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빈자리 꿰찬 중국…"러 전쟁 끝나도…" 암울한 전망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지영호 기자, 최경민 기자, 이세연 기자, 윤세미 기자, 세종=최민경 기자 2023.02.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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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우크라 전쟁 1년이 남긴 것(中)

편집자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곧 1년이다. 믿기 어려운 침략 전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세계 경제를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었고, 서방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립 등 신냉전 체제의 가속을 불렀다. 언제 또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전 세계 군비 경쟁에 불을 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꿔 놓은 국제정세와 전망, 기업들과 한국이 직면한 과제를 짚어본다.

러시아 공장 정리해고 중인 현대차…빈자리는 중국이
(다비디브 브리드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16일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다비디브 브리드의 파괴된 학교 앞 구덩이에 파괴되고 불에 그을은 러시아 군 트럭이 보인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다비디브 브리드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16일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다비디브 브리드의 파괴된 학교 앞 구덩이에 파괴되고 불에 그을은 러시아 군 트럭이 보인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시장에서 선전하던 현대차 그룹은 큰 타격을 입었다. 현지 공장은 1년 가까이 가동이 중단됐고, 이제는 정리해고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대부분 철수한 사이 이 자리는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꿰차고 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현대차그룹이 러시아 시장에서 과거의 위상을 찾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서부지역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현대차 생산법인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각)부터 이달 27일까지 현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있다.

연 생산량 20만대 규모의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2010년 완공 이후 체코 공장과 함께 동유럽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현대차·기아는 러시아 시장에서 전쟁 발발 전인 2021년 약 37만8000대를 판매했다. 이는 현대차와 기아의 글로벌 전체 판매량의 5.8%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발발로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고 10월에는 완전 중단을 선언했다. 직원 2500여명이 근무하던 공장이었지만 가동 중단 이후 90%에 달하는 직원들이 휴직 상태로 전환됐다. 1년 가까이 버텼으나 전쟁이 길어지며 현대차는 결국 러시아 공장 직원의 80% 이상을 정리해고해야 하는 처지까지 몰렸다. 현대차가 2021년 인수한 구 GM공장도 2022년부터 다양한 차종을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과 함께 가동이 중단됐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사진제공=현대차그룹
이 사이 판매량도 급감했다.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 가동 중단과 별개로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러시아 현지에서 차량 판매는 계속하고 있지만 지난해 현대차는 러시아에서 9만7000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연초에는 한달에 2만대 가까이 판매가 됐으나 전쟁 이후 판매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공장을 매각하고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볼보, 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수출을 중단했다. 토요타와 닛산 등 일본 업체들도 러시아에서 철수했고 러시아 현지 점유율 1위였던 르노그룹도 러시아 사업을 접은 상태다.

이 빈자리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기준 중국 자동차 브랜드인 하발, 지리, 체리의 시장 점유율은 31%에 달한다. 중국 완성차 업체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2020년 3%, 2021년 6% 에 불과했는데 전쟁 후 글로벌 제조사들이 떠난 자리를 중국차가 점령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러시아 공장을 재가동하더라도 과거의 위상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전망한다. 공장 가동 중단이 길어지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현대차그룹에게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중국 업체의 성장은 생각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지난해 자동차 수출국 2위에 오를 만큼 성장했다"며 "전쟁과 이에 따른 제재가 길어지면 질수록 러시아에서 현대차의 자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 관계자는 "러시아 공장 재가동과 관련해선 아직 확정된 사항이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곡물파동에 밥상물가 요동…100년 데이터 분석해 해법찾는 기업들
원자재 수입 리스크 해소나선 식품업계

현대차 빈자리 꿰찬 중국…"러 전쟁 끝나도…" 암울한 전망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내 밥상물가를 뒤흔들었다. 식품기업들은 곡물 등 원자재가격 급등의 영향으로 제품 가격을 많게는 두세차례 인상했고 그대로 소비자의 부담이 됐다.

