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가영, 온전한 이해로 다가선 완벽 가까이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3.02.1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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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영, 사진제공=키이스트문가영, 사진제공=키이스트


삶의 무게를 아는 여자는 언제나 강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사랑의 이해'에서 답답할지언정 안수영(문가영)에게 계속 마음이 쓰였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권리가 나한테 없다는 거. 발버둥쳐봤자 내가 가진 권리가 고작 이 정도라는 거"라고 독백하던 수영은 매사에 덤덤한 듯 행동하지만 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방어책일 뿐이다. 수영은 뻔한 멜로 드라마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발랄하게 기운을 틔우지도 않고, 미소엔 항상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런 수영이 용기를 내던 순간은 도망이었다. 끝까지 쥘 수 없는 것들을 놓아버리는 용기. 그래서 차갑지만 어여쁜 이 여주인공은 시린 겨울에 핀 한란 같다.

수영은 복잡한 감정의 결을 가지고 있어 표현하기도, 그 감정을 따라잡기도 어려운 캐릭터다. 이런 수영을 연기하며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문가영의 오늘은 그래서 단순히 캐릭터나 대사 덕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 순간도 수영이 이해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고 말한 문가영은 "누군가는 회피라고 보실 수 있어요. 하지만 수영에게 그것도 하나의 용기였어요."라고 감싼다. 문가영은 수영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캐릭터 그 자체로 존재했다. 때문에 그는 감정을 분출하는 것보다 참아야 했던 순간들에 더 고됨을 겪었다. 일부러 감정을 잡지 않아도 터져나오는 눈물 때문에 마른 침을 무수히 삼켰다.



"수영을 연기하면서 표현하는 것보다 참는 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울부짖을 때도 힘이 많이 들어가지만 몰아치는 감정을 참아야할 때는 정신력까지 발휘해야 했어요. 눈물을 참으며 혀도 많이 깨물었고 침도 엄청 삼켰어요. 눈물을 참을 때 침을 삼키면 도움이 되거든요. 눈물이 너무 흘러서 닦으면서 촬영한 적도 많아요."

문가영, 사진제공=키이스트문가영, 사진제공=키이스트


'사랑의 이해'는 제목 그대로 각기 다른 이해(利害)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理解)하게 되는 연애기를 그렸다. 마치 실존하는 KCU 은행 영포점의 매일을 들여다보는 듯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는 이 드라마는 핑크빛 무드 가득한 여느 멜로드라마들과는 다른 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사랑을 겉도는 지극히 현실적인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탄식했고 쓰린 마음을 애써 다독였다. 때문에 애청자들 사이에서 '사랑의 고구마' '사랑의 노이해' 등의 애칭까지 생겨났다. 문가영은 이를 두고 "욕을 하는 재미가 있어 사랑받지 않았나 싶어요."라며 웃어보였다.

문가영은 '사랑의 이해'에서 뛰어난 영업 수완을 가진 KCU 은행 영포 지점의 4년 차 주임이자 사랑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라 여기는 안수영을 연기했다. 상처는 약점이라 여기는 수영은 기분이 좋아도, 더러울 때도 은행에서 늘 미소를 지었다. 절대 웃는 가면을 벗지 않았고, 겉으로 감정을 표내지 않았다. 말은 최대한 삼가고 타인과 늘 일정 거리를 두며 혼자만의 공간에서 안식했다. 멜로드라마 여주인공이라고 하기엔 그 형태가 씁쓸하고도 시린, 차가운 공기로 둘러싸인 캐릭터다. 문가영은 그래서 수영에게 끌렸다. 저변의 놓여있는 수영의 모습에 욕심이 났고 용기를 냈다.

"표면적으로도 전작들과는 너무나 다른 캐릭터였어요. 마침 타이밍 좋게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 속에서 해오지 않았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캐릭터였어요. 이러한 저의 갈망과 타이밍 좋게 기회가 잘 맞물린 작품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낯설어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려울 것 같아서 더 하고 싶었고, 그래서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들었어요."


문가영의 변화는 옳았다. 지인들의 쏟아지는 연락에 전화가 불이 났고, 캐릭터에 이입하는 댓글을 보며 힘을 얻었다. 심지어 "결말을 제발 알려달라"며 평소 작품 관련해선 소통이 없던 엄마에게도 연락을 받았다. 모든 피드백 하나하나가 힘이 되었고, 쓴소리마저 달콤하게 들릴 만큼 격렬한 주변 반응에 수영으로 지내온 시간들을 감사히 여기게 됐다.

문가영, 사진제공=키이스트문가영, 사진제공=키이스트
"이해에 관한 드라마다보니 친절한 설명이 없었어요.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보시는 분들이 '어떤 게 사랑인가?' '그럼 내 사랑의 가치관은 뭘까?'라는 물음을 던질수 있게끔 했던 것 같아요. '사랑의 이해'는 사랑 이야기임과 동시에 인간 관계에 대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할 카테고리가 넓어서 더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수영이를 이해하려고 애쓰신 분들의 반응이 참 기억에 남아요. 물론 응원하는 분들도 많으셨지만 답답해하는 반응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사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수영이에 대한 모든 피드백이 힘이 됐어요. 수영이를 내 여동생처럼 친구처럼 여기고 '그러지마'라고 말해주고 싶어하는 반응들을 보며 힘이 났어요."

두려움은 없었으나 끊임없이 의심하며 한신 한신을 찍어나갔다. 여전히 문가영에게 연기는 충족되지 않는 갈망의 영역이다. 앞으로도 안수영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하게 기록되겠지만, 또한 앞으로 그가 "하고 싶은 연기"로 채워나갈 무수한 캐릭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 선배 연기자들을 괴롭힐 만큼 문가영은 연기에 뜨겁다. 이와 동시에 실패할지언정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도 다잡는다. 그래서 문가영은 이전보다 앞으로가 더 궁금한 배우다.

"연기력으로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서 욕심이 많았어요. 그건 지금도 그래요.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 좋아하는 선배들을 만나면 계속해서 물어보고 답을 알아내려고 해요. 작품을 고를 때 변화나 변신에 초점을 두는 편은 아니고요. 그런 고민은 많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해야할 지 잘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요. 그런데 지난 작품을 되돌아보니까 지금껏 제가 하고싶은 걸 해왔더라고요. 흥행이나 시청률에 상관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른 게 지금의 필모그래피예요.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선택하고 싶어요. 비록 실패하더라도요. 저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런 마인드가 바뀌지 않기를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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