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모자라 배고파" 외친 그는 빈혈일까… 얼음 씹는 당신 '검사 대상'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3.02.0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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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혈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파헤치기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 3집 '교실이데아'를 거꾸로 재생하면 "피가 모자라 배고파"라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낭설이 당대 가요계를 뒤덮었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메시지의 주인공인 사탄이 빈혈'이라는 말도 떠돌았다. 그만큼 적잖은 사람이 '빈혈은 피가 모자란 질환'으로 여긴다. 또 '어지러우면 무조건 빈혈 때문'이라고 여겨 철분제를 사 먹는다. 과연 그럴까. 빈혈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파헤친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동절기 혈액 수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27일 오전 대구시교육청 직원들이 청사 주차장에 마련된 헌혈버스에서 헌혈을 하고 있다. 2023.01.27.[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동절기 혈액 수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27일 오전 대구시교육청 직원들이 청사 주차장에 마련된 헌혈버스에서 헌혈을 하고 있다. 2023.01.27.


Q 피가 모자라면 빈혈이다?
X 빈혈은 피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핏속 '적혈구 수'가 정상보다 적은 상태다. 피는 백혈구·적혈구·혈소판 같은 혈구 세포와 혈장(물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상대적으로 적혈구의 양이 적은 게 빈혈이다. 말 그대로 적혈구 수가 '가난한 피(貧血)'인 것이다. 빈혈은 혈색소를 기준으로 진단하는데, 일반적으로 남성은 13g/㎗ 미만, 성인 여성은 12g/㎗ 미만이면 빈혈로 진단한다. 단, 임신한 여성은 11g/㎗ 미만일 때 빈혈에 해당한다. 태아가 혈액을 만들기 위해 모체의 철분을 가져가면서 자연스레 적혈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성인의 혈액량은 5~6L다. 헌혈 1회당 피를 320~500㎖ 빼낸다. 이 양은 한 달 이내 복구된다. 만약 외상으로 피를 750㎖ 흘렸을 땐 맥박이 빨라지고 초조해지며 1L를 잃었을 땐 혈압이 떨어져 체온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Q 어지럼증의 가장 큰 원인은 빈혈이다?
X 어지럼증이 생겼을 때 빈혈 때문일 것으로 여기기 쉽다. 알고 보면 빈혈은 어지럼증 원인 질환의 30%에 불과하다. 이를 제외한 어지럼증의 30%는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의 이상, 30%는 부정맥 같은 순환기계 질환, 10%는 중추신경계 이상이 원인이다. 어지러울 때 빈혈로 착각해 철분제를 임의로 사 먹는 경우가 많다. '철분 결핍성 빈혈'이 아닌데도 철분을 너무 많이 먹으면 오심·소화장애·속쓰림·변비 같은 위장관 내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빈혈로 인한 어지럼증은 앉았다 일어설 때, 갑자기 자세를 바꿀 때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눈앞이 캄캄해진다. 심하면 갑자기 일어설 때 실신할 것 같고, 실제로 잠깐 실신하는 경우도 있다. 빈혈로 인해 쉽게 피곤해지거나 무기력증이 나타날 수 있다. 피부, 입술 양 끝이나 얼굴이 창백하거나 노랗게 보일 수 있으며, 결막이 창백해질 수 있다. 손바닥의 손금 색이 옅어지거나 손톱이 쉽게 부서진다. 운동할 때 숨찬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계단·오르막을 올라갈 때 숨이 차서 쉬어야 할 정도이거나, 빠르게 걸을 수 없다. 운동 시 숨이 차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이 아프거나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빈혈이 장기화하면 별다른 이상 증상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이는 빈혈이 오랜 시간 조금씩 진행할 때 몸이 빈혈 상황에 적응해서다. 철분 결핍이 심하면 얼음·생쌀을 씹어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얼음을 입에 늘 물고 있는 것도 증상이다. 아직 그 이유에 대해선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Q 빈혈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흔하다?
O 빈혈 중 가장 흔한 '철 결핍성 빈혈'은 섭취한 철분보다 몸에서 철분을 더 많이 원할 때, 잃은 철분이 많을 때, 철분을 충분히 섭취했지만 몸에서 철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못할 때 생긴다. 어린이·청소년은 성장하면서 철분 요구량이 증가해 철 결핍성 빈혈이 생길 수 있다. 장 수술을 받았거나 흡수장애가 있으면 철분이 잘 흡수되지 못해 철 결핍성 빈혈이 생길 수 있다. 성인에게 철 결핍성 빈혈이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은 '만성 출혈' 혹은 '실혈'이다. 가임기 여성의 경우 매달 생리로 인한 출혈로 철 결핍성 빈혈이 흔하다. 30~40대 여성은 임신·출산으로 인해 철분이 부족할 수 있다. 자궁 근종이 있는 경우 이에 따라 생리량이 많아져 철 결핍성 빈혈이 호발한다. 하지만 성인 남성이나 폐경 이후의 여성에게 철 결핍성 빈혈이 나타났다면 장을 통한 만성 실혈을 의심해 반드시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가임기 여성이어도 생리 과다로 인한 빈혈이 있으면 위·대장 내시경 검사가 권장된다.



