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되지 않은 지분으로 행동주의 펀드가 회사를 흔든 것은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2006년에도 KT&G는 미국에서 행동주의 펀드를 운영하는 투자자 칼 아이칸으로부터 비슷한 주주제안을 받았다. 아이칸은 주주 연합을 꾸려 KT&G의 지분율 6.6%를 보유한 뒤 KGC인삼공사 상장, 주주 환원책 강화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주가치 제고를 주장했던 아이칸은 1년여 만에 KT&G가 제시한 '마스터플랜'에 합의했고, 보유지분을 분산 매각해 1500억원가량의 차익을 얻은 뒤 한국을 떠났다.
KT&G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민연금의 KT&G 지분율은 7.44%다. KT&G에 주주제안을 한 안다자산운용과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이하 FCP)의 지분율은 1% 미만으로 알려졌다. 1% 지분으로 최대주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여기에 다음 달 KT&G 주주총회를 앞두고 FCP는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와 황우진 전 푸르덴셜 생명보험 대표이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안다자산운용은 국내 명문대학교 출신의 재무·회계 전문가 교수와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담당 여성 임원 출신을 KT&G 사외이사 후보자로 세웠다.
KT&G는 지난달 26일 기업설명회를 열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KGC한국인삼공사를 인적분할할 뜻이 없다고 밝히고, 새로운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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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측은 인적분할을 통한 KGC인삼공사 분리상장은 주주가치 제고에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KGC인삼공사의 EBITDA(상각전영업이익)는 6배로, 저평가받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반면 KGC인삼공사 분리 상장 시 농가 협업 노하우, 면세점 공동 교섭력, 해외 네트워크 활용 부분 등 양사 시너지와 경쟁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분할과 상장 과정에서 주주들이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합산 시가총액이 기존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KT&G는 내년 자사주 매입에 3000억원, 배당금 지급에 5900억원 등 9000억원 가량을 주주환원에 쓸 예정이다. 연내 반기 배당도 실시한다. 올해 주당배당금은 전년 대비 200원 인상된 5000원이다.
행동주의 펀드와 KT&G가 서로 팽팽하게 맞서자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서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KT&G의 주가가 저평가된 것은 맞지만, KGC인삼공사 분리상장 등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제안이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인적분할을 발표한 기업 13곳 중 인적분할을 발표한 이사회 결의일 다음 날에 주가가 오른 곳은 코오롱글로벌 단 1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2곳의 경우 인적분할을 발표한 직후 5% 안팎 주가가 하락했다. 2017년 이후 인적분할 사례들을 살펴보면 인적분할 재상장 후 3개월 주가 상승기업은 37%, 하락기업은 63%에 달했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사업부가 분할될 경우 높은 멀티플이 적용되 분할 후 합산 시가총액이 늘어난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실제 인적분할 재상장 이후 합산 시가총액이 상승한 비율은 낮았다"며 "인적분할이 주로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사용되는데, 지주회사의 멀티플 하락 폭이 사업회사에 대한 멀티플 상승 폭 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제고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지배구조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해당 행동이 실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