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규는 1981년 드라마 '제1공화국'으로 데뷔했다. 1987년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연산군을 연기해 얼굴을 알렸다. 상업영화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다. 1974년 '파계'로 시작해, 1985년 '이브의 체험', '화랭이', '그것은 밤에 이뤄졌다'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7년에는 배우 견미리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이유비와 이다인을 뒀다. 다만 결혼 6년만인 1993년 이혼 이후 그는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됐다.

그는 "이혼하니까 모든 게 다 끝났다. 사업에 실패해 제2 금융권, 제4 금융권까지 손을 댔다. 이것마저 안되자 한 달에 이자만 몇백% 되는 돈을 썼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머니) 장례식장을 갔는데 그 앞에 벌써 까만 양복을 입고 스포츠머리를 한, 100㎏ 이상 되는 사람 10명이 있더라. 큰소리가 나면 더 불효하는 것 같아 자리를 피했다. 죽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건물주의 도움으로 거의 반값에 원룸을 구했다. 교회에서 청소를 하며 월세를 내고 있다. 옛날에 미국에서 살던 5000평짜리에 비하면 말도 안 되지만 지금이 좋다"고 밝혔다.
임영규는 알코올성 치매에 걸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걸 다 잃고 밤에 잠이 안 왔다. 소주를 한 병 먹으니까 잠이 싹 왔다. 그런데 갈수록 소주 한 병 가지고 안 됐다. 두 병, 세 병씩 마시다 보니까 알코올성 치매가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억 못 하고 집도 잊어버리지 않나. 술을 먹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때는 자고 일어났는데 파출소였다"고 털어놨다.
'두 딸이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엔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 옛날에 유진(이유비)이 네 살 때 공원이나 동물원에 데리고 다니던 게 생각난다"고 답했다. 다만 연락할 생각은 없다며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진다. 제가 다시 일어서 '이 정도면 떳떳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까지는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