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뒤처진 '반도체 설계'…허약한 K-팹리스, 삼성도 '한숨'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3.02.0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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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


국내 1위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인 LX세미콘이 지난해 역대급 매출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국 팹리스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늘고 있지만 파운드리(위탁 생산) 부문에 치우쳐 있어 기술 불균형이 심각하다. 업계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팹리스 부문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팹리스 기업 중 50위권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은 LX세미콘 1곳이다. LX세미콘은 팹리스 시장에서 10~15위권으로, 엔비디아나 퀄컴·브로드컴 등 글로벌 기업에 비해 다소 뒤처진다. 지난해 매출액 2조 1193억원, 영업이익 3106억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액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경쟁력이 부족한 것이다. LX세미콘을 제외하면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기업도 국내에 6곳밖에 없다.



팹리스 경쟁력이 강화되면 파운드리는 물론 IDM(종합 반도체 기업)에게도 긍정적이다. 대만 TSMC의 경우 자국에 미디어텍이나 노바텍, 리얼텍 등 탄탄한 팹리스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경쟁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파운드리가 팹리스의 주문을 받으면 양측 모두 매출이 상승하고, 경쟁력이 강화돼 해외 수주에도 유리하다. 미디어텍과 노바텍, 리얼텍은 지난해 모두 글로벌 팹리스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대만은 여기에 더해 자국 팹리스 기업은 물론 엔비디아와 AMD 등 글로벌 팹리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까지 모두 대만 출신으로 가득 채웠다. 대만에 우호적인 팹리스 기업이 반도체를 설계하면, TSMC나 UMC 등 대만 파운드리 업체가 이를 수주하는 일종의 '반도체 생태계'가 완성된 셈이다. 한국의 팹리스 기업이 국내 물량도 채 소화하지 못해 쩔쩔매는 것과 대조적이다.



홀로 분전해야 하는 삼성전자는 인텔이나 애플 등 대형 고객사의 변덕에 매출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 고객사들이 세트(완성품) 수요 감소를 이유로 주문을 줄이면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올해는 파운드리 가동률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파운드리 산업 매출은 전년 대비 9%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1% 안팎(2022년 기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팹리스가 고질적인 인력 부족과 낮은 수요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이 해외 대형 팹리스 고객사의 주문을 우선하는데다, 국내 팹리스 기업은 기술에서 열세에 있어 설계 지식재산권(IP)나 노하우도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이다. 국내의 한 팹리스 기업 관계자는 "대부분의 팹리스 기업이 자금력이 부족하다 보니 일반 파운드리 기업이나 IDM 방면으로 유출되는 인력이 많다"라며 "인력이 부족해 기술 개발에 한계가 오고, 자연스럽게 주문이 줄어들면서 팹리스 경쟁력이 악화되는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팹리스 업계에서 정부 주도의 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실무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는 파운드리뿐만 아니라 팹리스 기업들의 육성이 필수적이다"라며 "삼성전자 단독으로 15%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파운드리 경쟁력은 갖춰졌지만, 팹리스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최근 벌어진 글로벌 불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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