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회장 모조리 물갈이...'셀프연임 시대'의 종언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23.02.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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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선진화①

편집자주 '주인 없는' 회사의 지배구조 선진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소유분산 기업인 금융지주회사를 비롯해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KT와 포스코 등이 대상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임기가 돌아온 금융지주 회장은 모두 물갈이됐다. 이른바 '셀프연임', '황제경영'을 뿌리뽑는다는 게 명분이다. 과거 '낙하산' 인사와 결이 다르지만 정부가 민간회사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관치' 논란도 한창이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금융그룹 차기 회장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내정되면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임기를 마친 금융지주 회장이 전원 낙마했다.



특히 3연임을 노렸던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잇단 퇴진으로 금융 CEO(최고경영자) 셀프연임과 장기집권 시대가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저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압도적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주인)가 없는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와 CEO 선임 절차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 전 위원장을 새 수장으로 맞은 우리금융을 비롯해 신한금융, NH농협금융, BNK금융 등 국내 주요 금융그룹 CEO가 예외없이 모두 교체됐다.



손 회장은 라임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금융당국의 중징계(문책경고)로 회장직 유지가 어려웠으나 연임때처럼 소송전을 불사하고서라도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사회 내 3연임 반대 기류가 커지고 당국의 압박 강도가 더해지면서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 3연임이 확정적이란 예상이 많았던 조 회장도 내정자 발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갑작스럽게 자진 사임 형식의 용퇴 의사를 밝혔다.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연임' 관행에 부정적인 정부 의중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전 정부 때까지 금융 CEO의 3~4연임은 관행처럼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9~10년 간 회장직을 유지한 사례도 드물지 않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 초대 회장은 9년(4연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을 6년 2개월(3연임)간 재임했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은 10년(4연임) 재임 시대를 열었고,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2014년 취임 후 9년째(3연임) 회장직을 맡고 있다.

금융지주 한 고위 관계자는 "CEO 연임 관행이 자연스럽게 굳어진 배경은 지배구조 안정화 측면과 함께 단임 CEO의 과도한 단기 실적주의가 금융회사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장기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컨센서스(합의)가 자리했기 때문"이라며 "국내 금융사 중에서도 모범 사례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금융지주 회장 모조리 물갈이...'셀프연임 시대'의 종언
상황이 달라진 건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 내부 파벌 다툼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금융지주 '황제경영' 폐해가 부각됐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금융 CEO들이 이사회에 우호세력을 앉혀 권력을 연장한 뒤 주인처럼 군림하면서도, 내부통제엔 소홀하고 경영 책임은 미루는 등 심각한 '대리인 문제'을 양산하고 있다는 게 현 정부의 문제의식이다. 금융 CEO가 선임한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의 견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거수기를 자처하고 있다는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융지주 회장 인선 과정의 '관치' 논란에 대해 "'관치'도 분명히 문제지만 '내치'라는 게 있다. 주인도 없는데 CEO가 우호적인 세력만 주변에 두고 그들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운영하는 게 맞느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도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화두로 제시하는 작심발언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CEO 선임) 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로 투자기업 경영과 의사결정, 지배구조 등에 적극 관여하는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소유분산 기업인 KT그룹 대표 연임에 반대 의사를 공식화한 것처럼 주주 견제권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도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 기업의 경영 승계, CEO 선임 절차 등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법·제도 개선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밀하게 금융 인사에 개입했던 과거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제재(징계)권과 법·제도적 장치를 활용해 공개적으로 인사 관련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특징"이라며 "정권 차원에서 특정 인물을 내리 꽂는 낙하산 투하는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의 관치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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