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자소서, 박사 논문 몇초면 '뚝딱'..."누구냐 너" 전세계 발칵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배한님 기자, 유효송 기자 2023.02.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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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생성AI 시대, 한국은 어디로 1] (上)

편집자주 사람처럼 대화하는 '생성AI 신드롬'이 거세다. 챗GPT 쇼크로 빅테크의 AI 개발경쟁이 불붙은 것은 물론, 우리 일상과 사회 각 분야로 AI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이는 기존 관행과 질서에 상당한 변화와 충격을 몰고 왔다. 도구로서 효용성이 큰 반면, 대필과 표절 등 악용사례도 잇따른다. 생성AI 시대를 마주한 한국의 현주소와 논란, 그리고 대처법을 짚어본다.

"챗GPT, A키로 노래 하나 작곡해줘"..일상 파고든 챗GPT
/사진=커맨드 스페이스 유튜브/사진=커맨드 스페이스 유튜브


# "Q. 노래를 하나 만들고 싶은데 A키로 코드 진행 추천해줘" "A. 물론이죠! 여기 A키로 진행하는 노래가 있어요!"

유튜브 '커맨드스페이스'를 운영하는 구요한씨는 최근 챗GPT로 4분짜리 노래를 만들었다. 구씨는 원하는 코드로 진행되는 곡을 써 달라고 한 다음, 'AI(인공지능)가 만들어준 작품'을 주제로 간단한 가사도 붙여 달라고 요청했다. 가사 표현이 다소 직설적이라 "좀 더 시나 문학작품같이 가사를 바꿀 수 있을까?"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몇 가지 코드를 손보고 재즈풍으로 바꿔 달라 요청하며 대화를 반복했고 'Alive or Artificial?'이라는 노래가 완성됐다.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러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 그는 "아직 완성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지만, AI와 대화하는 느낌 참 새로운 경험이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챗GPT 열풍의 한가운데 섰다. 요리 레시피처럼 단순 취미나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연구와 학습, 비즈니스와 자산관리, 콘텐츠 제작 등 인간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영역까지 '최강의 조력자'로 등장했다. 챗GPT의 남다른 파괴력은 빅테크 간 최첨단 기술 경쟁의 영역이었던 초거대AI를 '마침내 도래한 미래'로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시킨다는 점이다. 물론 활용의 '좋은 예'만 있지는 않다. 이미 미국 대학가를 휩쓴 리포트 대필 등 부작용을 한국 학생들도 빠르게 답습했다.

안 지치는 예의 바른 교사, 광고 카피까지…'종횡무진' 생성AI



국내에서도 세대와 계층, 직업을 막론하고 다방면의 활용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제일 먼저 뒤집힌 곳은 학계다. 연구의 설계단계부터 실제 논문 작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챗GPT 활용 사례를 선보였는데, 특히 논문 초록의 글자 수 요약부터 목차 작성을 불과 수 초 만에 처리하고, 창의적인 연구 제목까지 제안한다.

/사진=NIA/사진=NIA
대학가 반응이 뜨겁다.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챗GPT 활용 경험이 가장 뜨거운 이슈다. 고려대 융합에너지공학과 재학중인 김욱영 씨는 챗GPT로 작년 '융합생명공학' 과목 기말고사 공부 시간을 크게 줄였다. 챗GPT에 특정 개념의 요약을 요청하고, 추가로 교수님이 가르친 관점에 따라 정리해달라해 외우는 방식이다. 김씨는 "생명공학 시험은 가능한 많은 사례를 요약·암기하는 게 중요한데, 챗GPT를 쓰니 인간보다 잘 정리하고 훨씬 빠르더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수학·과학 문제 풀이는 너끈하고, 사회·역사적 지식도 방대하다. 특히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학습 역량은 압도적이다.

김태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수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챗GPT는 기존 번역기와 비교해 뛰어난 성능을 보이며, 단순 번역을 넘어 교정 및 문법적인 오류까지 설명해주기 때문에 영어를 포함한 다양한 외국어 교육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로그래밍 분야는 더욱 활발하다.간단한 코딩을 맡기거나, 코드상 오류를 찾고 수정하는 일에도 챗GPT를 쓴다. 직장인 윤모씨는 자신의 PR 홈페이지를 만들며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 기존 '파이썬' 플랫폼이 유료화되면서 무료 배포 중인 'R'로 코드를 바꿔야했는데, 챗GPT에 부탁하자 순식간에 코딩이 됐다. 윤씨는 "90%의 코드가 제대로 작성이 돼 굉장히 유용했다"고 했다.

