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계일주'에는 있고 '두발로 티켓팅'엔 없는 것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3.01.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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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 티켓팅', 사진제공=티빙'두발로 티켓팅', 사진제공=티빙


"이건 아니지!"

티빙 오리지널 대리고생 로드트립 예능 '두발로 티켓팅'에서 샤이니 민호가 식대 미션 수행에 실패하자 뱉는 이 말은 마치 이 예능에 대한 진단처럼 들린다. 충무로와 안방극장, K팝 스타들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았던 '두발로 티켓팅'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힐링하려다 숨이 막혔다"는 의견이 들끓고 있다. 제작진은 초반 타임라인부터 촘촘하게 미션을 집어넣으며 자신들이 이 여행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미션을 수행하는 하정우, 주지훈, 최민호, 여진구 네 출연진들의 이어지는 가쁜 호흡에 지켜보는 시청자마저 호흡 부족 현상을 겪는다.

'두발로 티켓팅'의 여행지는 뉴질랜드. 최소 11시간 이상 하늘길을 달려야 도착하는 머나먼 땅이다. 네 사람은 뉴질랜드에 당도하자마자 직접 운전대를 잡고 분주히 또 어딘가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저녁 거리를 사기 위해 들른 현지 마트. 장을 든든하게 보려면 제작진이 준비한 미션에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미션은 녹록치 않다. 결국 100달러였던 용돈이 26달러까지 깎였다. 26달러로 장을 보려니 살 것이 마땅하지 않다. 닭다리 4조각과 소세지, 감자 한 봉지, 소금을 고르니 잔고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턱없이 부족한 식재료라도 만족하며 마트 밖을 나선 네 사람은 한번 더 당혹감에 휩싸인다. 몰고 온 차 대신에 자전거 네 대가 그들 앞에 놓여 있다.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인 캠핑장까지 44km를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미션 수행 여부는 네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들이 대리고생해 걷고 달리는 만큼 시청자들에게 티켓을 보내줄 수 있다. 그러니 장기 비행을 하고 부실한 저녁이 예견돼도 이들은 자전거를 타지 않을 수 없다. 결연하게 라이딩을 시작한 네 사람은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틈도 없이 목적지로 내달린다. 하지만 결국 낙오자가 발생한다. 헬멧 착용에 불편함을 겪던 하정우가 어쩔 수 없이 라이딩을 포기하면서 여진구도 함께 차로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낙오한 두 사람의 부담까지 껴안은 주지훈과 최민호는 발길이 더 무겁다. 라이딩에 익숙지 않은 최민호는 급기야 저혈당 증세를 보인다. 그래도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완주에 성공하며 시청자에게 보내줄 티켓 7장을 획득한다.

'두발로 티켓팅', 사진제공=티빙'두발로 티켓팅', 사진제공=티빙


캠핑장에 도착한 이들은 직접 장작을 주워 불을 떼고, 성에는 찰까 싶은 부실한 저녁을 먹는다. 키 180cm가 넘는 거구의 성인 남성 네 명은 몸을 구깃하게 접어 차 위아래로 나뉘어 잠자리에 든다. 비좁은 공간의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이 누적된 피로가 이들을 꿈나라로 이끈다. 그렇게 해가 밝아 오고 하나 둘 뉴질랜드에서의 첫 번째 아침을 맞이 한다. 하지만 눈 뜨자마자 또 미션이다. 이번엔 걷기다. 아침도 제대로 못먹은 이들은 티켓 확보를 위해 또 다시 산에 오른다. 가파른 언덕길이 계속되고, 출연진들의 가쁜 숨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 담당 PD마저 낙오하고, 카메라 스태프들도 거친 숨을 내몰아 쉰다.

이 모든 게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24시간 내에 벌어진 일이다. 미션에 미션을 더하고, 피로에 피로가 쌓인다. 미션 수행에 분량의 대부분을 할애한 만큼 아직 그들이 머무는 곳이 뉴질랜드라는 현실감도, 출연진의 케미스트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연결고리가 있는 네 출연진들의 호흡은 맏형 하정우가 애써 "맘마미아"를 거듭 외치며 극복하려는 의지를 적지않게 담아내지만, 감탄사로 쓰이는 저 단어가 어쩐지 구슬프게 들린다.

'태계일주', 사진제공=MBC'태계일주', 사진제공=MBC

"저는 버킷리스트를 이뤄가는 중입니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태계일주)' 속 기안84의 발언은 '두발로 티켓팅'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기안84가 이시언, 빠니보틀과 함께 떠난 여행길도 상당히 고생스럽다. 음식은 짜고, 이동 중에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교통체증도 심하고, 샌드플라이의 기습을 받은 다리는 성하지 않다. 해외 체류 기간이 늘어날수록 행색도 점점 꾀죄죄해진다. 하지만 기안84의 여행길은 고생스럽지만 그 주체만큼은 본인에게 있다. 버킷리스트 이룰 때마다 아이 같은 천진함이 드러나고, 그의 자연스러운 시선을 따라 낯선 땅의 풍경을 온정있게 담아낸다. 기안84는 무엇이든 자의로 행동하며 여행의 미학을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을 일컫는다. 대부분 사람들의 여행 목적도 현지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감상에 기반한다. 여행 예능을 보는 목적도 마찬가지다. 대리 만족의 충족이다. '두발로 티켓팅'은 뉴질랜드라는 배경이 불필요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출연진 스스로 그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체 잃은 출연진의 고생만 하는 모습은 여행의 낭만성을 살리지도, 새로움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티켓을 제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유대나 동기 없는 선행은 새로운 차원의 공감을 안기지 못한다. 제작진이 쥐어준 사연 한 줄은 티켓을 주고받는 출연진과 사연자 간의 유대감을 총족하기엔 다소 부족해 보인다. 나는 없고 남만 있으며, 그 남과의 고리마저 가냘프다.

4명의 우정 여행 사연 신청자에게 "티켓을 한 장 밖에 구하지 못했다"고 장난을 쳤을 때도, 수화기 너머 찰나의 정적은 이들이 당면한 문제를 보여줬다. 실패하면 죄인, 성공하면 영웅이 되는 이들의 '두발' 고생은 과정과 상관없이 결과만으로 어떠한 피드백을 감수해야만 한다. 당연히 좋은 이미지를 쌓아야 하는 출연진 입장에선 무리를 해서라도 티켓 확보가 우선시 될 것이다. '나'라는 관점이 확실한 여행의 주체가 타인에게 전도되는 순간 시청자들이 바라는 '여행 예능'의 니즈는 경계를 이탈한다. 소수를 위한 선의는 요즘 대중이 원하는 '여행 예능'의 분류에서 큰 힘을 갖지 못한다. 같은 땀을 흘리더라도 기안84의 모습에 대중이 열광한 지점을 '두발로 티켓팅'은 더 다가서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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