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 업체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택배 운송장의 이름, 연락처, 주소의 일부를 가리거나 일회용 가상번호를 쓰고 있지만 개인정보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 운송장에 적힌 개인정보를 범죄에 악용한 사례도 적지 않아 '물파스로 지우기' 등 자구책에 기대는 시민들도 있다. 배송 단계에서부터 개인정보를 익명 처리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현씨의 사례처럼 택배사별로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체국 택배는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가리고 전화번호는 전체 별표(*) 처리한다. 주소는 가리지 않고 표기한다.
한진택배는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가리고 전화번호는 가상번호를 발급해 운송장에 적고 있다. 주소는 가리지 않아 그대로 노출된다.
택배사마다 정보를 가리는 부분이 각각 다르다 보니 현씨처럼 택배를 여러 개 받을 경우 정보를 조합해 이름, 연락처, 주소 등을 유추해낼 수 있다.
택배를 바로 수령하기 어려운 1인가구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관악구에서 혼자 사는 여성 정모씨(29)는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 개인정보가 다 안 가려지니까, 받는 사람 이름을 거친 느낌이 나는 남성의 이름으로 바꿔서 택배를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21년 '물류산업 대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물류 서비스의 불편한 점을 묻는 항목에 38.4%가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불안하다'고 답했다.
택배 운송장을 악용한 범죄도 발생했다. 지난 2021년 노원구 세 모녀 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태현은 택배 상자를 통해 피해자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 같은 해 4월에는 택배 상자에서 이웃집 여성의 연락처를 알아내 음란·협박 문자를 보낸 남성이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택배 송장 전용 지우개', '아세톤으로 개인정보 지우기', '남성 이름으로 택배 받기' 등의 방법이 공유되고 있다. 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물파스, 아세톤 등을 이용해 운송장 스티커의 글씨 지우기', '운송장 반드시 찢어서 버리기' 등의 방법을 홍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름과 전화번호를 비식별 처리하는 의견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실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2021년 택배사 11곳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은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으로 여전히 택배사들은 개인정보를 각자의 방식으로 표시하고 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는 "운송장에 수령인의 이름, 전화번호가 굳이 나올 필요 없다"며 "운송장 전산화가 잘 돼 있어 수령인에게 전화가 필요할 때 바로 연락처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택배사 관계자 역시 "PDA로 바코드를 찍으면 개인정보가 뜨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는다"며 "이름이나 전화번호가 안 보여도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