美 대학가 흔든 '대필' 한국도…대학가 '비상'

비즈니스 활용도도 상당하다. 챗GPT로 광고 카피, 보고서 작성 등에도 준수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서다. 디지털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는 송준용씨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챗GPT를 접목해 다양한 화장품의 카피를 한 번에 작성하는 방법을 공유했다. 화장품 종류, 브랜드 이름, 검색 키워드, 타깃층, 특징 등을 입력하면 적합한 문구가 한 번에 표로 생성된다.

AI(인공지능) 기업 프로젝트매니저(PM) 박영춘씨는 요즘 챗GPT로 공부한다. 문과 출신인 박씨는 "매번 민망하게 사내 개발자에게 물었는데, 챗GPT는 어려운 기술을 중학생도 이해할 수준으로 설명해준다. 눈물나도록 좋다"고 호평했다.

반면 부작용도 속출한다. 수도권의 A국제학교에서는 재학생 7명이 지난달 말 영문에세이 과제를 체출하면서 챗GPT를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학교는 'GPT제로(Zero)' 프로그램으로 대필을 잡아냈고, 학생들은 전원 '0점' 처리됐다. 개강을 앞둔 캠퍼스도 비상이다. 주요 대학들은 학생들의 챗GPT 대필 가능성을 고려해 검증 프로그램 도입,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검토 중이다.

AI 스타트업 '포티투마루'의 김동환 대표는 "리포트 대필 논란은 시작일 뿐이다. 학생들은 챗GPT를 쓰는데 학교는 무방비인 것처럼, 적절한 AI의 통제를 위한 다양한 연구와 사회적합의가 필요하겠다"고 말했다. 이영복 제네시스랩 대표도 "대필 뿐 아니라 오류가 있는 정보를 AI가 학습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등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도 대비해야 한다"며 "현재 챗GPT의 목표가 범용성이라면, 앞으로는 신뢰도와 전문성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학원강의·유튜브까지 뜨거운 학습열기…"챗GPT 어디까지 써봤니"
/사진=챗GPT 사용자 모임 'chatGPTers 커뮤니티' 갈무리/사진=챗GPT 사용자 모임 'chatGPTers 커뮤니티' 갈무리
챗GPT의 강력한 성능에 놀란 이들 사이에서는 취미와 학업, 업무에 이를 적용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 사용법에 목마른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찾거나 유료 강의를 수강하는 것이다.

꿀팁 공유하며 공부하는 사람들

김태현 전 사운들리 대표가 만든 챗GPT 사용자 모임 'ChatGPTers 커뮤니티'가 대표적이다. 이 커뮤니티에는 매일 챗GPT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례와 방법이 공유된다. 챗GPT 공개 초기 오픈카톡방으로 시작했는데 두 달 만에 가입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과제하는 대학' 'AI와 투자' '음악을 사랑하는 챗GPT 유저' 등 파생 커뮤니티까지 생겨났다.

챗GPT에서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프롬프트(명령어·Prompt), 즉 질문의 기술이 중요하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질문에 결과물이 크게 달라져서다. 이에 업종이나 분야별로 활용 사례와 프롬프트 작성법을 모아 공유하고 노하우를 키우기 위해 커뮤니티를 찾는다.

/사진=유데미 갈무리/사진=유데미 갈무리
김 전 대표는 "챗 GPT같은 대화형 AI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프롬프트를 쓰는 것이 쉽지 않고 특히 한국 같은 비영어권 사람들에겐 더욱 어렵다"면서 "아이에게 친절히 가르쳐주듯 대화해야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데, 많은 분이 한글로 대충 짧게 물어본 결과에 실망하면서 능력을 체감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쉽게 대화형 AI에게 일을 시킬 수 있도록 돕는 프롬프트 도우미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유료 강의도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유데미'에는 챗GPT를 주제로 한 강의가 400개 넘게 등록됐다. 챗GPT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부터 웹 코드 작성, 번역, 블로그 콘텐츠 제작법 등이다. 특히 챗GPT로 수익 올리는 법이 인기다. 패스트캠퍼스에도 챗GPT로 검색하면 텍스트 생성 AI의 기반인 자연어 처리와 관련된 강의가 다수 나온다. 프리랜서 마켓 크몽에는 최근 챗GPT 활용법 강의가 12개로 늘었다. 수강료는 1만원에서 25만원까지 다양하다.

챗GPT 치트 시트에서 프롬프트 프로그램까지 등장

챗GPT 사용자들은 '챗GPT 치트 시트' 등 각 상황에 가장 적합한 프롬프트를 공유한다. 일종의 시험 족보다. 유튜브에도 상황별 프롬프트 작성법 동영상이 다수 올라와 있다.

