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발자국' 엄격히 따져 세금 땅땅…급 높아진 '장벽'에 한국 비상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김도현 기자 2023.02.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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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탄소국경세가 온다(上)

"EU 수출 20% 증발"…10월 올라갈 '탄소 장벽'에 철강 속수무책
'탄소발자국' 엄격히 따져 세금 땅땅…급 높아진 '장벽'에 한국 비상


유럽연합(EU)이 철강·알루미늄·비료 등의 수입품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한국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한국의 7배에 달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특히 유럽 수출비중이 높은 철강업계를 중심으로 연간 수천억 원의 관세와 수출감소가 우려된다.

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EU는 올해 10월부터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기, 수소 등 6개 품목에 CBAM을 시범 도입하고, 2026년 1월부터 시행한다. EU는 시범 기간 동안 플라스틱과 유기화학품의 추가 여부를 결정한다.



CBAM은 탄소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하는 경우 해당 제품의 연계된 탄소 배출량 추정치를 EU ETS(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와 연동해 관세를 징수하는 제도다. 수입업체가 생산 공정과 관련된 탄소배출량에 대해 신고해야 한다. EU는 ETS 탄소 배출 감축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CBAM 시행 확정에 따라 ETS의 무료 할당제도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CBAM 시범운영 기간엔 EU 현지 수입업체에 제조 과정의 온실가스 직·간접 배출량만 보고하면 된다. 배출량이 유럽 표준을 초과하는 경우 2026년부터 CBAM 인증서를 취득해야 한다. ETS에서 결정된 탄소 가격에 따라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추가적인 비용이 부과된다.



'탄소발자국' 엄격히 따져 세금 땅땅…급 높아진 '장벽'에 한국 비상
CBAM이 본격 시행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철강업계다. 철강업계는 2021년 43억 달러(약 5조 6000억원)어치를 EU에 수출했다. 다른 CBAM 품목보다 압도적으로 수출액이 높다. 같은 해 알루미늄은 5억 달러, 비료는 480만 달러, 시멘트는 140만 달러어치 수출됐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2021년 9월까지 1년 간 유럽과 한국의 배출권거래제 1일 가격 최대 차이인 55.4달러로 계산하면 알루미늄산업은 21.9%, 철강산업은 20.6%의 대(對)EU 수출 감소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면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팀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구에서 CBAM이 시행되면 한국은 연간 약 5309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특히 철강업계는 약 3620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석탄을 주요 전력원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추가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탄소배출권 가격 차이가 더 벌어질수록 피해 규모는 커진다. 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2018년 톤당 7.83유로에서 현재 톤당 80∼90유로로 10배 이상 뛰었다. 유럽의회의 환경위원회 위원장인 프랑스의 파스칼 캉팽 의원은 EU 탄소배출권 가격이 약 100유로(약 13만3700원) 수준까지 인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1만~2만 원대인 한국과는 최대 7배 차이가 나게 된다.


이 같은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상원도 지난해 6월 CBAM과 유사한 '청정경쟁법(Clean Competition Act)'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2024년부터 석유화학 제품 등 12개 수입품에 온실가스 1톤당 55달러를 부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녹색 보호주의'를 강화하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대응책 마련이 중요해졌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미국의 청정경쟁법, EU의 CBAM 도입 추진 등 친환경 기준이 강화되면서 수출 애로 사항이 늘고 있다"며 "친환경 설비 투자 등의 분야에서 정부 R&D(연구개발) 지원이 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무역장벽"..EU 탄소관세 직격탄에 고심 빠진 철강사들
'탄소발자국' 엄격히 따져 세금 땅땅…급 높아진 '장벽'에 한국 비상
철강업계가 난제를 만났다. 유럽연합(EU)이 올해 10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2026년부터 전면 시행한다고 예고해서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업종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을 수 없어 고심이 깊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CBAM의 핵심은 탄소 관련 규제가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의 제품을 수입할 때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무역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탄소규제가 강한 유럽이 규제가 약한 한국 제품을 수입하면서 탄소발자국을 엄격히 따져 세금을 매긴다는 얘기다.

철강업계가 마땅한 해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 간 협상을 통해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개별 회사가 대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철강의 경우 CBAM 대상에 오른 다른 품목들과 달리 EU 수출 비중이 크고, 공정 특성상 탄소배출을 단시간 내 저감하기 힘들다.

주요 철강사들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친환경 마스터플랜을 이미 짜놓았다. 포스코·현대제철 등은 쇳물 생산과정에서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 탄소배출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수소환원제철을 준비 중이다. 문제는 수소환원제철의 상용화 시점이 빨라도 2040년 이후라는 점이다. CBAM 대응에 한계가 있다.

철강사들은 수소환원제철을 준비하면서 전기로 비중을 늘려 전체적인 탄소 배출량을 점진적으로 줄이려는 계획도 수립했다. 그러나 이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한 게 걸림돌이다. 탄소세를 줄이기 위해 전기로 생산물량을 늘리면 이 역시 원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현대제철은 지난달 31일 전년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1kWh(킬로와트시)당 전기요금이 1원 오르면 100억원의 원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철강사들에 부과된 산업용 전기요금은 전년 대비 1kWh 당 13원 뛰었다. EU가 추후 발표될 CBAM 세부 지침을 통해 철강사가 사용한 전력 생산 때 배출된 탄소량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원전 또는 신재생에너지로 100% 충당되지 않는 이상 전기로 사업에 문제가 커진다.

업계는 EU의 CBAM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방지법(IRA)과 같이 자국 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장벽이라고 본다. 유럽의 철강사들도 준수하지 못할 기준을 내세워 수입 철강 제품을 견제하고, 자국 철강사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의미다. 전기차·배터리 등은 이 같은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에 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방식을 쓸 수 있지만 철강사는 여의치가 않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고로에서 석탄 비율을 줄이는 새로운 공법으로 생산한 저탄소 제품으로 시장을 뚫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철강협회를 통해 정부에 이 같은 사정을 알리고 정부가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하듯, EU와 CBAM를 놓고 협상해 시장 문턱이 낮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영만 철강협회 부회장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배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CBAM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부에 알리고, 동시에 우리 철강사들이 다양한 친환경 노력을 이어오고 있음을 적극 어필해 상황을 타개하려는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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