소비자의 불만을 감수하고 단행한 가격인상이었지만 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가격인상 만큼의 매출만 키웠을 뿐이다. 기업들은 원가절감이 경쟁력이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경험은 또 한번 기업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원재료 부담을 낮추는 것이 '물가 인상의 주범'이란 비난을 피하는 길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전 증가세, 전쟁 후 폭발한 식품가격

18일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부터 상승세를 탄 곡물가격은 지난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양국 의존도 높은 밀가루와 옥수수를 시작으로 폭발적인 오름세가 이어졌다. 2020년 98.1이었던 세계 식량가격 지수는 2021년 125.7로 올라섰고 지난해 143.7까지 뛰었다.

올해 1월 기준 131.2로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예년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세계 식량가격 지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의 식량 평균 가격을 100으로 삼는다.

현대차 빈자리 꿰찬 중국…"러 전쟁 끝나도…" 암울한 전망
◇구매처 늘려라...원자재 공들이는 식품업계

국내 식품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부담 완화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형사와의 관계 강화다. 롯데제과 (127,000원 ▲3,000 +2.42%)의 경우 식용유지(식용유, 버터 등) 공급망 안정 방안으로 글로벌 곡물기업인 번기(Bunge Loders Croklaan)와의 파트너십을 한층 강화했다. 번기의 바잉파워를 활용해 제과 제빵용 제품부터 요리용 제품까지 식용유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가격이 급등했던 해바라기유의 경우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중심에서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전쟁 영향이 적은 국가로 수입국을 다변화했다.

감자 스낵 제품이 많은 오리온 (90,300원 ▼900 -0.99%)은 원료가 되는 감자플레이크의 수입업체를 2개국 2개업체에서 4개국 5개업체로 늘렸고, 오뚜기 (395,500원 ▲3,500 +0.89%) 역시 수입 다변화와 함께 위기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가격이 싼 시점에 대량 구매하고 비싼 시점에 구매를 줄이는 전통적인 구매전략은 규모가 한층 커졌다. 하이트진로 (20,650원 ▼350 -1.67%)의 경우 맥주의 원료가 되는 전분을 구매할 때 종전 3개월 단위로 재고를 확보했지만 최근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6~10개월 단위로 여유분을 늘렸다. 동원F&B (38,000원 ▼150 -0.39%)도 쌀 때 대량구매하는 비축구매를 확대했다.

파스쿠찌 등에서 커피생두를 쓰는 SPC는 그룹에서 소비하는 96% 이상의 커피를 다이렉트 트레이드 방식으로 최상위 품질의 커피만 구매해 리스크를 줄였다. 애초에 높은 가격의 생두를 써 국제가격에 덜 민감한 구조를 갖춘 것이다.

(서울=뉴스1) 권현진 기자 =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1(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2% 상승했다. 식료품 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5.5% 상승했다. 그중 식용유의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0.9%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진은 3일 오전 서울도심의 한 대형마트의 식용유 코너의 모습. 2023.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권현진 기자 =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1(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2% 상승했다. 식료품 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5.5% 상승했다. 그중 식용유의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0.9%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진은 3일 오전 서울도심의 한 대형마트의 식용유 코너의 모습. 2023.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스템 고도화 전환...100년 데이터로 선물거래 시점 '콕'

지난해 국제곡물가격 등을 낙관적으로 예측했다가 분기 적자를 기록한 농심 (373,500원 ▼6,500 -1.71%)은 원부자재 시세예측 시스템 고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제 선물시세 동향과 환율추이, 미 연준의 정책발표에 따른 시장변화, 곡물 주요국의 생산·수출·재고현황 등 빅테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원부자재 가격 예측의 정교함을 높이고 있다.

CJ제일제당 (335,000원 ▲3,000 +0.90%)의 경우 2019년 구축한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MI)룸'으로 손실을 최소화했다. 원당, 원맥, 대두 등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원재료 가격 변동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동시에 시장 데이터를 시각화한 'MI 대시보드', 곡물의 향후 가격을 예측하는 '시세예측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적정 구매시기를 추출한다. 지난 100년간 전쟁이나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상품별 가격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후 선물 확보시기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설명이다.

