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까지 언급한 '스튜어드십 코드' 국민연금 행보는?

머니투데이 김근희 기자 2023.02.0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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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선진화⑤

편집자주 '주인 없는' 회사의 지배구조 선진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소유분산 기업인 금융지주회사를 비롯해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KT와 포스코 등이 대상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임기가 돌아온 금융지주 회장은 모두 물갈이됐다. 이른바 '셀프연임', '황제경영'을 뿌리뽑는다는 게 명분이다. 과거 '낙하산' 인사와 결이 다르지만 정부가 민간회사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관치' 논란도 한창이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스튜어드십 코드' 국민연금 행보는?


집사(steward·스튜어드)는 큰 저택에서 주인 대신 집안일을 도맡는다. 집사가 어떻게 집안 살림을 꾸리느냐에 따라 저택의 모습과 주인이 얻는 이득이 달라진다. 국민들의 자금을 운용한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집사는 '국민연금'이다. 즉, 국민연금이 어떻게 자금을 운용하느냐에 국민들의 노후 자금과 은퇴 후 삶의 질이 달렸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집사처럼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행동 지침이다. 투자 대상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이를 투명하게 보고해야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스튜어드십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과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2018년 109조원이었던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지난해 3분기 기준 139조원으로 증가했다.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율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264곳에 이른다.



특히 소유분산 기업, 일명 주인 없는 기업에서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역할을 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이거나 주요주주인 소유분산기업은 △KT (33,300원 ▼350 -1.04%)(10.74%, 국민연금 보유 지분율) △POSCO홀딩스 (386,500원 ▼3,500 -0.90%)(8.5%) △KT&G (89,600원 ▼200 -0.22%)(7.44%) △KB금융 (63,700원 ▼300 -0.47%)(7.97%) △신한지주 (41,750원 ▼150 -0.36%)(8.22%) △하나금융지주 (52,400원 ▼1,100 -2.06%)(8.4%) △우리금융지주 (13,540원 ▲40 +0.30%)(7.86%) 등이다.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후 이를 강화해왔다. 스튜어드십코드 이전에는 배당 관련 사항에만 주주권을 행사했으나, 이후 과도한 임원 보수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행사 방법도 비공개 대화, 중점 관리기업 선정과 공개, 공개서한 발송, 주주제안 등으로 다양화했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2018년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경영진의 총 안건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표시를 한 안건 비율)은 16.61%로 전년 11.47% 대비 증가했다. 2019년에도 반대 비율은 17.24%를 기록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반대 비율은 각각 10.33%, 9.19%로 하락했다. 다만 이는 상장사들이 국민연금을 의식하고 미리 문제의 소지가 있는 안건을 최소화한 결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최근 국민연금은 소유분산기업의 CEO(최고경영자) 연임 문제에 날을 세우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이사의 연임을 결정하자 국민연금은 이례적으로 즉각 입장문을 내고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국민연금은 KT 이사회의 결정이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서원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KT, POSCO홀딩스,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기업들이 CEO 선임을 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따라야 불공정 경쟁, 셀프 연임, 황제 연임 같은 우려들이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국민연금과 KT는 다음 달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커졌다. KT와 국민연금의 갈등이 깊어지자 KT 주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KT의 주가가 올해 5만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강력매수(컨빅션 바이)' 의견을 내놨던 하나증권은 지난 3일 이를 철회하는 내용의 리포트를 발간했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3월 주총에서 현 구현모 CEO의 연임이 확정된다고 해도 경영 불안 양상이 지속될 것"이라며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정부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KT뿐 아니라 POSCO홀딩스 등 기업들의 CEO 선임과 연임 문제가 쉽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자본시장의 공룡'으로 불리는 국민연금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정부 등 정치권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소유분산기업 CEO의 연임을 반대하는 것은 스튜어드십코드 원칙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이 지나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정부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독립성이 일정 부분 확보되는 수준에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에 따른 주주권 행사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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