믹 이후 백신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기업이 원천 기술력을 확보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해야 한다. 특히 자금과 인력 지원이 시급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21년 159개 백신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백신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75개 기업(47.2%)이 백신 개발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연구·개발 자금 부족'을 꼽았다. 이어 40개 기업(25.2%)이 '인력 부족'을 꼽았다. 실제로 SK바이오사이언스가 스카이코비원 임상 후보물질을 도출하기 시작한 2020년 5월부터 1년 이상 지난 시점까지 정부 지원은 약 30억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경제연구센터장은 "아무래도 안 가 본 길을 가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패할 확률도 높다.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기관의 적극적인 인허가 지원이 필요하다"며 "시장이 작거나 불확실한 특정 백신 개발에 뛰어들 기업은 아마 없을 것이기에 성공불융자 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백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경우 정부의 구매 확약이 있어야 기업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해 여러 기업이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를 동시에 예방하는 콤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낮은 신뢰로 이들 백신의 접종률이 떨어진다면 전체 산업 성장도 어렵게 된다. 정부는 팬데믹 국면에서 '방역패스' 등 무리한 방역 정책과 잦은 백신 접종 독려로 국민의 피로감을 유발했다. 국민은 백신 접종 보이콧으로 응수했다. 20일 기준 97%에 달하는 1·2차(기초접종) 백신 접종률과 달리 기준 18세 이상 성인의 동절기추가 접종률은 15% 미만이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정부가 계획하는 것처럼 일 년에 한 번 접종하는 등 접종 간격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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