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쌀 정책과 식량안보

머니투데이 고희종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 2023.02.0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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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종 서울대 교수고희종 서울대 교수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귀에 익은 홍보자료이다. 쌀은 우리의 주 식량공급원이고, 전체농가의 51%가 종사하며 농업총수입의 19%를 차지하는 중요한 품목이다. 뿐만 아니라 논은 홍수 방지와 수자원 함양, 대기 정화와 토양 보전 등 지대한 공익적 가치를 제공해 왔으다. 쌀과 벼는 우리의 전통문화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우리는 과거 보릿고개를 지나 1970년초에 통일벼가 개발되면서 숙원인 주식인 쌀의 자급자족을 이루었고, 반세기 동안 안정적인 경제발전의 토대를 제공했다. 쌀 품종과 생산 기술도 세계 수준으로 발전하여 안정화됐다.



그러나 그 이후 음식문화의 변화로 1인당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고, 식량자급에 효자였던 쌀산업이 해마다 과잉공급과 가격하락으로 농업정책의 핵심 쟁점이 돼 온게 사실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앞으로 더 감소하며, 전체 쌀 수요도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쌀 자급률은 거의 100%에 육박하지만 왜 식량자급률은 20% 밖에 안되는가? 쌀 이외의 곡물 수요가 커졌고, 국내생산은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식량안보 정책은 과거 쌀 위주에서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쌀 생산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하다. 식량안보와 농업인 소득 보장의 양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식량 자급률 향상에 도움이 되는 곡물을 논에 재배할 수 있도록 벼 재배에 상응하는 기계화 지원과 직접지불제 등을 실시하고, 생산물의 처리를 지원함으로써 일석이조가 가능할 것이다. 농식품부에서 올해부터 시행 예정인 전략작물직불제는 방향은 맞지만 실효성 있게 추진하려면 현재 책정한 예산보다 그 규모를 대폭 늘려야 할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쌀의 의무매입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수확기에 초과생산량이 예상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 이상 하락한 경우 초과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 시행된다면 쌀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산될 것이 확실한 반면, 다른 곡물의 생산량은 줄어들어 식량자급률이 더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과잉공급으로 쌀가격도 지금보다도 더 하락할 공산이 크다. 즉 식량안보와 농업인의 소득 보장 모두에 도움이 안되며, 농업정책의 왜곡과 혼란, 정부의 재정부담만 커지는 결과가 예상된다.

우리는 과거 WTO에 우리쌀을 보호하는 명분으로 20년동안 관세화를 유예한 결과 지금은 해마다 40만8700톤을 의무수입해야 하는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쌀을 보호하는 것 만이 농업경쟁력을 높이고 농업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기에, 농업 전체의 틀을 놓고 식량안보와 농업인 소득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필자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아니라 식량자급률을 법제화하는 것을 권고하고 싶다. 일본의 경우에는 식량자급률 목표를 법제화하고 주요 곡물별로 생산 목표를 정해 추진함으로써 자급률을 높이고 있다. 쌀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변화하는 국민의 식생활과 농업 환경 모두를 고려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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