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통서 3년 만에 꺼낸…14개월 아기의 장례식[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3.01.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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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마지막 날, 홀로 여행길 행여 외로울까, 가게 문 닫고 설 귀성길 미뤄가며 모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뼛조각 위 분홍 꼬까옷 얹고, 자그마한 관에 넣어 화장하니 애달프고 따스한 한 줌, "잘 가라, 잘 가거라, 아가" 한마음으로 꺽꺽거리며 울었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아이의 작은 관 위에 놓인 분홍색 꼬까옷. 김치통에 시신을 넣은 게 3년. 이미 아이는 수의조차 입을 수 없게 되어서, 이를 안타깝게 여긴 병원 관계자가 아이를 위해 사왔다. 그마저도 입을 수 없어 시신 위에 얹어놓아야 했다./사진=대아협아이의 작은 관 위에 놓인 분홍색 꼬까옷. 김치통에 시신을 넣은 게 3년. 이미 아이는 수의조차 입을 수 없게 되어서, 이를 안타깝게 여긴 병원 관계자가 아이를 위해 사왔다. 그마저도 입을 수 없어 시신 위에 얹어놓아야 했다./사진=대아협


김치통서 3년 만에 꺼낸…14개월 아기의 장례식[남기자의 체헐리즘]
"어떡해. 너무, 너무 작아서…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하얀 천으로 곱게 싸인 소담한 유골 상자를 받아든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이하 대아협) 대표의 눈물이 속절없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울음을 참고 본분에 맞게 기록하려 했건만, 삽시간에 시야가 무언가로 가득 차 일렁거렸다. 설 연휴 전날이었던 20일 저녁 6시, 강원도 철원의 목련 메모리얼파크.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을 마친 14개월 아기가, 이제 막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도착한 터였다.

수목장으로 향하는, 아이가 세상에서 걷는 마지막 길.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앞장서서 화장을 마친 아이의 유골함을 들고 있다. 그는 이날 참 많이도 울었다./사진=남형도 기자수목장으로 향하는, 아이가 세상에서 걷는 마지막 길.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앞장서서 화장을 마친 아이의 유골함을 들고 있다. 그는 이날 참 많이도 울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뽀드득, 뽀드득. 어둑어둑한 와중에 발목까지 쌓인 하얀 눈길만 홀연히 빛났다. 그 길을 여섯 사람이 나란히 걷는 소리가 고요하고 묵직하게 울렸다. 공 대표가 맨 앞에서 걸었고, 이수진 대아협 대리회원 세 명과 내가 뒤따랐다. 너나없는 훌쩍임과 기다란 입김이 한데 합쳐져 너무 서둘러 떠난 아가의 마지막을 따스하게 감쌌다. 슬픔, 애달픔, 분노, 그렇지만 마지막은 함께하겠단 진심이 담긴, 무언(無言)의 추모였다.



산 날을 다 모아봐야 고작 14개월. 싸늘하게 죽은 뒤 김치통 안에 있었던 시간이 3년. 숨 쉰 날보다 김치통에 담겨 바스라진 날이 더 긴, 말도 안 되는 슬픈 삶. 시신 유기 혐의로 비정한 부모는 감옥에 갇혔고, 친족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며 숨진 아기를 거두길 포기했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 있었으나, 아이는 하마터면 '무연고자'로 제대로 된 장례도, 추모도 없이 그 흔적이 모두 사라질 뻔했다.

장례도 못 치르다…70일 만에 병원 영안실에서 나온 아이
15개월 딸이 사망하자 시신을 3년간 숨긴 부모가 6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사진=뉴시스15개월 딸이 사망하자 시신을 3년간 숨긴 부모가 6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사진=뉴시스
태어난 건 2018년 10월, 숨진 건 2020년 1월이었다. 친모 서모씨(34)는 경기도 평택에 있는 자기 집에서 아이가 죽은 뒤 신고하지도, 병원에 가지도 않고 시신을 방치했다. 그 당시 친부 최모씨(29)는 교도소에 있었다. 그는 출소한 뒤 딸 시신을 김치통에 담았다. 그리고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빌라 옥상에 유기했다. 그걸 경찰이 지난해 11월 14일 수습했다. 아이 시신은 김치통에 그대로, 부패 돼 있었다. 그렇게 둔 게 무려 3년이었다.