Q 철분제 먹을 때 제산제 먹어도 괜찮다?
X '철 결핍성 빈혈'로 진단되면 철분제를 복용해야 한다. 철분제는 가급적 공복에 먹어야 흡수가 잘 된다. 하지만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식사 직후에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는 식사 때 분비된 위산이 철분 흡수를 돕기 때문이다. 철분제를 제산제와 함께 복용하는 건 피해야 한다. 철분이 몸에 흡수되려면 위의 산성도가 유지돼야 하는데, 제산제로 인해 위의 산성도가 약해지면 장에서 철분을 잘 흡수하지 못해서다. 그 대신 철분제와 함께 비타민C제제를 먹거나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을 먹으면 철분의 체내 흡수를 도울 수 있다. 빈혈이 교정됐다고 해서 철분제 복용을 바로 끊으면 빈혈이 재발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빈혈 교정 후 6개월 정도는 철분제를 계속 복용해 '저장철'까지 충분히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저장철은 몸에 저장된 철을 의미하며, 몸속 철의 3분의 2는 헤모글로빈(혈액)에 예비로 보관되는 저장철이다. 나머지는 적혈구에서 적혈구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능철, 움직이는 이동철이다. 철분이 몸에서 필요한 양보다 적으면 저장철, 이동철, 기능철 순으로 없어진다. 반면 철분을 회복할 땐 기능철, 이동철, 저장철 순으로 생긴다.

Q 빈혈 뒤에 또 다른 질환이 숨어있을 수 있다?
O 빈혈 그 자체가 또 다른 원인 질환의 결과물일 수 있다. 노인 빈혈은 중증 질환을 위암·대장암을 암시할 수 있다. 위암·대장암 등 위장관에 생기는 암은 점막에 궤양성 병변을 만들고 출혈을 유발해 빈혈을 부른다. 빈혈 환자 가운데 변비와 설사를 반복하거나 대변이 검다면(흑변) 위장관 출혈을 일으키는 위암·대장암일 수 있다. 빈혈 진단 후 추가 혈액검사에서 철분 결핍이 확인되면 위·대장 내시경 검사가 권고된다. 고혈압, 당뇨병, 염증성 질환 등 만성질환도 노인 빈혈의 주요 원인 질환이다.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사이토카인(면역·항상성 조절 물질) 기능에 문제가 생겨 철분 같은 조혈(造血) 영양소의 흡수·운반에 장애를 일으키고 결국 빈혈을 유발해서다. 편식이 심하거나 무리한 다이어트를 장기간 시도하면 철분, 비타민B12, 엽산 같은 조혈 영양소가 부족해 '영양성 빈혈'을 야기할 수 있다. 고른 영양 섭취가 필요하다. 20~40대 남성은 빈혈 발생 빈도가 낮지만 빈혈이 있다면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흔한 원인은 치질이다. 배변 때마다 치루핵·직장에서 출혈을 반복하면 철 결핍성 빈혈을 야기할 수 있다. 위궤양, 위축성 위염도 빈혈을 야기한다. 병변에서 출혈이 지속해 빈혈로 이어질 수 있다. 소화 장애가 있으면서 빈혈로 진단받았다면 소화기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 백혈병 같은 혈액암, 재생불량성 빈혈 같은 조혈기관 장애도 이들 나이대에서 빈혈의 원인으로 꼽힌다.

도움말=엄지은 한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호영 한림대 성심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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