롯데칠성 (124,500원 ▼1,500 -1.19%)은 원재료 부담을 낮추기 위해 수직계열화에 집중하는 케이스다. 2021년 롯데알미늄의 페트병 제조사업을 인수하고 안성공장에 페트병 포장재 수직계열화를 추진중이다. 팔리지 않는 제품도 정리했다. 2021년 670여개였던 음료 주류 상품을 지난해 560여개로 줄였다. 풀무원 (11,720원 ▲90 +0.77%)은 대체육(콩고기) 원료가 되는 조직대두단백 제조기술을 활용해 대량생산화에 치중하고 있다. 대량생산에 따른 원가절감과 콩 이외의 원료 다양화로 위기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준비한 자, 기회 얻었네' 달러박스 된 정유·방산
준비한 자가 기회를 얻은 격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1년여 간 계속되면서 꾸준히 설비개선과 기술개발을 이어온 우리 정유업계와 방산업계의 경쟁력이 재조명받고 있다. 경쟁국 정유설비 증설이 멈춘 가운데 수요가 살아나며 우리 정유업계 호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유럽과 중동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K-방산은 말 그대로 전성기의 초입에 들어섰다.

◇영업익 7조원 잭팟..정유업계 사상 최대 수출, 달러박스 됐다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정유업계는 통상 배럴당 5달러 정제마진을 정유사 손익기준선으로 본다. 2021년 기준 연 평균 배럴당 3.4달러였던 정제마진은 2022년 10.8달러로 급등했다. 배경엔 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있다. 세계 2위 수출국인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에 서방 국가들이 '보이콧'했고, 이는 유례없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부족으로 이어졌다.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석유제품 가격도 폭등했다. 싱가포르 거래소의 국제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1월 평균 배럴당 96달러선에서 6월 평균 148달러까지 치솟았다. 경유 역시 같은 기간 99달러에서 176달러 선까지 올랐다.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친환경'을 이유로 석유정제시설을 대규모로 철거한 가운데 전쟁이 났다. 한국산 석유제품 수출에 탄력이 붙을 수밖에 없다. 경유·휘발유·항공유 등 고품질 석유제품을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수출중심 전략을 고수하며 설비를 정비하고, 국제무대에서 수십년간 기술과 품질을 인정받은 결과다.

지난해 정유 4사 석유제품 수출액은 570억3700만 달러(약 73조7400억원)로 전년비 71.2% 증가했다. 사상 최대치다. 정유 4사의 지난해 총 영업이익은 14조1762억원으로, 전년(6조9949억원) 대비 2배 이상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유사들이 내수 물량을 훨씬 뛰어넘는 정제 능력을 꾸려, 전체 정제 물량의 60% 가량을 수출하며 외화를 벌어들인 것"이라며 "정유업계가 팬데믹 이후 가동률을 최대(79.4%)로 끌어올리며 제품 생산 및 수출에 주력한 전략이 유효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호황이지만 정유업계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며 총 5조원의 적자를 보던 상황을 기억한다. 유가와 정제마진은 언제든 다시 변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중국이 코로나19 이후 얼마나 시장을 오픈할지, 미국의 금리인상 추이는 어떻게 될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며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2023년 시장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금기 열리는 K-방산 "정책지원 절실"

