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채한도 증액 논란…숨겨진 리스크는?

머니투데이 최성근 전문위원, 김상희 기자 2023.0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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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글로벌 스캐너 #23 - "美 부채한도 증액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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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AFP=뉴스1) 김성식 기자 = 30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뉴욕타임스 딜북 서밋에서 연설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금융·투자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이날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으로 대면 딜북 서밋을 개최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뉴욕 AFP=뉴스1) 김성식 기자 = 30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뉴욕타임스 딜북 서밋에서 연설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금융·투자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이날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으로 대면 딜북 서밋을 개최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19일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의회가 정한 부채 한도인 31조 4000억 달러에 도달했다. 이에 앞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의회에 부채한도 상향을 요구했지만,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정부 지출 삭감과 연계하며 이를 거부했다.

옐런 장관은 부채한도가 상향되지 않으면 미국 연방정부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수 있고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며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역할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 의회의 거부로 결국 재무부는 6월 5일까지 연방 공무원 퇴직·장애인 연금(CSRDF) 신규 납부 유예 등의 특별 조치 시행에 들어갔다.



미국의 부채 한도 수정은 1960년 이후 78차례나 이뤄질 정도로 흔한 일이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올해 미연방정부의 부채 한도 증액을 둘러싼 논쟁이 주목되는 배경과 그 이면에 숨겨진 리스크를 살펴봤다.

美 정부-의회 간 부채 한도 증액을 둘러싼 반복되는 기싸움
기본적으로 만성적자 구조인 미연방정부는 채권을 발행해 부족한 예산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한다. 달러 발행 권한이 연방준비제도(FRB)에 있고 의회는 재정건전성과 달러화 가치 안정을 위해 정부 부채의 상한선을 정한다.



1917년에 시작된 이 제도에 따라 연방 정부의 부채가 점점 늘어나면서 정부의 요청에 의해 상한선을 높이는 것은 의회에서 비교적 일상적인 절차였다. 1960년 이후 의회는 상한선을 78차례나 증액했다. 그중 49번은 공화당 대통령 하에서, 29번은 민주당 대통령 하에서 각각 시행됐다.

그런데 미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채 한도를 둘러싼 논쟁도 격화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부채 한도에 도달하자 의회에 2조 4000억 달러 규모의 부채 한도 증액을 요청했지만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일자리를 파괴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는 오바마 정부의 흥청망청 한 지출을 끝내겠다"며 협상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이미 부채 한도를 초과하고 보유한 현금 예산마저 떨어진 연방 정부는 공무원, 병사들 임금 체불과 연금 지급에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디폴트 시한을 이틀 남겨두고 향후 재정 적자를 감축하는 조건으로 정부와 의회 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사진=뉴스1사진=뉴스1
그 과정에서 금융시장 불안은 고조됐고 디폴트 시한이 다가오면서 주가는 급락했다. S&P 500은 7월 22일부터 8월 8일까지 16.8%나 폭락했고 6개월이 지나도록 회복되지 않았다. 국채금리도 2011년 4월 3.46%까지 급등했다.


특히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S&P는 정부의 재정 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며 사상 처음으로 미국 국채 등급을 AAA에서 한 단계 낮은 AA+로 강등했다. 미 국채의 신용등급 강등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험자산을 기피하고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현상을 고조시켰다. 위험자산인 주가는 폭락하고 안전자산인 금 가격은 급등했다

이후에도 의회와 정부 간 부채 한도 증액을 둘러싼 논쟁은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2013년 이후에만 7차례나 의회는 부채 한도 증액을 유예시키면서 기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수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1979년 채무를 연체해 '기술적 디폴트' 상황에 빠진 것을 제외하면 부채 한도 증액 실패로 미 정부가 디폴트에 빠진 적은 없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에서 정부와 의회 사이에 이러한 부채 상한선을 둘러싼 정치적 연극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며 꼬집기도 했다.

