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도 않는 공포의 '전기차 화재'…"지하 충전소 더 끔찍해요"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김지성 기자 2023.0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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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4일 오전 2시 47분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나 전기차 1대가 전소됐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2/사진=뉴스1   2020년 10월 4일 오전 2시 47분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나 전기차 1대가 전소됐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2/사진=뉴스1


#. 직장인 문모씨(32)는 긴 고민 끝에 전기차를 사려던 마음을 접었다. 이후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 뒤 안도했다. '내가 구매한 전기차에서 불이 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스쳐서다. 문씨는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소가 늘어나니 화재 피해가 커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고 지하 충전시설이 늘면서 화재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하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경우 진압 과정에 어려움이 커 전기차 소유주들 사이 지상에 충전소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전기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지하충전소 설치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자신을 전기차 소유주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지난 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파트에 전기차 지하 충전소가 늘어 화재 위험이 높으니 지상으로 옮기자는 말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다른 누리꾼들은 "나도 전기차를 타고 있지만 해당 주장에 찬성한다", "우리 아파트도 충전기 열댓 개를 지상에 설치했다"고 답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38만9855대다. 2021년(23만1000대) 대비 68.4% 증가한 수치다. 전기차 보급과 함께 충전 시설도 크게 늘었다. 환경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전기차 충전기 수는 20만5205대다. 관련법에 따라 100세대 이상 아파트나 주차대수 50면 이상 공중이용시설·공영주차장 등에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 시설./사진=독자제공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 시설./사진=독자제공
전기차 화재 발생 건수도 늘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기차 화재는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4건으로 증가세다. 주요 화재 요인은 배터리 결함, 과충전·과열, 기계적 충전 등이다.

소방방재학과 전문가들은 전기차 특성상 화재 진압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특히 지하에 설치될 경우 진압에 어려움이 더 커진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기차 핵심 부품에 불이 나면 순간 온도가 1000℃ 이상 치솟는다. 재발화 위험도 높다. 전기차 화재 완진에는 통상 8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차에 불이 나면 냉각이나 질식 등 일반 방식으로는 불을 끌 수 없다"며 "겉으로 보이는 불을 끄더라도 배터리가 연소하며 열 반응이 계속 있으니 진압 시간이 길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기차 충전기는 꾸준히 지하에 설치되는 추세다.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 지상 부지가 협소하고 새로 건설된 건물은 지상 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 관련 시설이 지하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충전기가 지하에 설치되면서 위험성이 상당히 커진 상황"이라며 "지금은 지하 어느 층이든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데 가급적 지상, 입구와 가까운 곳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전기차 화재시 진압을 위해 수조에 차를 넣는 방식을 사용한다. 배터리 열을 지속적으로 낮춰 추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영주 교수는 "수조 방식이 표준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전기차 화재 진압시 이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수조를 놓을 공간 확보 측면에서도 지하보다는 지상이 용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전기차 충전소 지상 설치는 의무가 아니다. 전기차 관련법인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은 친환경차 개발과 보급에 중점을 둬 화재와 관련해선 따로 규정이 없다. 지하에서 발생하는 화재 관련 행정규칙인 '지하구의 화재안전기준', 소방법 등에서도 관련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지난 2일 안전한 전기차 이용을 위한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전기차 사고 대응에 착수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방지할지, 정밀 조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배터리 안전 기준을 어떻게 강화해야 할지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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