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옛날폰 제가 쓸래요"…구식 기기에 열광하는 10대들, 왜?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3.01.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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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Z세대 사이 디카, 구형 폴더폰 인기…"스마트폰 피로감 줄인다"

가수 카밀라 카베요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폴더폰을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사진=트위터가수 카밀라 카베요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폴더폰을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사진=트위터


#미국 일리노이 어바나-샴페인 대학에 다니는 새미 팔라졸로(18)는 요즘 저녁 파티에 갈 때 꼭 챙기는 게 있다. 구식 폴더폰(플립폰)이다. 집에서 외출 준비를 할 땐 최신 스마트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지만 막상 나갈 땐 스마트폰은 두고 폴더폰을 챙긴다. 팔라졸로는 "파티에 가면 사람들이 '이거 대박! 정말 폴더폰이야?'라고 묻는다"며 "이걸로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대화 중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미국 CNN)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신입생인 앤서니 타바레즈(18)는 지난해 봄 프롬 파티에서 친구들과 밤새 춤추며 신나는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건 스마트폰이 아닌 2007년 만들어진 710만화소 디지털카메라인 올림푸스 FE-230이었다. 그가 찍은 사진은 형체가 흐릿하고 자주색 빛이 강조돼 지난해가 아니라 몇십년 전 사진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만족한다. 타바레즈는 "우리는 스마트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면서 "뭔가 새로운 걸 찍을 때 디카는 훨씬 흥미롭다"고 말했다.(미국 뉴욕타임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명 연예인도 구식 휴대폰 꺼냈다
스마트폰에 밀려 벽장 신세였던 폴더폰과 디지털카메라가 뉴트로 열풍 속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Y2K(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감성) 감성에 빠진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에게 이 '한물간' 기기들이 트렌디한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매체들은 최근 잇따라 이 새로운 현상을 조명하는 기사를 냈다.

Z세대는 오래되고 촌스러운 물건들을 '갬성템', '레어템'으로 분류해 높게 평가하고 나름의 경험과 스토리를 덧입혀 새로운 문화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스트리밍 대신 LP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 대신 필름 카메라로 일상을 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신없이 빠르게 변모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여유를 갖고 자신만의 속도를 찾으려는 방법이기도 하다.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10대들에겐 기술 개발 덕에 사라져버린 불편하고 번거로운 잡일도 그저 새롭고 신선한 체험이다. 디카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일일이 옮기는 일이 귀찮을 법도 한데 이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겪어보지 못한 시대적 감성이 녹아있는 콘텐츠는 참신함 그 자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왜곡된 색감과 손 떨림이 그대로 들어간 디카 사진도 촌스러운 게 아니라 힙한 사진이 됐다. 이제는 표준이 된 또렷하고 정확한 스마트폰 사진 피드 속에서 디카로 찍은 별난 사진은 삭제될 대상이 아닌 보물로 간주된다. Z세대 파티나 사교 행사에서 캐논 파워샷이나 코닥 이지쉐어 같은 옛날 카메라가 등장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라고 NYT는 전했다.

구식 폴더폰은 가장 최근 Z세대의 주목을 받는 전자기기다. 팔라졸로는 10대에게 인기있는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인 틱톡에서 폴더폰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그는 친구들과 폴더폰으로 찍은 저화질의 사진을 올리고 폴더폰을 쓰면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영상을 올린다. 폴더폰을 화려한 포장지나 반짝이는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Z세대에서 핫한 스타들도 일찌감치 폴더폰 유행에 뛰어들었다. 노래 '하바나'로 유명한 1997년생 가수 카밀라 카베요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구제 TCL 폴더폰을 든 사진을 올리며 "나는 폴더폰 혁명팀"이라며 "어쩌면 주제가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썼다. 배우 도브 카메론 역시 지난해 11월 "1990년대 매트릭스 스타일의 폴더폰을 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베이에서 28달러에 판매되는 모토로라 레이저 중고품/사진=이베이이베이에서 28달러에 판매되는 모토로라 레이저 중고품/사진=이베이
'힙'한 것뿐만 아니라…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폴더폰의 주요 장점으로 내세우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와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을 잡아먹고 자존감을 박살 내는 소셜미디어에서 탈출하고 신체적·정신적 건강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CNN은 뼛속까지 디지털인 Z세대에게 스마트폰이 일상이지만 그에 따른 피로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10대 청소년 중 36%는 소셜미디어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고 답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 통계에선 2004년부터 2019년 사이 10대 우울증 환자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런 결과는 2012년경 보편화된 스마트폰 및 소셜미디어 사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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