아이가 죽기 일주일 전 열이 나고 구토를 하며 아팠지만, 병원에 안 가고 방치한 혐의. 최씨를 면회하겠다며 70여 차례 외출해 아이를 방임한 혐의. 친모 서씨는 그렇게 아동학대치사 및 사체 은닉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최씨도 사체 은닉과 사회보장급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는 동안 아이 시신은 경기도 한 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었다. 친부모는 구속됐고, 유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 거의 70일이 다 되도록 장례도 못 치르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비하인드> 영상을 통해 알려졌다. 늦게나마 마지막을 챙기기 위해 관계 기관 뜻이 모였다. 의정부지검경기북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장례와 화장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장례를 치러주고,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하여 유택 동산에 뿌리는 것까지였다.

거기에 더해,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아이를 '수목장(뼛가루를 나무 아래에 묻는 장례 방식)'으로 안치해주기로 했다. 이수진 대아협 대리가 우연히 '그알' 영상을 보고 공혜정 대표에게 제안했다. 대표가 전기세도 아껴가며 학대 피해 아동을 돕는 걸 잘 알기에, 말할지 말지 꽤 오래 고심했단다. 걱정이 무색하게 공 대표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화장하면 유택 동산의 커다란 단지에 모아놓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누구 뼈인지도 모르게 되는 건데…그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수목장을 왜 해주고 싶었냐는 물음에, 공 대표는 이리 답했다. 예전에 인천서 계부에게 학대당해 죽었던 호영이도 화장한 뒤 유택동산에 갔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가슴이 더 아팠다고.


뼈만 남아 수의도 못 입히고…분홍 꼬까옷을 얹었다
안타깝게 숨진 아이의 마지막 길이나마 잘 보내주고픈 이들. 다음날 명절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공혜정 대아협 대표와 이수진 대리와 회원들은 곁을 기꺼이 지켜주었다./사진=대아협안타깝게 숨진 아이의 마지막 길이나마 잘 보내주고픈 이들. 다음날 명절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공혜정 대아협 대표와 이수진 대리와 회원들은 곁을 기꺼이 지켜주었다./사진=대아협
아이 장례식 날은 지난 1월 20일이었다. 고달팠던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이 유가족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장례식에 오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단다. 공 대표는 괘씸한 맘이 들었으나 그런가보다, 하고 이내 포기했다. 실은 유족은 아이가 살아 있을 때 지켜줬어야 했던 사람. 그 책임을 지워야지, 이제 와서 장례식에 유족이 있음 뭐 할 거냐 싶었단다.

많은 이들이 가족을 만나러 가는 설 연휴 전날이었다. 마지막 길 쓸쓸하지 말라고, 대아협이 새벽 5시 30분부터 일찌감치 병원을 찾았다. 공 대표도, 이 대리도, 회원들도 왔다. 처음 보는 아이를 위해 누구는 식당 문을, 또 다른 누구는 미용하는 가게를 닫고 왔다. 다들 마음은 같았다. 화나고 애달프고 속상하고 아픈 마음이었다. 마지막만큼은 혼자가 아니라고, 함께라고. 어떻게든 곁을 지켜주고 싶은 거였다.

자그마한 아이의 관 안에, 꼬까옷이 얹혀 있다./사진=대아협자그마한 아이의 관 안에, 꼬까옷이 얹혀 있다./사진=대아협
비로소 아이 빈소가 마련되었다. 이제 먼 길 떠나는데 부디 배곯지 말라고 발인 제상도 차려주었다. 촛불 두 개를 환히 밝히고 향을 피웠다. 이 병원 과장님은 아기가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수를 넉넉히 사다가 상에 놓아주었다. 두 돌도 안 된 아기의 영정사진이 놓였다.

화장을 앞둔 아이의 작은 관./사진=대아협화장을 앞둔 아이의 작은 관./사진=대아협
아침 8시, 입관이 시작되었다. 시신이 오래돼 수의도 입기 어렵단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눈물이 쏟아졌다. 그게 속상했던 장례식장 직원은 분홍색 작은 꼬까옷을 사 왔다. 토끼 귀가 달려 있고 리본이 묶여 있는, 아이가 살아 있다면 꽤 좋아했을 옷이었다. 살아 있다면 입고 뛰어놀 나이건만 그럴 수 없었다. 가는 길 춥지 말라고, 옷 모양이나마 주머니에 손을 넣어주었다.

