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비동의 간음죄…"억울한 사람 발생" vs "그래도 도입해야"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2023.02.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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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뉴스1일러스트=뉴스1


"억울한 사람이 죄 없이 처벌받게 될 우려가 있다."
"수사기관이 입증할 수 없으니 법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냐."



여성가족부가 개정 계획을 밝혔다가 철회한 '비동의 간음죄'를 두고 법조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면 피해자가 말만 바꿔도 성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우려가 제기된다. 반대편에서는 '법조문을 촘촘히 설계하면 될 일'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비동의 간음죄는 폭행·협박과 관계 없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죄를 판단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독일·영국·스웨덴·미국 11개주 등에서 '상대방이 성관계에 동의했는지'를 중심으로 강간죄 성립여부를 판단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는 여성가족부가 2015년 제 1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시사하면서 '피해자 일방의 주장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성관계 당시에는 동의했더라도 사후에 증명 여부가 어려운 데다 동의했다가 마음을 바꾸는 '내심의 변화'를 수사기관이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도 비슷한 입장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수사와 재판의 현장에서 동의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이 검사가 아니라 사실상 피고인에게 전환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역시 제21대 국회에서 발의한 '비동의 간음죄' 입법안을 검토한 뒤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가 곤란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상황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법안심사자료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성행위 상대방의 의사 또는 동의 유무는 비동의 간음죄 구성요건으로 원칙적으로 검사에게 입증 책임이 있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반대 사실(동의 여부)에 대한 입증 부담을 지게 되는 등 사실상 입증 책임이 전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성폭력범죄의 기본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존 강간죄 등의 구성요건에 중대한 변경을 가하는 것"이라며 "형법체계상 다른 성범죄의 구성요건에 대한 수정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전 텔레그램 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법률대리인)는 "지금도 스토킹 처벌법 등 형법의 많은 규정이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상황에 대해 입증하고 처벌한다"며 "비동의 간음죄 개정으로 입증책임이 피고인에게 전환된다면 지금까지는 스토킹이나 협박 성립 여부 등을 어떻게 처리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오 변호사는 또 "내심의 변화를 검사가 입증하지 못해 피고인에게 입증 책임이 넘어가면 현실적으로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검사가 죄를 입증하기 어려우니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 행위가 발생해도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국가에서도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판단하진 않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비동의 간음죄의 비동의 판단기준 마련을 위한 국내외 사례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과 독일 등에서는 제3자가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부 의사를 밝혔는지 등을 검증한다.

영국 검찰의 경우 △동의 능력(술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소통이 힘든 경우 등 고려) △동의할 자유(가정폭력이나 권력관계 등을 기준으로 자유의사 판단) △ 동의를 얻기 위해 취한 조치(가해자가 동의를 알고 믿었으며 취약한 피해자를 착취한 것은 아닌지 등 고려) △ 동의에 대한 합리적 믿음(성행위의 일부만 공의한 것인지 성행위를 원하지 않는 징후를 인식하거나 무시했는지 여부 등) 등을 기준으로 동의 여부를 판단한다.

장다혜 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동의라는 구성요건이 위계에 의한 간음이나 준강간 등 다른 범죄와 중복된다는 대법원의 설명은 맞는다"며 "스웨덴이 '자발적으로', 독일이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우리도 법조문을 촘촘하게 설계하고 성범죄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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