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슈퍼맨' 헨리 카빌을 떠나보내는 아쉬움

머니투데이 영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01.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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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오브스틸',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맨오브스틸',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 세상엔 아주 가끔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밤은 어두워야 하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야 하는 것처럼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당연히 그렇게 굴러가야만 합당한 그런 것들.

우리가 사랑하는 슈퍼히어로 세계는 의외로 이런 당연한 것들이 드물다. 죽었던 히어로 캐릭터가 부활하는 일은 비일비재 하고,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시간 여행도 슈퍼히어로 세계에서는 누워서 떡 먹기다. 이처럼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기에 슈퍼 히어로 이야기가 사랑받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슈퍼 히어로 세계임에도 단 하나의 당연히 그래야 하는 명제가 있다면 그건 어쩌면 ‘슈퍼맨은 강해야 한다’일 것이다. 슈퍼맨을 지칭하는 수식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맨 오브 스틸’이라는 건 슈퍼맨의 압도적인 강력함이 이 캐릭터의 가장 큰 매력임을 보여준다.

배우 헨리 카빌은 이런 슈퍼맨의 강인함을 가장 잘 이해하고 연기한 인물이었다. 그는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크립톤 행성의 마지막 아들로 지구로 오게 된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겨야 하는 모순된 상황들 속에서 마음껏 고뇌했다. 흉측한 토네이도가 조너선 켄트(케빈 코스트너)를 집어 삼킬 때에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도 구하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방황했다,



이런 슈퍼맨의 모습은 헨리 카빌의 우수에 젖은 연기를 통해 더욱 빛을 발했다. 슈퍼맨이라는 아이콘이 될 한 인간이 마치 평범한 비행 청소년처럼 방황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구도(求道)를 위해 길을 떠난 순례자처럼 보이게 했다. 슈퍼맨을 연기하기 위해 극한으로 끌어올린 헨리 카빌의 벌크업 된 육체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는 클라크 켄트가 구도자처럼 보였기에 ‘맨 오브 스틸’이 단순한 슈퍼맨 오리진 서사에 그치지 않고 신화(神話)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헨리 카빌의 슈퍼맨이 전 세계인과 처음 조우했다. 과거 크리스토퍼 리브가 연기했던 슈퍼맨과도 다르고 브랜든 루스의 슈퍼맨, ‘스몰빌’에서 톰 웰링이 연기한 어린 시절의 클라크 켄트와도 다른 슈퍼맨이 탄생한 것이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로이스 레인이 죽었다고 지구를 거꾸로 돌리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고, 망토를 두르고 나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을 소요하지도 않았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호쾌하게 날았고, 장렬하게 메트로폴리스를 부쉈으며, 적을 망설임 없이 히트 비전(눈으로 쏘는 광선)으로 지졌다. 극장에서 처음 히트 비전으로 적을 지질 때 어디선가 뭔가를 굽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렇게 헨리 카빌은 슈퍼맨으로서 모든 걸 갖춘 인물이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류의 프로그램에서 단골 소재처럼 다루던 ‘슈퍼맨의 저주’도 헨리 카빌의 벌크업 된 육체를 봤다면 “여기가 아닌가 보네”하면서 꼬리를 말고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럴 듯 적은 내부에 있었던 모양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수염을 어설프게 가린 CG를 봤을 때, 배트맨의 크립토나이트 창에 압도되어 “마사”를 외치던 그때 헨리 카빌은 빠르게 발을 뺐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조스 웨던의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슈퍼맨을 맡았다. 감동적인 전개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전작에서 죽었던 슈퍼맨이 ‘저스티스 리그’에서는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활해야 했다. 전투가 끝나고 한숨 돌릴 만하니 쿠키 영상에서 플래시(에즈라 밀러)와 달리기 시합도 잡혔다.

수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망작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슈퍼맨이 백악관에 날아와 대통령을 납치한다면 어쩔 것이냐”는 괴랄한 전제에서 시작하고, ