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무상·도신·도성…홍콩영화는 왜 '도박판'이었을까 [김지산의 '군맹무中']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3.01.0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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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도박이 생활의 일부... 중국인 이해 열쇠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고대여성이 도박성 게임을 하는 그림 /사진=바이두고대여성이 도박성 게임을 하는 그림 /사진=바이두


당구의 일종인 스누커에서 중국은 남녀를 통틀어 세계적인 강국 중 하나다. 여러 세계 대회에서 중국 선수들은 거의 빠짐없이 상위에 오른다.

중국의 자랑 중 하나였던 스누커계가 뒤숭숭하다. 유명선수들이 대거 연루된 승부조작이 들통나서다. 세계 프로스누커협회(WPBSA)가 이달 3일 승부조작 혐의를 받는 자오신퉁과 장젠캉에 대해 출전정지를 명령했다. 앞서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9일에는 옌빙타오, 량원보 등 10명이 무더기로 출전정지 됐다. 옌빙타오와 자오신퉁은 세계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전 중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리티에가 감독 시절 승부조작과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을 국가대표팀에 선발한 사실이 드러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다.

스포츠에서 승부조작은 여러 나라들에서 더러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 빈도가 높다. 근본에는 중국인들의 유난스러운 '도박 사랑'이 도사린다.



중국 도박의 기원에 관해서는 2500~4000년 전까지 주장이 다양하다. 문헌에 선명하게 기록된 근거로 보자면 춘추전국시대를 꼽는다. 제나라 사람들이 도박을 좋아해 귀족이나 천민이나 일상이 도박이었다고 전해진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전기경마(田忌賽馬)'다. 손자병법 손무의 5대 자손 손빈은 당시 귀족들이 즐기던 도박 경마(賽馬)를 병법에 응용해 전기 장군에게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좌전·소공25년'에는 계씨와 후씨 두 사람이 닭싸움 도박을 하는데 계씨는 겨잣가루를 닭 날개 밑에 발라 후씨 닭이 눈도 뜨지 못하게 만드는 수법으로 돈을 따갔다고 적혀 있다. 개 경주, 개싸움도 흔해서 명망 있는 문인들도 술판에서 개싸움을 시켰다고 한다.


마작을 공자가 개발했다는 얘기도 있다/사진=바이두마작을 공자가 개발했다는 얘기도 있다/사진=바이두
당 태종은 옛 왕조가 타락해 망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귀족들에게 도박 금지령을 내렸지만 헛수고였다. 오히려 두 마리 새 앞에 좁쌀 한 알을 놓고 싸움을 붙이고는 판돈을 거는 도박이 탄생하기까지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중국 도박의 대명사 마작을 공자가 개발했다는 얘기도 있다. 공자가 기원전 500년 전 천하를 돌며 수행하던 중 같은 모양의 나무 조각을 찾는 일을 놀이 삼아 있는데 훗날 마작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기원전 2세기 진나라는 국고를 채우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는데 인기가 하늘을 찔러 군비 충당은 물론 만리장성 건설에까지 큰 보탬이 됐다고 한다.

고대 중국인에서부터 내려온 도박의 피는 14~17세기 사업화됐다. 우리 시각으로 도박장 주인은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사람이지만 중국에서는 지역 명망가로서 존경의 대상이었다.

19세기 후반 상하이가 도박의 성지로 떠오르자 마카오를 점령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세수 확대를 위해 상하이를 벤치마크 했다. 1847년 마카오 도박을 합법화하면서 오늘날 마카오가 세계 최대 도박 도시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본토에서는 국공내전 끝에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한 직후 도박을 금지하면서 마카오는 날개를 달았다.

지존무상3 포스터지존무상3 포스터
90년대 아시아를 호령하던 홍콩 영화가 도박으로 시작해 도박으로 끝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89년 지존무상을 시작으로 도신, 도성, 도협, 도패, 지존계상, 도협대전 등 도박 영화는 폭력을 테마로 한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와 함께 홍콩을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1960년대 이후 중국에서 제작된 도박 관련 영화가 100편 가까이 된다는 통계가 있다.

도박이 삶의 중요한 부분인 중국인들에게 법은 큰 장애가 되지 못한다. 결혼식장에서, 술판에서, 가정에서 마작은 일상이다. 경마는 불법인데도 91년 서안에서는 상금을 내건 경마가 유행하고 도처에 경마장이 건립됐다. 92년에는 광둥성 경마챔피언 초청대회가 열렸다. 그해 마카오, 선전, 베이징도 경마 대회를 따라 했다. 남순강화 중이던 덩샤오핑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인민들 삶의 일부를 잘라냈을 때 끊어오를 분노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비슷한 시기 당 중앙위와 국무원이 '경마대회 등 도박성 행사의 전면 금지에 관한 통지'를 내걸며 준엄한 법의 심판을 얘기했지만 비웃음만 샀다. 상하이는 일본과 손잡고 세계 경마장을 짓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하이난성, 선전, 푸젠성, 심지어 공산당 수뇌부가 거주하는 베이징마저 경마장 건설에 뛰어들었다.

얼마전 끝난 2022 카타르 월드컵 때 중앙기율검사위·국가감찰위원회가 당정 간부들에게 경기 결과에 앞서 도박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 나라 사정기관이 고위 공무원들에게 이런 식의 주의를 주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10억 인구 중 9억은 도박 중이고 나머지 1억은 이제 막 손을 뗐다.'

오래전 중국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말이다.(현재 인구는 약 14억) 중국인 특징을 파악하는 데 도박을 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표정 관리를 하고 상대의 패를 읽으면서 때론 유연하게 때론 가차 없이 승부수를 던지고 종종 상대를 속이는 도박의 생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중국인을 파악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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