현대차 빈자리 꿰찬 중국…"러 전쟁 끝나도…" 암울한 전망
방산 특수는 구조가 더 복잡하다. K-방산이 황금기를 맞이하는 가운데 방산 강국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집계된 방산 수출액은 약 21조5000억원(170억 달러)으로, 2021년 기록한 연간 최대 수출액 9조1000억원(72억 달러)의 두 배가 훌쩍 넘는다. 특히 유럽·중동 국가들에 대한 수출이 늘었다. 한국산 무기의 가장 큰 경쟁력은 빠른 출고와 뛰어난 품질, 검증된 실전능력이다. 당장 무기가 필요한 유럽 국가들의 러브콜에 곧바로 응하며 수출고를 쌓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이집트와 폴란드에 각각 2조원, 3조2000억원 규모로 K9 자주포 수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11월엔 폴란드와 5조원 규모의 다연장로켓 천무(다연장로켓)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폴란드와 약 4조5000억원 규모 K2 전차 1000대 수출 계약을 맺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해 8월 폴란드와 약 3조9060억원 규모 FA-50 경공격기 48대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5월엔 말레이시아에 FA-50 18대, 1조1000억원 규모 수출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K9 자주포는 한국 방산 수출의 상징적 무기다. 폴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와 같은 NATO 회원국을 비롯한 전 세계 9개국에서 1700여대 운용 중이다. K2전차는 지난해 1~2월 진행된 동계시험평가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이며 독일 KMW의 레오파드 전차보다 앞섰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이 무기 성능 강화와 자체 부품 개발로 이어지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무기들은 세계 무기와 견주었을 때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전쟁은 비극이지만 지난 세월 동안 방산업계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이뤄낸 성과가 세계적인 국방위기를 계기로 증명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K-방산을 향한 세계의 러브콜은 계속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6일 루마니아의 국영 방산업체 롬암(ROMARM)과 무기체계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인접국 폴란드에 K9 자주포 등을 수출하며 구축한 신뢰와 세계적 수준 방산 기술을 인정받은 결과다. K9 자주포, 천무에 이어 차세대 장갑차인 레드백의 수출 협상도 본격화하고 있다. LIG넥스원도 지난 8일 루마니아 정부와 포괄적 방산 협력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방산업계는 좋은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일회성 수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수출동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방산 분야에 대한 과감하고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충격의 물가 폭등…"러시아 핵버튼은 치명타" 최악 시나리오
세계경제의 상처… 탈세계화 자극하고 인플레 고착화 우려도

지난해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임대료와 식료품, 에너지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AFPBBNews=뉴스1지난해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임대료와 식료품, 에너지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AFPBBNews=뉴스1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경제를 혼돈의 도가니로 내몰았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쟁으로 공급망 혼란이 심화하고 곡물과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다. 세계는 수십년 동안 본 적 없던 인플레이션에 직면했고 각국은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대응했다. 이제 세계 경제는 경기침체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유라시아그룹의 로버트 칸 글로벌 거시경제학 책임자는 로이터에 "전쟁이 수요와 가격에 미치는 충격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각국의 정책과 맞물려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번졌다"며 "그 충격은 아직 끝난 것 같지 않다"고 진단했다.

물가 폭등은 전 세계가 체감한 충격이다. 전쟁으로 '유럽의 빵 바구니'라 불렸던 우크라이나 국토는 쑥대밭이 됐고 옥수수·보리·해바라기유 등 곡물·식품 가격이 치솟았다. 에너지 가격도 즉각 반응했다. 전쟁 직후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가 30% 뛰고 서방 제재로 러시아가 유럽에 에너지 수출을 막는 보복에 나서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 에너지 대란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 전쟁이 미·중 패권전쟁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터졌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을 떠나며 인플레이션이 위기를 키우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덮친 전쟁은 세계 인플레이션을 무섭게 밀어올렸다.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은 지난해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1%에 달하면서 40년 만에 최고치를 썼다. 러시아에 에너지 공급을 의존하던 유럽은 더 심각했다. 겨울을 앞두고 에너지 대란이 우려되던 10~11월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찍었다.

인플레이션을 지나가는 바람으로 생각했던 전 세계 통화당국은 다급하게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중 막대한 유동성이 풀린 터라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싸움은 숨 가쁘게 진행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지난해 초 제로 수준이던 금리를 1년 새 4%포인트나 끌어올렸다.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인한 유동성 감소,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계 구매력 약화, 불확실한 경제 전망으로 인한 기업들의 투자 감소와 실적 악화가 맞물리면서 세계는 이제 침체 기로에 섰다.

물론 낙관론도 있다. 인플레이션은 최근 둔화 추세로 접어들었고 유럽 역시 온화한 겨울 날씨 덕에 우려했던 에너지 대란을 피했다. 곡물 가격이나 유가도 전쟁 이전 수준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위드 코로나로 본격적인 경제 회복을 약속했고 미국과 유럽 역시 올해 가까스로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성장률을 2.9%로 제시했다.