올해 미국 부채 한도 협상에 숨겨진 리스크는?
최근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부채한도 협상 논쟁이 2011년 오바마 정부 당시의 신용등급 하락 사태 이후 가장 큰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1년과 비교할 때 현재 미국 정치권력은 당시처럼 정부와 상원은 민주당, 하원은 공화당으로 분점 돼 있다. 특히 공화당 보수 강경파의 목소리가 하원을 좌우한다.

2011년 당시에는 '티파티' 소속 45명의 의원들이 막판까지 협상을 거부하면서 협상이 난항에 빠졌다. 현재 공화당에는 티파티에서 파생돼 2015년 결성된 '프리덤 코커스' 소속 하원의원 53명이 있다. 이들은 이민 확대에 반대하고 작은 정부와 세금 감면 등을 주장하는 강경 보수파다. 올해 초 매카시 하원의장이 15차의 투표 끝에 간신히 선출된 것도 이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은 매카시 의장 선출에 협력하는 대가로 주요 상임위원회에 포진해 영향력을 키웠다.

(워싱턴 AFP=뉴스1) 김성식 기자 =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24.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워싱턴 AFP=뉴스1) 김성식 기자 =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24.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부채한도 협상에서도 매카시 하원의장은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정부의 재량지출 규모를 지난 회계연도 수준으로 동결해야 한다는 프리덤 코커스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이미 공화당 의원들은 메디케어와 사회 보장 부문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지 않을 경우 한도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반면,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은 조건 없는 한도 협상을 요구하고 있어 첨예한 대립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급격한 금리 상승에 따른 바이든 정부의 부채 부담도 커졌다. 지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막대한 재정 지원이 이뤄지면서 2020년 초부터 지난해까지 늘어난 정부 부채 규모는 약 8조 달러를 초과했다. 그 결과 정부 누적 부채는 31조 원을 돌파하고 정부 부채 비율도 2022년 3분기 기준 GDP 대비 123.6%로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으로 이자 상환 부담도 커졌다. 부채한도 증액이 이뤄져도 향후 정부의 이자 상환 부담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피터슨재단은 향후 10년간 연방 정부의 이자 부담이 1조 달러 가량 늘어나며 금리가 CBO 전망치보다 1%포인트만 높아져도 이자 비용은 미 국방비 지출보다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채 한도 협상, 향후 전망은?
최근 재무부의 특별 조치 시행으로 부채한도 협상은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역사상 협상 실패로 디폴트가 발생한 적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언젠가 협상은 타결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정부와 공화당 사이의 첨예한 입장 차이 때문에 지난 2011년과 같은 극한적인 대치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만약 재무부 특별 조치 시한인 6월 초까지 부채한도 협상이 타결되지 못해도 연방 정부가 곧바로 디폴트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채 발행을 통한 차입이 불가능해 보유한 현금만을 갖고 재정지출을 해야 하는데, 지출 규모가 큰 국방, 메디케어 및 각종 연금을 포함한 사회보장 서비스 분야에서 정부의 지출 능력이 고갈된다. 또 부채 한도를 증액하지 못하면 부분적인 정부 폐쇄와 특정 공무원의 임시 휴무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으로 올해 급격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취약한 미국 경제를 더 큰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특히 연방 정부가 디폴트에 근접할수록 2011년과 같은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리스크로 작용한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폭락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또한 추가적인 신용등급 강등으로 미 국채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경우 투자자들의 국채 매도 행렬이 이어지면서 국채금리는 급등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커다란 혼돈을 초래할 수 있다.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벌어지면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높아지면서 위험자산인 글로벌 주식 시장의 연쇄적인 폭락 사태도 우려된다. 특히 선진국 주식 시장에 비해 신흥국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 또 신흥국 국채에 대한 투자 수요가 위축되면서 금리가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도 높다. 이로 인해 취약한 신흥국 시장으로부터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르게 유출되고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실물 경제마저 침체될 수 있다.

이외에도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금과 미국 단기국채 가격은 급등한 반면 금융 불안 심리가 충분히 완화되기까지 국제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은 하락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이미 높은 인플레이션과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불안 심리가 가중된 글로벌 금융시장을 고려할 때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충격은 글로벌 신용 경색으로 이어지면서 자칫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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