꼬까옷도 입진 못했다. 그 위에 살포시 덮어줄 뿐이었다. 그 말에 또 어디선가 울음이 터졌다. 관이 너무 작다고, 사과 상자만큼 작단 말에 또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자주 울지언정, 아이 엄마와 아빠를 자처한 이들은 그 자릴 꽉 채우며 지켰다. 추모하고 명복을 빌고 좋은 곳에 가라고 절을 했다. 적어도 이날만큼은, 아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

햇볕이 가득 드는, 포근한 이웃이 있는, 나무 아래로 자리를 고르고
수목장을 하러 온 강원도 철원의 목련 메모리얼 파크./사진=대아협수목장을 하러 온 강원도 철원의 목련 메모리얼 파크./사진=대아협
오후 2시가 되었다. 아이 관이 병원 장례식장에서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했다. 여기서 화장한 뒤, 강원도 철원의 목련 메모리얼 파크로 오게 돼 있었다. 여기가 수목장을 할 장소였다. 그제야 아이는 오랜 기다림 끝에 영면할 거였다.

공 대표와, 이 대리와, 대아협 회원들과 강원도 철원 수목장 장소로 갔다. 명절 시작이라 차가 막혀 늦게 도착할까 걱정돼 서둘러야 했다. 도착해선 수목장 관계자와 함께 자리를 미리 보러 다녔다. 400만 원 대의 동그란 소나무 자리부터 가봤다. 거기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기 위가 햇볕이 더 잘 들어올 것 같아요"란 말에 그쪽으로 이동했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하러 들어가는 아이의 작은 관./사진=대아협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하러 들어가는 아이의 작은 관./사진=대아협
올라와 보니, 앞이 시원스레 탁 트이고 햇볕이 따스하게 쏟아지는 명당이었다. 쌓인 눈에 발이 푹푹 꺼져가며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며 빈자리를 보았다. 다 좋았으나 가격대가 앞에서 본 것보다, 훨씬 비싼 게 또 걱정이었다. 대아협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이 대리가 망설이다 대표에게 이야길 건넸다. 숨진 아이도 안타깝지만, 또 살아 있는 학대 피해 아동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김치통에 오래 있었던 아이에게, 뭣보다 더 좋은 자릴 해주고픈 마음은 같았겠지만 말이다.

눈이 참 많이 오고 추웠던, 또 맑은 날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눈이 참 많이 오고 추웠던, 또 맑은 날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보단 좀 더 합리적인 가격의 자릴 택했다. 역시 햇볕이 듬뿍 쏟아지고 앞이 탁 트인 곳이었다. '에메랄드 그린'이란 기다랗게 삐죽 솟은 나무 아래, 거기가 아이가 잠들 곳이었다. 거기서도 어느 나무로 정할지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회원들은 "아이 이웃이 너그러운 할머니나 할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잘 돌봐줬음 좋겠다"고 했다. 그리 앞과 옆, 뒤까지 잘 살펴서 신중하게 나무를 정했다.

내려와 수목장 관계자와 계약서를 썼다. 공 대표는 가격을 조금이나마 깎기 위해 말을 보태어보다가, 조금 더 기를 써보기도 했다. 그 역시 후원금을 학대 피해 아동들에게 더 쓰고 싶은 거였다. 그러다 "아이가 영원히 묻힐 자리인데, 그걸로 이렇게 흥정하고 싶진 않았는데…"라며 "그냥 그 가격에 해달라"고 일순간 눈물을 쏟았다. 함께 있던 회원들도 다 같이 울었다. 톡, 하고 건드리면 와르르 울음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가볍고 작고 따뜻했던 아이를…마지막으로 안아주었다
이젠 정말 보내줘야 할 때. 두 손에 품으니 아직 따스해서, 또 너무 작아서, 마지막으로 안아줄 때 눈물이 많이 나왔다. 다 같은 마음이었다. 기도하는 기자(맨 왼쪽)와 눈물 흘리는 대아협 회원들과 공혜정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사진=대아협이젠 정말 보내줘야 할 때. 두 손에 품으니 아직 따스해서, 또 너무 작아서, 마지막으로 안아줄 때 눈물이 많이 나왔다. 다 같은 마음이었다. 기도하는 기자(맨 왼쪽)와 눈물 흘리는 대아협 회원들과 공혜정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사진=대아협
다 해서 660만원. 거기엔 수목장의 30년 관리 비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아마도 아이 가족이 찾아오진 않을 거라고, 그러니 부디, 수목장에서 아이가 잠들 나무를 잘 관리해달라고, 지나가다가 한 번씩이라도 더 보아달라고, 같은 마음으로 수목장 직원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직원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도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뒤였다.

그리고 나무 앞에 비석을 하기로 정하고, 거기에 쓸 문구를 각자 한 문장씩 적었다.