하지만 전쟁이 부추긴 탈세계화와 에너지 위기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러시아는 최근 서방 제재에 대항해 원유 생산을 일일 50만배럴 감축할 것이라며 에너지를 무기화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려면 청정에너지 전환이 빠르게 이뤄져야 하지만 이를 위해선 국제에너지기구(IEA) 추산 1조4000억달러 이상의 기록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에너지 위기 역시 장기화할 수 있다.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은 글로벌 경제에 치명타를 날릴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로이터는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험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는 세계 경제를 미지의 영역으로 몰고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철수 못한 '진퇴양난' 기업들…"정부 지원 아직 부족"
(케르치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31일 (현지시간) 지난해 폭발로 파괴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케르치 대교에서 러시아 근로자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케르치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31일 (현지시간) 지난해 폭발로 파괴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케르치 대교에서 러시아 근로자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달으면서 러시아 진출 기업들의 수출액이 급감하는 등 타격도 커졌다. 정부는 수출 거래선 다변화 지원, 긴급 금융지원 프로그램 등을 가동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담수출통제 상담 창구인 '러시아 데스크'를 가동하고 현지 진출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는 지난 1년간 수출입 기업과 현지기업을 대상으로 유동성 확대, 수출 거래선 다변화 등을 지원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은 피해 기업 대상 총 2조원 규모 긴급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무보는 지난해 공급망 위기 지원에 2조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피해기업 특별지원에 676억원을 투입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현지 물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긴급 물류 지원방안을 안내하고 현지 항만 통제 현황 등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코트라와 협약을 맺은 현지 물류센터에 보관 장소 및 내륙 운송 서비스도 제공한다.

무역협회, 금융감독원은 기업 애로 현황 및 동향을 수집하고 총괄 취합해 관계기관과 대책마련 협의 등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배제로 러시아 은행들의 금융 거래가 제한되고 루블화가 절하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대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대금 미회수 관련 피해 사례가 전체 피해 중 60.8% 이상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 및 납품 보류·중단에 따른 수출감소가 19.5%, 물류 지연·중단 피해가 7.3%, 원자재 가격 폭등에 따른 수입대금 피해가 5.5%를 차지했다.

SWIFT 결제망을 대체할 수 있는 대금 정산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국제 사회의 대러제재가 강화되면서 쉽지 않아 보인다. 업계에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수출기업을 위한 무역보증과 현물결제 지원 등도 지속 확대해달라는 요청이 나오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들도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가동을 중단했지만 시장을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명확한 답은 내지 못한 상태다. 러시아는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10위 교역대상국으로 거래 규모가 큰 데다, 자동차·가전·스마트폰 등에선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특히 러시아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한번 철수하면 재진입이 어렵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러-우 전쟁이 장기화돼 러시아 수출은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관측된다"며 "과거 러시아 모라토리엄(대외 채무 지불 유예) 사태 때도 한국 기업들이 버텨서 러시아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 전례가 있는 만큼 현지 진출 기업들이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남아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러-우 전쟁 1년' EU 수출은 오히려 늘어…에너지 수입은 무역적자

(헤르손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3일 (현지시간)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러시아 군의 포격을 받아 쇼핑몰이 잿더미가 된 모습이 보인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헤르손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3일 (현지시간)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러시아 군의 포격을 받아 쇼핑몰이 잿더미가 된 모습이 보인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1년 동안 한국의 수출 지형에 변화가 생겼다.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지역 수출은 급감한 대신 아세안·미국·유럽연합(EU) 등의 수출 증가로 역대 최고실적을 기록했다. 수출은 선방했지만 러·우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에 에너지 수입액이 최고치를 찍으면서 무역적자가 심각해졌다. 올해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무역상황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정부의 타개책이 주목된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를 포함한 CIS 지역의 수출액은 112억8000만 달러로 17.7% 급감했다. 이 중 러시아 수출액이 약 63억3000만 달러로 1년 새 36.6%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 러시아 수출 줄어도 EU 수출은 늘었다…"대러제재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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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S 지역은 러시아 현지 자동차 공장 가동 중단 여파로 자동차 수출이 전년 대비 14.4% 급감한 29억9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차부품도 33.3% 줄어든 16억2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대러 수출통제에 따라 일반기계 수출도 14.3% 감소한 14억9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철강 수출 역시 서방 제재와 물류 문제로 생산시설 운영에 차질이 생기며 17.9% 줄어든 8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CIS 지역의 수출 비중이 높지 않았고 중국과 CIS를 제외한 미국, 아세안, EU 등 나머지 국가들의 수출액이 큰 폭으로 늘면서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러·우 전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EU 27개국 수출액은 전년보다 7.1% 증가한 681억3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 수출액을 달성했다. EU의 러시아산 금수조치로 에너지·중간재 수급불안이 커지면서 오히려 철강과 석유제품 수출이 늘어났단 설명이다.

