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려아연, 50년 만에 영풍과 주총도 따로...헤어질 결심?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2023.02.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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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고려아연이 50년 가까이 이어온 관행을 깬다. 영풍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1시간 간격을 두고 치렀던 정기주총을 한 주 앞당겨 홀로 실시한다. 고려아연이 영풍과 다른 날 정기주총을 여는 것은 1974년 창사 후 처음 있는 일이다.

17일 전자공시·한국상장사협의회 등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내달 17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서 금년도 정기주총을 개최한다. 영풍은 아직 공시하지 않았지만, 같은 달 22일 영풍빌딩에서 오전 9시 정기주총을 열겠단 계획을 관계기관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된다.



영풍·고려아연은 2020년까지 매년 3월 셋째 주 금요일에 정기주총을 진행했다. 정부가 특정일에 상장사들의 주총이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분산 개최를 권고한 뒤에도 양사는 같은 주 수요일로 날짜만 바꿨을 뿐, 같은 장소에서 1시간의 시차를 지켜 정기주총을 이어왔다.

올해는 다르다. 영풍은 관행대로 셋째 주 수요일에 주총을 실시하지만, 고려아연은 둘째 주 금요일로 앞당긴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 온 관행을 깬 것과 관련해 고려아연은 주주 친화 정책의 일환일 뿐이며 영풍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행보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부터 별도 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의 30% 이상을 배당하는 가이드라인을 도입하고 연 2회 배당금을 지급한다"면서 "주주들에 배당금을 조금이라도 일찍 나눠드리기 위해 주총 날짜를 앞당긴 것"이라고 말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재계와 시장은 달리 바라봤다. 주총일 변경이 영풍과의 거리두기 신호탄이란 해석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려아연의 행보 때문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자사 우호지분 확보에 열을 올리자,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과 일가도 경쟁적으로 고려아연 지분 확보에 나섰다. 이때부터 계열분리를 둘러싼 두 집안의 다툼이 발발한 게 아니냔 지적이 나왔다.

영풍그룹의 모태는 영풍이다. 1949년 장병희·최기호 공동 창업주가 설립한 뒤 대를 이어 동업이 이어졌다. 1974년 고려아연이 설립되면서 경영권이 구분됐다. 장 창업주 후손이 영풍·영풍문고 및 전자기기·장치 사업을, 최 창업주 후손이 고려아연과 비철금속 사업을 맡았다.


실적은 최 창업주 일가의 고려아연이 앞서지만, 지배력은 영풍의 장 창업주 일가가 크다. 영풍은 고려아연 발행주식 26.1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장 창업주 일가는 최 창업주 일가보다 많은 30% 상당의 영풍 지분을 바탕으로 그룹 전반에 강한 지배력을 유지했다.

이 같은 구조 아래서 2세 때까지는 순탄하게 이뤄져 온 두 집안의 독립 경영체제는 3세에 접어들며 변화가 감지됐다. 최 회장이 일가와 협력사 등을 통해 자사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LG·한화 등을 포함한 최 회장 일가 우호지분은 28.17%다. 장씨 일가도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현재 이들의 고려아연 우호지분율은 32.38%로 최씨 일가보다 4.21%p 앞선다.

시장에서는 계열분리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최 회장 개인 지분이 1.72%에 불과한 상황에서 외부 지분투자 세력까지 더해도 장 씨 일가가 여전히 앞섰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외부에는 영풍·고려아연 3세간 주도권 싸움으로 비치지만, 현실적으로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갖고 독립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단언하며 "보유 지분이 낮은 최 회장이 고려아연 3세 간 경영권 다툼을 막고 가족 간 결속력 강화를 위해 계열분리를 추진하는 듯한 분위기만 풍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영풍·고려아연은 계열분리와 관련해 논의되고 있지 않다는 종전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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