'하늘에서는 행복하게 뛰어놀기를.'

'사랑해, 편히 쉬어.'

'영원히 기억할게.'

비석에 쓸 문구를 각자 써보았다./사진=남형도 기자비석에 쓸 문구를 각자 써보았다./사진=남형도 기자
그 마음을 다 모아, 내가 두 문장으로 정리했다. '하늘에서 행복하게 놀아. 우린 영원히 기억할게'라고. 공 대표는 "놀아, 라는 말이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아이가 이 세상에서 충분히 놀지 못했으니, 다른 세상에서나마 맘껏 뛰어놀았음 좋겠단 바람이었다. 공 대표와 이 대리가 수목장에 꽂아줄 꽃다발을 사 왔다. 이제 화장이 끝나길 기다리면 되었다. 난로 앞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언 몸을 녹이며 함께 이야길 나누었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 서울에서 검은색 봉고차가 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제 준비를 다 마친 아이가 왔다. 여섯 사람이 정해둔 곳으로 차를 타고 향했다. 수목장할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하얗게 싸인 작은 나무 상자를 그 앞에 내려놓았다. 공 대표가 조심스레 천을 풀었다. 상자를 여니 한지에 화장한 유골이 싸여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너무 가벼워요", "아우 세상에, 어떡해, 이거밖에 없어"라고 저마다 토해내듯 꺽꺽거리며 울었다.

흙을 세 번씩 덮어주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프지 말라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잊지 않고 꼭 기억하겠다고./사진=남형도 기자흙을 세 번씩 덮어주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프지 말라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잊지 않고 꼭 기억하겠다고./사진=남형도 기자
나무 옆에 동그랗게 구멍을 팠다. 이제 정말 아이를 보내줄 시간이었다. "사랑을 못 받고 간 아이니 우리 한 번씩 안아주고 보내자"고, 공 대표가 말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추모하고 명복을 빌었다. 나도 아이를 두 손에 조심스레 받아들고 품에 가만히 안았다. 너무도 작고 아직 따스해서 나도 모르게 오열했다. 지켜주지 못한 어른이라 미안하다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어느 아이도 쉽게 떠나는 세상이 되지 않게 내 자리에서 꼭 애쓰겠다고.

그리 고운 흙을 골라 위에 세 번씩 곱게 덮어주는 걸 끝으로, 아이는 나무 아래 영원히 잠들게 되었다. "좋은 데로 잘 가라", "외롭지 말아라, 아가"하고 자꾸 뒤돌아보며 마지막 인사도 꽤 길어졌다. 꽃을 심고 나서야 비로소 돌아섰다. 발걸음이 그래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이를 품에 안고 들어올 때보다는 확실히 그랬다.

아동학대로 숨지는 아이, 한 해 40명…장례 '사각지대'
아이의 빈소에 차려진, 살아서 먹었다면 더 좋았을 과자와 음료수들./사진=대아협아이의 빈소에 차려진, 살아서 먹었다면 더 좋았을 과자와 음료수들./사진=대아협
김치통에서 숨진 아이의 장례는 이리 치렀다. 아이가 남기고 간 과제가 많다. 그중 하나가 '학대 피해 아동의 장례'란 생각이 들었다.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아이들은 2020년 43명, 2021년 40명이었다. 공 대표가 물음을 던졌다. "매년 40~50명씩 아동학대로 사망하는데, 장례는 잘 치르고 있는 걸까요"라고.

이번엔 아이 장례가 어떻게 지원된 건지 살펴보았다. 의정부지검 관계자"영아가 병원에 약 70일 머물며 발생한 장례비는 800만원 정도인데, 친조모가 넉넉하지 않아 그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이례적으로, 먼저 장례비 지원을 했다"고 설명했다. 원래도 범죄 피해자 지원 시스템으로 장례비 지원은 되지만, 통상은 사후 지원이 원칙이다. 다만 안타까운 사건인 걸 감안해, 내부 회의를 거쳐 의정부지검서 지원한 사례란다.

