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연석에 대한 이해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3.02.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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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킹콩 by 스타쉽)유연석,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킹콩 by 스타쉽)


이보다 다채롭게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는 배우가 있을까. 지난 9일 종영한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주인공 유연석은 또 한번 미묘하게 달라진 새 얼굴로 대중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필모그래피의 변주가 그의 이름에 더 큰 신뢰를 불어넣었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도전을 통해 나아가는 것이 더 짜릿하다고 말하는, '변화가 체질'인 배우. 그렇게 유연석은 내면 깊숙히 잠재된 자신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이해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

음흉한 눈빛을 중첩시키며 의뭉스러움을 풍겼던 넷플릭스 '수리남'의 데이빗, 햇살처럼 따사롭던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안정원, 야수처럼 거칠지만 동시에 짙은 순애보를 지녔던 tvN '미스터 션샤인'의 구동매, 천진하면서도 말간 기운을 뿜어내던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까지. 무엇하나 겹치는 구석이 없고, 무엇하나 허투루 흘려보낸 역할이 없다. 그리고 반듯하지만 차갑거나 건조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유머러스하고 따뜻했던 '사랑의 이해'의 하상수가 그의 필모그래피에 새롭게 추가됐다.



'사랑의 이해'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남녀의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각기 다른 이해(利害)를 가진 이들이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理解)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 속 '이해'는 두 가지 뜻이 내포돼 있다. 득과 실, 그리고 깨닫고 알아가는 것. 때문에 '사랑의 이해'는 마냥 달콤한 연인들의 판타지 같은 멜로만 좇지 않는다. 여러 감정과 부닥치면서 득과 실도 따져보고 사랑 앞에 발버둥치지만, 감히 이해할 수 없는 끌림에 사로잡히게 되는 너무도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했다. 시청률은 3%대에 머물렀지만 OTT와 온라인 화제성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했고, 마니아 팬층까지 생겨났다. 시청률로 평가할 수 없는 드라마라는 평가와 함께 커뮤니티에서 두터운 팬층까지 형성됐다. 유연석도 그래서 인터뷰를 열렬하게 하고 싶었다는 마음이었단다. 드라마 종영 후 강남 일대 한 카페에서 만난 유연석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며 상수표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연석,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킹콩 by 스타쉽)유연석,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킹콩 by 스타쉽)
"주변 반응이 정말 좋아요. '잘 보고있다'는 연락도 많이 받았어요. 소속사를 통해서 커뮤니티에서도 '사랑의 이해'에 대한 열띤 토론이 펼쳐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어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서 재밌게 보고있다는 반응을 전해들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사랑의 이해'는 템포가 느리고 시공간 초월이나 역경 같은 대단하거나 특별한 설정이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보니까 걱정이 들긴 했죠.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모두의 사랑은 받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했어요."

'사랑의 이해'에서 유연석은 사랑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변함없는 상수라고 여기는 인물이지만, 직장 동료인 안수영(문가영)에게 사랑을 느끼며 일상에 변화를 마주하게 되는 은행원 하상수 역할을 맡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그렇지 못한' 상태와 함께 불완전하기에 인간적인 인물의 현실적인 사랑의 형태를 그려냈다. 드라마 16회 동안 유연석은 대다수의 장면을 이끌어가며 격동하는 상수의 감정의 변화를 생생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상수 그 자체로 존재하며 저절로 과몰입을 부르는 '명불허전' 연기를 선보였다.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이 이상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현실에 있을 법해서 더 이입할 수밖에 없고 응원하게 되는 각자의 상황들이 있어요. 상수 역시 완벽하지 못한 인물이에요. 상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시청자들에게 확실하게 이해시키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저의 감정들에 설득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댓글 중에 '그간 보지 못했던 멜로물이지만 현실적인 표현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칭찬의 글들이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이번에 아예 멜로에만 충실한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정통 멜로에 대한 갈증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이 있었는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드라마에서 상수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자신에게 끊임없이 확실을 주면서 구애하는 미경(금새록)과 어느새 마음에 단단히 스며들어 버린 수영(문가영)을 두고 자주 고뇌에 빠진다. 머리로는 미경에게 향하는 것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계속해서 수영을 갈망하며 놓지 못한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상수는 다소 우유부단한 사람처럼도 보이지만, 애초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이해를 품게끔 만든다.

유연석,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킹콩 by 스타쉽)유연석,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킹콩 by 스타쉽)
"우리 드라마는 보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다 보여줘요. 엇갈린 사랑을 하면서 누군가에겐 숨겨야하는 생각들을 내레이션으로 표현하고 드러내다보니 시청자 입장에선 속상하고 열불이 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스스로 이해하면서 연기하려고 했던 건 상수는 수영에 대한 마음을 끊어내기 힘든 사람이었다는 부분이었어요. 미경을 택하면서 충실하지 못할 것도 알고 잘 안 될 걸 알면서도 관계를 시작하고, 결국 도돌이표처럼 수영에게 돌아가는 마음이요. 물론 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 드라마를 '사랑의 노이해'라고도 표현하시잖아요(웃음). 이 작품은 사랑을 이해하라는 게 아니에요. 득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당사자들한테는 절실한 부분이 있어서 감정의 이입이 잘 됐어요."

유연석은 드라마에 대한 이해보다는 상수가 느낄 감정들에 집중하며 인물을 파고들었다.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바람들은, 충실하게 인물을 흡수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여지를 이끌어냈다. 다소 전개가 답답했다는 시청자 의견에도 "고구마 천개 먹고 보는 게 우리 드라마의 매력"이라고 의연하게 받아치며 사랑이 갖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문득 궁금해졌다. 유연석이라는 사람은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진짜 모르겠어요. 정의가 안되는 게 사랑 같아요. 우리 드라마 안에서도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 게 사랑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상수라는 인물이 다른 변수에 흔들리지 않은 사랑을 하려고 뒤늦게 달려가요. 상수가 수영이에게 흔들리고 망설였던 부분들 그리고 변수들에 영향 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도 뭔가 늘 행복하기만 한 사랑을 한 게 아니었고, 그런 기억들이 멜로를 할 때 잘 묻어나는 것 같아요. 덕분에 많은 분들이 몰입해주시고 좋은 평도 해주신 게 아닐까요."

세 달 동안 상수로 살아왔던 유연석은 이제 또다시 새로운 모습을 향해 달린다. 안식보단 도전이 즐겁다고 말하는, 그리고 그 도전들 속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더라도 지레 겁먹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들을 하면서 변화를 주고 싶어요. 차기작인 티빙 시리즈 '운수 오진 날'에서도 연쇄살인마를 연기해요. 다양한 도전들 속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 걱정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시도들을 해보려고 해요. 덕분에 지금처럼 고정되지 않은 이미지로 인사드릴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저라는 배우를 끊임없이 궁금하게끔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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