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결혼식 '1000원' 투어, 범죄일까? 관건은…

머니투데이 김도균 기자 2023.02.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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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사진=뉴스1


#. A씨는 주말이면 거주지 근처의 웨딩홀을 돌아다니면서 '결혼식 투어'를 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결혼식에 가면서 이름은 가명을 사용한다. 식장이 별로면 1000원, 좋으면 5000원씩 축의금을 낸다. 그러면서 식장별로 제공하는 음식의 질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내린다.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의 하객 행세를 하며 뷔페 음식을 즐긴다는 A씨의 사연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민폐라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형법상 사기 행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상 사기 죄는 사람을 속여(기망 행위) 재산상의 이익을 취한 경우에 성립한다. 이에 따라 A씨의 행위가 사기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망 행위가 있었는지 얼마만큼의 재산상 이익을 취했는지가 관건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A씨가 얻은 경제적 이익은 분명하다. 식장에서 제공하는 한 끼 식사 또는 그 비용이다. 일반예식장의 경우 평균 식대가 1인당 6만~7만원 선으로 알려져있다. 박도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수훈)는 "경제적 이익이라는 건 꼭 현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음식, 무형의 서비스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A씨가 먹은 한 끼 식사는 그 자체로 경제적 이익이라고 보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A씨의 행동을 법률상 기망 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진규 변호사(법률사무소 파운더스)는 "결혼식은 혼주 측이 초대했거나 혼주 측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결혼식장에 온 것에 대해 식사를 제공하는 게 사회적인 상식이고 암묵적인 계약"이라며 "A씨는 초대받지 않았으면서 그걸 속이고 소액을 낸 것이라 기망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회장)는 "초청하지 않은 사람인 A씨가 와서 식사를 했다는 것은 결혼식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A씨가 냈다고 하는 소액과 평균적인 식대 비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결혼식 주최자를 속이고 경제적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반면 혼주 측이 축의금 액수에 따라 식권을 제공하지는 않기 때문에 기망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김무훈 변호사(법무법인 태림)는 "결혼식은 잔칫날인 만큼 보통 혼주 측이 '축의금을 1000원만 주면 식권을 주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A씨의 행위가 기망 행위가 되려면 식권을 나눠주는 사람이 일정 금액 이하 축의금을 낸 하객에게는 식권을 주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A씨의 행위가 혼주들을 속인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사기죄 성립 여부를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A씨 사례와 유사한 법원 판례들을 보면 명백히 상대방을 속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유죄 판단이 내려지고 있다.

부산지법은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축의금을 내지 않았으면서 낸 것처럼 속이고 식권을 받아 식사한 피고인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피고인은 혼주 측이 다른 하객들로부터 축의금을 받는 혼란한 틈을 이용해 식권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해 대구에서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않은 여성 2명이 1000원을 축의금으로 내고 식권을 챙겼다가 사기 혐의로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들은 전 직장 동료에게 앙심을 품고 1000원짜리 한 장을 넣은 축의금 봉투 29개를 내고 3만3000원 상당의 식권 40장을 받아 챙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이듬해 1심에서 각각 벌금 200만원,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봉투 29장에 통상적 액수의 축의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축의금으로 1000원을 낸다는 것은 사회 통념상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라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 웨딩업체 웨딩홀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20.8.23/사진=뉴스1서울 시내의 한 대형 웨딩업체 웨딩홀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20.8.2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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