김치통서 3년 만에 꺼낸…14개월 아기의 장례식[남기자의 체헐리즘]
이례적 사례라면 늘 그렇게는 안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게 우려되었다. 의정부지검은 비교적 적극적이었기에, 이번엔 괜찮았지만 말이다. 여론의 관심과 무관하게, 담당자가 누구냐와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장례 지원이 되는가의 문제가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

만약, 아이가 검찰의 범죄피해자 장례 지원을 못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이 시신이 발견된 지역인, 평택시에 물어보았다. 평택시 복지과 관계자 "유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무연고 처리를 하고, 화장해서 뿌리게 돼 있다"고 했다. 연고가 없거나, 연고자가 있어도 찾기 어렵거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통상 지자체가 무연고자 장례를 치르게 돼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지자체별로 무연고자 장례를 치러주는 조례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통계를 보면, 전국 226개 지자체 중 113개(50%)가 공영장례 조례가 없다. 예컨대 학대 피해 아동이 어느 지역에서 사망했느냐에 따라, 장례를 해줄 수도 있고, 장례 없이 화장만 할 수도 있는 거다. 서울시 공영장례를 주관하는 '나눔과나눔'김민석 팀장"공영장례가 전국적으로 보편적인 제도가 돼야 한다"고 했다.

장례 없이 떠나고, 유족도 급히 처리하기 바빠…전문가 "지자체가 장례 치르고, 추후 청구해야"
2021년 7월 14일 오전 경기 화성시 한 장례식장에서 양부 학대 혐의로 두 달 가까이 의식불명에 빠져있다가 숨진 민영이의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시스2021년 7월 14일 오전 경기 화성시 한 장례식장에서 양부 학대 혐의로 두 달 가까이 의식불명에 빠져있다가 숨진 민영이의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시스
걱정한 대로 안타까운 사례가 실제 많았다. 20대 부모에게 학대당한 8살 초등학생은 장례도 없이 마지막 길을 떠났다. 외조부가 인계받았으나, 병원에서 곧바로 화장했다. 학부모 단체서 추모 공간을 마련하려 했으나, 유가족이 원치 않아 빈소도 없이 떠났다.

장례를 치르더라도, 주체가 그때그때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 폭행 등 학대와 방임으로 숨진 두 살배기 민영이는 그냥 화장될 뻔하다가, 시민 단체 덕분에 가까스로 빈소가 차려졌다. 경기도서 부친 폭행으로 숨진 한 살 아이는,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장례를 치러주었다.

아동학대 사건 특성상, 아이가 증거인 경우가 많아 장례 절차 없이 빨리 치워버리려는 게 원인으로 꼽힌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의심스런 아동 사망시 바로 화장하는 건 못하도록 해야 한다""미국에선 아동학대 사망 사례 조사부터 진행한다"고 조언했다.

공혜정 대아협 대표"피해 아동이 대부분 장례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보통은 남은 유가족들이 후딱 화장해버리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라, 지자체가 장례 주체가 돼야 한다" "먼저 망자를 모시고, 그러고 난 뒤 부모에게 구상권 청구를 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했다.
수목장을 마치고 먹으러 온 김치찌개. 집밥처럼 맛있는 음식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수목장을 마치고 먹으러 온 김치찌개. 집밥처럼 맛있는 음식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아이의 수목장을 다 치르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바깥이 어두컴컴해졌다. 그곳 식당 할머님께서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주었다. 많이 먹어야 아이가 좋은 곳에 간다며, 다들 묵묵히 한 그릇씩을 더 비워내었다. 얼큰하고 개운한 국물을 뜨고 마시며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달래보았다.

그리고 나서야, 그제야 다들 설 귀성길 걱정이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인 공 대표는 "내일 아침에 도착하겠어"라며 웃고, 충남 논산이 친정이라던 이 대리는 "바로 갈지 어떨지 걱정"이라고 했다. 두 아이 엄마인 대아협 회원도 집에 갈 채비를 마쳤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공 대표는 고향에 가는데 14시간 걸렸단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아이의 존엄성을 지켜줬단 생각에, 감사했다고.

밥을 다 먹고 대아협 회원이 밥값을 두 배로 치르려 했다. 늦은 시간에 챙겨준 인심이 고마워서였다. 식당 할머님이 한사코 거절하려 했으나, 넉넉히 주려는 이의 마음도 만만찮았다. 새끼 길고양이 여럿을 돌보는 할머님이니, 사룟값이라도 하시라고. 이유를 더 붙이며 겨우 김치찌개값을 치렀다. 헛헛한 마음을 끝내 온기로 가득하게 해주던 좋은 이들이었다.

식당을 나가려는데 할머님께서 이리 말했다.

"갈 때 계좌번호 좀 적어놓고 가유. 좋은 일 하시는데 조금 보태고 싶네유."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남몰래 눈물짓고, 더 나아가 이름도 모를 아이들을 위해 힘을 보태려는 선하디 선한 마음이었다.
김치통서 3년 만에 꺼낸…14개월 아기의 장례식[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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