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인지과학자)
이들은 청소년이 늦은 시간에 게임을 못 하게 기술적으로 막자고 한다. 게임을 못 하게 막으면 무엇을 하리라 예상하는지 물으면, 그 시간에 공부하거나 책을 읽으리라 기대한다. 안타까운 오산이다. 청소년이건 성인이건 비슷한 형태로 통제를 한 경우 실험 결과는 똑같다.
문제는 여기서 더 커진다. 아이가 게임 말고 무엇을 하며 놀까? 공터가 사라지고 서로 다른 학원 시간으로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서 아이들은 마땅한 놀거리가 없다. 게임은 가장 좋아서 찾는 놀이가 아니다. 힘없는 아이가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놀이다.
나 때는 게임도 없었고 다른 놀거리가 없어도 잘만 놀았다고 항변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요즘 아이들의 학습량은 나날이 늘고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이라고는 피아노, 태권도 정도였다. 게임의 필드가 아닌 동네 골목을 헤집고 다니면서 놀았다. 일주일에 열 곳의 학원에 다니는 현재의 아이들은 시간적 여유, 인간적 어울림 측면에서 정서적 빈곤층이다.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게임을 20년 넘게 연구해왔으나 게임이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놀이라고 보진 않는다. 다만 최악의 놀이도 아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게임 이외의 놀거리가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그런 부족함에 대한 모든 화살을 게임이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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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워할 대상은 게임, 게임 회사, 게임 연구자가 아니다. 아이들의 시간과 어울림을 빈곤하게 만들어낸 교육, 거주 환경, 경쟁 체제 등 전반적 사회 시스템을 돌아봐야 한다. 게임이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다. 헛된 사과를 받고 잠시 기분 전환하려는 게 아니라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원한다면, 미움의 대상, 정확히 말하자면 개선의 대상을 제대로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