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한 자, 기회 얻었네' 달러박스 된 정유·방산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이세연 기자 2023.02.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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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우크라 전쟁 1년이 남긴 것 : 정유·방산

편집자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곧 1년이다. 믿기 어려운 침략 전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세계 경제를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었고, 서방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립 등 신냉전 체제의 가속을 불렀다. 언제 또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전 세계 군비 경쟁에 불을 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꿔 놓은 국제정세와 전망, 기업들과 한국이 직면한 과제를 짚어본다.

준비한 자가 기회를 얻은 격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1년여 간 계속되면서 꾸준히 설비개선과 기술개발을 이어온 우리 정유업계와 방산업계의 경쟁력이 재조명받고 있다. 경쟁국 정유설비 증설이 멈춘 가운데 수요가 살아나며 우리 정유업계 호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유럽과 중동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K-방산은 말 그대로 전성기의 초입에 들어섰다.



영업익 7조원 잭팟..정유업계 사상 최대 수출, 달러박스 됐다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정유업계는 통상 배럴당 5달러 정제마진을 정유사 손익기준선으로 본다. 2021년 기준 연 평균 배럴당 3.4달러였던 정제마진은 2022년 10.8달러로 급등했다. 배경엔 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있다. 세계 2위 수출국인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에 서방 국가들이 '보이콧'했고, 이는 유례없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부족으로 이어졌다.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석유제품 가격도 폭등했다. 싱가포르 거래소의 국제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1월 평균 배럴당 96달러선에서 6월 평균 148달러까지 치솟았다. 경유 역시 같은 기간 99달러에서 176달러 선까지 올랐다.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친환경'을 이유로 석유정제시설을 대규모로 철거한 가운데 전쟁이 났다. 한국산 석유제품 수출에 탄력이 붙을 수밖에 없다. 경유·휘발유·항공유 등 고품질 석유제품을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수출중심 전략을 고수하며 설비를 정비하고, 국제무대에서 수십년간 기술과 품질을 인정받은 결과다.

지난해 정유 4사 석유제품 수출액은 570억3700만 달러(약 73조7400억원)로 전년비 71.2% 증가했다. 사상 최대치다. 정유 4사의 지난해 총 영업이익은 14조1762억원으로, 전년(6조9949억원) 대비 2배 이상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유사들이 내수 물량을 훨씬 뛰어넘는 정제 능력을 꾸려, 전체 정제 물량의 60% 가량을 수출하며 외화를 벌어들인 것"이라며 "정유업계가 팬데믹 이후 가동률을 최대(79.4%)로 끌어올리며 제품 생산 및 수출에 주력한 전략이 유효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호황이지만 정유업계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며 총 5조원의 적자를 보던 상황을 기억한다. 유가와 정제마진은 언제든 다시 변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중국이 코로나19 이후 얼마나 시장을 오픈할지, 미국의 금리인상 추이는 어떻게 될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며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2023년 시장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금기 열리는 K-방산 "정책지원 절실"
'준비한 자, 기회 얻었네' 달러박스 된 정유·방산
방산 특수는 구조가 더 복잡하다. K-방산이 황금기를 맞이하는 가운데 방산 강국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집계된 방산 수출액은 약 21조5000억원(170억 달러)으로, 2021년 기록한 연간 최대 수출액 9조1000억원(72억 달러)의 두 배가 훌쩍 넘는다. 특히 유럽·중동 국가들에 대한 수출이 늘었다. 한국산 무기의 가장 큰 경쟁력은 빠른 출고와 뛰어난 품질, 검증된 실전능력이다. 당장 무기가 필요한 유럽 국가들의 러브콜에 곧바로 응하며 수출고를 쌓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이집트와 폴란드에 각각 2조원, 3조2000억원 규모로 K9 자주포 수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11월엔 폴란드와 5조원 규모의 다연장로켓 천무(다연장로켓)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폴란드와 약 4조5000억원 규모 K2 전차 1000대 수출 계약을 맺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해 8월 폴란드와 약 3조9060억원 규모 FA-50 경공격기 48대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5월엔 말레이시아에 FA-50 18대, 1조1000억원 규모 수출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K9 자주포는 한국 방산 수출의 상징적 무기다. 폴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와 같은 NATO 회원국을 비롯한 전 세계 9개국에서 1700여대 운용 중이다. K2전차는 지난해 1~2월 진행된 동계시험평가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이며 독일 KMW의 레오파드 전차보다 앞섰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이 무기 성능 강화와 자체 부품 개발로 이어지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무기들은 세계 무기와 견주었을 때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전쟁은 비극이지만 지난 세월 동안 방산업계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이뤄낸 성과가 세계적인 국방위기를 계기로 증명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K-방산을 향한 세계의 러브콜은 계속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6일 루마니아의 국영 방산업체 롬암(ROMARM)과 무기체계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인접국 폴란드에 K9 자주포 등을 수출하며 구축한 신뢰와 세계적 수준 방산 기술을 인정받은 결과다. K9 자주포, 천무에 이어 차세대 장갑차인 레드백의 수출 협상도 본격화하고 있다. LIG넥스원도 지난 8일 루마니아 정부와 포괄적 방산 협력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방산업계는 좋은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일회성 수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수출동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방산 분야에 대한 과감하고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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