유럽 내 공급 부족으로 석유제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286.6% 증가한 27억 달러를 기록했다. EU가 러시아산 철강을 수입금지하면서 철강가격이 급등했고 철강 수출액 역시 20.4% 증가한 47억9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이후 제조업이 정상화되고 기계설비 투자가 늘면서 일반기계 수출도 5.2% 증가한 71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석유화학제품 수출도 6.9% 늘어난 51억1000만 달러다.

◇ 정유·방산 수출 늘었지만 에너지 수입 70%↑…14년만에 무역적자 악몽

전체 수출 품목 중엔 석유제품이 가장 러·우 전쟁에 따른 반사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제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65.3% 증가한 630억22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수출 기록을 견인했다. 이는 2012년(533억 달러) 이후 10년 만에 최대 수출액이다.

지난해 석유제품 수출단가는 배럴당 121.1 달러로 약 53% 상승했다. 석유제품 수출 단가에서 원유 도입단가를 뺀 수출 채산성도 배럴당 18.5달러를 기록, 2021년 8.7달러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러·우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석유수급 차질로 고유가가 지속되고 수출단가가 상승했다"며 "이에 맞춰 정유업계가 팬데믹 이후 가동률을 최대(79.4%)로 끌어올리며 제품 생산과 수출에 주력한 전략이 유효했다"고 분석했다.

방위산업도 러·우 전쟁으로 인해 수출 권역을 중동·아시아 지역에서 유럽까지 확장하며 역대 최고 수출 실적을 냈다. 지난해 한국의 방산 수출액은 173억달러로, 2021년 기록한 연간 최대 수출액 72억 달러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 중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와 체결한 수출 계약만 124억달러에 달한다. 폴란드는 K2전차, K9자주포와 천무(다연장로켓), FA-50 전투기 등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탄약과 후속 군수 지원까지 합치면 총수출계약 규모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상승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지난해 한국은 최대 수출 실적을 냈음에도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 수입비용이 급등하면서 역대 최악인 472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 3대 에너지원 수입은 전년보다 69.8% 증가한1908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수입의 26.1%를 차지하는 액수다.

지난해 국제 유가는 전년 대비 39% 올랐고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128% 올랐다. 석탄 가격은 16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알루미늄·구리와 반도체·철강 등 원부자재, 의류·쇠고기 등 소비재 가격도 오르며 수입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알루미늄, 구리, 의류, 농산물 등에서 수입액이 각각 10%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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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장기화로 올해 수출 더 어렵다…수출 다변화, 에너지 안보 강화

정부는 전쟁이 장기화되고 경기가 둔화하면서 올해 수출 환경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러·우 전쟁 영향을 최소화하고 수출 플러스를 달성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결집해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최근 '통상 10대 과제' 발표를 통해 올해 신규 자유무역협정(FTA)을 10개국 이상과 체결하고 에너지·원자재 공급망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올해에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이 예상되는 아세안, 중동, 중남미 등 신흥시장과 자원부국을 중심으로 수출시장 다변화를 촉진한다. 기존 주력품목 뿐만 아니라 원전·방산·해외플랜트 등 유망분야의 수출도 적극 추진한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선 동절기 한파에 대비해 천연가스 재고를 비축하고, 에너지 효율 향상 및 수요절감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다이어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국제에너지기구(IEA) 가스시장·공급안보 회의(TFG) 등에 적극 참여하며 가스시장 안정화를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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