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상수 계장님을 처음부터 응원한 건 아닙니다. 계장님이 좋은 사람이란 건 알아요. 4회에서 박미경(금새록) 대리가 안수영에게 말한 적 있어요. 계장님은 그 이름처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도 일정 값을 유지하는 상수 같다고. 마음의 무게를 알기에 가볍지 않고 진중하고 깊게 생각해서, 결국 마음을 내리면 아주아주 소중히 대해줄 거 같다고.
재밌는 건 그런 하 계장님을 대학 때부터 알았던 박미경 대리도 정작 대학 때는 계장님에게 대시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박미경이 영포점에서 계장님을 다시 만나고서야 직진한 것도, 아마 대학 때 뜨거웠던 소경필과의 사랑이 변수가 되어 끝장이 났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계장님의 신중함과 진중함은, 꽤 오랜 시간 지켜봐야만 알 수 있는 성질이죠. 3년째 계장님과 같은 은행을 다니며 알게 모르게 마음을 쌓아왔던 안수영처럼요.

그럼에도, 명문대를 졸업하고 은행에 연수원 수석으로 들어온 계장님이 되고 싶다던 ‘평범함’은 낯설었습니다. 인테리어업체 몇 개 갖고 있는 장인과 교감 선생인 장모, 로스쿨에 다니는 처제로 구성된 아내의 집안을 ‘그냥 평범한 집안’이라 말하는 계장님의 고교 동창들이 하던 말처럼요. 계장님이 살던 빌라의 주인집 아들이고,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의 회사 법인계좌와 직원들 계좌를 계장님 은행으로 바꿔주겠다며 은근히 당신을 무시하던 고교 동창들이 말하는 평범을 읊으셨죠. 그들이 말하는 평범이 ‘자신들이 가진 걸 조용히 드러내는 표현’이란 걸 아는 당신이, 그럼에도 신입 때부터 연봉 5000만원 이상으로 시작했을 당신이, 고졸 출신 서비스 직군의 안수영 앞에서 그 선한 얼굴로 평범해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저는 계장님이 조금 싫었습니다.
계장님의 망설임과 어긋난 타이밍의 연속으로 인해 안수영이 정종현(정가람) 청경과 이어지고 계장님이 박미경 대리와 이어질 때도 당신에게 조금 실망했습니다. 박미경 대리의 집안이 어느 정도인지는 처음부터 몰랐어도, 계장님은 알았을 거에요. 박미경이 당신이 말하던 평범한 인생에 단숨에 데려가 줄 사람이란 걸. 그 마음이 다는 아니겠지만, 9회에서 양석현(오동민) 대리 결혼식에서 박미경과의 결혼생활을 상상해봤잖아요. 고급 아파트에서, 해외여행 가는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챙겨 드리는 부유한 아내와 사는 삶을.

어쨌거나 이제 계장님은 노선을 분명히 했습니다. 박미경이 안수영과 정종현과의 동거를 밝혔음에도 그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상관없을 만큼 마음을 단단히 내렸는데요. 저는 아직 원작소설을 읽지 않았기에, 충격적이라는 결말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드라마가 원작의 결말을 따를지도 알 수 없고요. 어떤 결말이든, 저는 이제 하 계장님을 응원하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계장님의 신중함 때문에 너무 무겁게 살아왔던 계장님의 과거를 간과했던 것 같더라고요. 12회에 이르러서야 계장님의 신중함에 스며든 걸 수도 있고요.
계장님, 가끔은 남들처럼 철딱서니 없이 살아보세요. “썸도 타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해보든가··· 가벼워져”라던 어머니의 말처럼요. 계장님이나 안수영이 은행 내에서 ‘쓰레기’가 되어버린 양석현 대리의 처지가 될까 두렵나요? 좀 꼰대 같은 소리인데, 젊을 땐 조금은 철딱서니 없이 살아도 돼요. 그때는 그게 암울한 ‘흑역사’일 수 있어도, 지나고 나면 평범한 과거가 되더라고요. 게다가 철딱서니 없어도 될 젊음은 아주 짧고요. 그러니, 응원합니다. 하 계장님의 평범한 젊음을. 평범한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