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접속의 시대

머니투데이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2023.01.1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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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해 12월 개봉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2'는 역시나 명불허전의 대작이었다. 스펙터클이 한층 업그레이드됐고 스토리 또한 더 탄탄해졌다. 2009년 첫 개봉 당시 화제작이었던 '아바타'는 전세계 박스오피스 1위라는 흥행 대기록은 차치하더라도 영화사에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SF다. 지금은 일상용어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아바타라는 개념은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기술 관점에서 보면 아바타는 '3D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선구적 영화다. 지구의 에너지 고갈로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자원을 채굴하려는 인류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족의 신체에 인간 의식을 주입해 원격조종이 가능한 새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시킨다. 영화 속 아바타는 인간이 나비족에게 '접속'해 연결한 생명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현실 세상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 머물렀지만 공상 속 아바타는 사람과 다른 생명체의 접속으로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으려고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21세기 벽두에 매우 통찰력 있는 주장을 담은 책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01년 한국에서 그의 책은 '소유의 종말'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됐지만 원래 제목은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를 지탱한 '소유'라는 개념은 기술혁신과 함께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점점 '접속'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된다는 주장이다. 기존에는 물건을 사서 독점적, 배타적으로 소유해야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필요할 때마다 접속해서 사용하면 된다. 디지털 혁명과 함께 일상이 돼버린 접속과 연결은 소통, 업무, 거래, 관계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접속과 연결의 아이콘은 뭐니뭐니해도 인터넷이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꾼 혁신기술은 무수히 많았지만 20세기 후반에 탄생한 인터넷만큼 강력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인터넷이 단절된다면'이라고 상상한다면 가히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해 말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가 수십 시간 먹통이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혼란이 야기됐는데 하물며 글로벌 네트워크 인터넷이 마비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모든 게 멈춰버리는 디지털 아마겟돈 상황을 맞을 것이다. 인터넷이 다운되면 전자상거래, 모바일뱅킹, 인터넷강의, 내비게이션, e메일, 스마트폰 등 어느 것 하나 사용할 수 없는 암흑천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은 엄청난 가치와 존재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인간이 인터넷을 만들고 이용한 지는 기껏해야 50여년에 불과하고 대중이 상용하는 '월드와이드웹'(www)을 이용한 지도 30년이 좀 넘는다. 인터넷의 효시는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연구프로젝트로 개발된 '아르파넷'(ARPANET)이다. 1969년 UCLA 연구팀은 아르파넷을 통해 600㎞ 떨어진 스탠퍼드대 연구소에 메시지를 전송하는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인터넷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30년 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엔지니어 팀 버너스 리가 '월드와이드웹'이라는 혁신적인 광역 정보서비스를 고안하면서 웹의 대중화 시대를 연다. 첨단기술의 총아 인터넷은 우리에게 접속과 연결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 즉 '이세계'를 가져다줬다. 그것은 디지털 기반의 e세계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물리적 세상과 완전히 다른 이세계(異世界)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사회적 동물 '호모사피엔스'는 디지털혁명 이래 접속을 통해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호모커넥티쿠스'로 진화했다. 새해가 밝았고 우리는 2023년에 새로 접속했다. 우리는 매일 뭔가에 접속한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21세기 접속의 시대에는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대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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