최근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프로그램도 다수 등장했다. 주제를 설정하고 △설명·예시·코드작성 등 답변 유형 △말투 △독자 수준 △답변 길이 등을 설정하면 최적의 프롬프트를 만들어 준다. 챗GPT뿐만 아니라 '미드저니'나 '달리-2' 같은 생성 AI 사용자를 위한 프롬프트 작성 프로그램을 인터넷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예은 퓨처플래닝연구소 소장은 "학생들에게 항상 생성AI 시대에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며 "생성 AI 자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도와주는 프롬프트 엔지니어, 테크 어시스턴트가 각광받으며 관련 강의도 늘 것"이라고 전했다.

챗GPT로 과제낸 학생, 'A+' 줘도 문제없다?…교육계는 지금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코딩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챗GPT는 입력만 하면 모든 언어로 코드를 다 짜주는데 '현타'(현실 자각 타임·허무함을 느끼는 감정 등) 오네요."

"공부 중인데 AI(인공지능)는 던져주기만 하면 문제를 알아서 푼다. 레포트도 맡겨볼까"

'인간처럼 생각하고 쓰는 '챗GPT(ChatGPT)' 열풍에 교육계도 혼란에 휩싸였다.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사용 경험을 공유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단순한 지식 모음을 넘어 실제 인간과 상당히 비슷한 대화를 구현하며 코딩이나 작곡, 글쓰기 등 '창작물'까지도 내놓아서다. 여기에 지난달 말 수도권의 한 국제학교에서 챗GPT로 영문 에세이를 제출한 학생들이 전원 0점 처리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교육계에선 AI 활용을 통한 학습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가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당장 신학기 개강과 맞물려 교육계에 비상이 걸렸다.

10일 머니투데이의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계는 교육현장에서 챗GPT 등 AI 활용을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에 들어갔다. 표절과 대필 등으로 악용할 경우 평가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내에서 챗GPT를 활용한 과제물 제출 등 다양한 활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개별 교수들은 챗GPT 관련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1학기 강의 계획서에 "AI를 활용해 생산한 답안을 자신이 쓴 것처럼 제출하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공지했다. 반면 챗GPT 등 AI 기술 활용을 밝힌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교수도 있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에게 코딩 과제를 할 때 챗GPT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줄 계획이다.

해외 교육계에서는 AI 경계령을 내렸다. 미국 뉴욕시는 챗GPT 등 AI 기술로 과제를 작성하는 사례가 나타나자 공립학교 내 와이파이 등 네트워크에서 챗GPT 접근을 차단하는 등 금지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췄다. 미국 워싱턴대와 버몬트대 경우 학칙을 통해 AI를 활용한 대필을 '표절'로 규정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챗GPT가 개입할 수 없도록 평가 방식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조지워싱턴대, 럿거스대, 애팔래치안주립대는 교실 밖에서 작성해 제출하는 오픈북 과제를 줄이고 있다. 에세이 과제는 강의실에서 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필로 직접 써야 한다.

교육부는 우선 지침이나 금지보다는 지난해 8월 발표한 교육분야 AI 윤리원칙을 기반으로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공청회와 전문가 간담회, 국제 의견 조회 등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한 이 원칙은 '사람의 성장을 지원하는 인공지능'이라는 대원칙을 바탕으로 10대 세부 원칙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라고 (교육현장에) 지침을 내리기보단 이 윤리원칙을 바탕으로 각 분야 종사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을 만들 계획"이라며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총장협의회 등과도 논의를 이어가고 이달 안에는 산업 종사자와 교수, 학교 교사 등을 모아 챗GPT 관련 포럼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3월 새학기를 앞두고 초·중·고 현장에서도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앞으로 AI로 인한 문제가 생길 여지는 있는 부분은 '평가'의 영역일 것"이라며 "학기 시작 전 각 학교에 내려보내는 평가지침에 (AI 관련 부분을) 포함시키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학생이 직접 작성했는지 평가할 수 없는 과제들은 이미 수행평가에 반영하고 있지 않는 쪽으로 바꾸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공정성과 관련한 이슈가 될 수 있어 지속적으로 관련 사안을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말했다.

AI는 학습 격차를 극복할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학생들이 AI를 통해 모르는 문제의 답과 풀이과정을 배울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고려대 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는 "챗GPT를 통해 파이썬을 공부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수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무작정 AI 활용을 막기보다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주관성이 있는 답을 하는 챗GPT는 가짜인 정보도 우리가 볼 때는 그럴듯해 보이게 답변할 수 있어 어느정도의 규제는 필요해 보인다"며 "모든 과제에 출처를 명확하게 작성하게 해 AI 활용을 보고서에 적시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전된 기술의 이용을 무조건 금지할 수는 없다"며 "다만 사람은 기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해 내는 일에 집중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희수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지식의 출처에 대한 혼란이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며 "결국 기술 진보에 인간이 종속되지 않도록 AI 사용 윤리를 강화하는 방법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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