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 탄생…이제 걸음마, 시장 안착 멀었다

머니투데이 박미리 기자 2023.02.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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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20%대 고성장 유망시장
세계 첫 치료제는 2017년 탄생
선별급여 10% 검토…업계 반발
약사 복약지도 등 논의 가능성도

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치료기기)가 탄생했다. 세계 첫 디지털 치료제가 탄생한지 5년, 국내에서 제품화 지원 논의를 본격화한지 3년 만에 거둔 쾌거다. 연평균 20% 고성장이 점쳐지는 시장에 국내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국내 디지털 치료제 산업이 완벽한 첫 발을 뗀 것은 아니라고 입모은다. 개발회사, 환자 외 당국, 약업계, 의료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수가, 유통처 등 상용화를 앞두고 논의할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 탄생…이제 걸음마, 시장 안착 멀었다


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 나와
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임메드의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솜즈(Somzz)의 품목허가를 결정했다.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 탄생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임상을 통해 질병 치료 안전성 및 효능 입증)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식약처 기준)를 의미한다. 세계 첫 디지털 치료제는 2017년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페어 테라퓨틱스의 약물중독 치료제 '리셋'으로, 시장이 만들어진지 오래된 건 아니다.

디지털 치료제가 업계 화두가 된 건 코로나19를 겪으면서다. 디지털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서 고성장이 점쳐지는 유망시장으로 주목받았다.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0년 35억3729만달러(약 4조5000억원)에서 2030년 235억6938만달러(30조원)로 연평균 20% 성장이 점쳐진다. 이에 ICT(정보통신) 강국인 국내도 식약처 주도 하에 2020년 8월 디지털 치료제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시작으로 디지털 치료제를 탄생시키기 위해 역량을 쏟아왔다.



그 결과 세계 첫 디지털 치료제와의 시간적 격차를 5년으로 줄인 것이다. 에임메드 솜즈를 시작으로 향후 국내에서 허가를 받는 디지털 치료제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식약처도 이날 "2027년까지 약 10종의 맞춤형 디지털 치료제 임상·허가 가이드라인을 추가 개발하는 등 국제적 표준을 선도·충족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현재 웰트 '필로우Rx'(불면증 치료), 라이프시맨틱스 '레드필 숨튼'(호흡 재활) 등 품목허가 신청 바로 전 단계인 확증임상을 진행 중인 국내 기업은 9곳이다.

"수가 등 논의돼야"...갈길 먼 시장 안착
그러나 업계에서는 국내 디지털 치료제가 시장에 안착하려면 여전히 논의돼야할 과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게 수가다. 솜즈 역시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아 품목허가를 받았어도 바로 환자들이 사용할 수 없다. 채규한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장은 "솜즈는 혁신 의료기기로 지정됐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를 주관으로 해서 건강보험체계에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조속한 사용을 위해 복지부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국내 디지털 치료제는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할지, 얼마나 적용할지 등 수가 관련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 환자, 정부 등이 각각 어느정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따라 개발회사의 접근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건강보험 급여가 높은 비율로 적용되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의사가 처방하는 디지털 치료제에 한해 의료 중대성이 높거나 해당 치료법이 없을 때 선별급여(10%)를 적용하고 그 외엔 한시적 비급여를 적용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 적용시 급여상한액도 개발비용을 예상 사용자 수로 나눠 단위당 개발원가로 산정하는 방안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 치료제 개발회사 대표는 "선별급여 10%에 대해서도 업계에선 연구개발에 든 비용을 회수하기 쉽지 않다 등 이유로 되레 비급여 요청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디지털 치료제가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가치를 감안해 (수가 체계가) 논의돼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다른 회사 관계자도 "건보 부담이 절반은 돼야 한다"며 "부담이 10 중 1에 불과하면 차라리 비급여가 낫다"고 전했다. 이어 "기존 업체들이 유효한 수준으로 시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게 매출 등을 통해 입증되면 새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며 "회사가 기술을 보유했어도 투자하는 회사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자가 어떤 채널로, 어떻게 디지털 치료제를 사용하게 될지도 보다 구체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른 디지털 치료제 개발회사 관계자는 "최근 약국이 디지털 치료제 유통 과정에서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관련 논의도 시작됐다"며 "현재로선 약국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디지털 치료제가 유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료기기이지만 치료제 성격을 지닌 만큼 복약지도가 필요하단 인식에 기인한 주장으로 보인다. 최광훈 대한약사회장도 연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 치료제 중 치료제라는 부분에 약사들이 어떻게 관여할지 연구 중"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일단 솜즈는 환자가 의사 처방을 받은 뒤 스마트폰에 모바일 앱을 다운받아 사용하는 형식으로 사용된다. 이 방식이 후발주자들에 일괄 적용될 지는 미지수다. 솜즈 역시 약국에서 판매가 이뤄질 경우를 염두에 두고 어떤 제품(처방 혹은 비처방)이 약국에서 유통 가능할지, 환자에 인증키는 어떤 방법으로 제공해야할지, 환자가 어디에서 모바일 앱을 다운받을지 등 방안을 구체화해나갈 방침이다.

의사 처방을 받아 쓰이는 치료제인 만큼 의료계의 이해 및 수용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요구된다. 솜즈도 현재로선 의사가 사용하지 않을시 환자가 접할 수 없다. 이동석·변영훈 삼정KPMG 경제연구원 부대표는 "디지털 치료제가 의료 현장에서 빠르게 적용되고 사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 인센티브 등 제도적 지원을 통해 신기술 도입에 친화적인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디지털 치료제 개발회사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아직 많다고 할 수는 없으나, 관심이 있는 이들에선 수가만 잘 나오면 쓰겠다는 긍정적 기대가 많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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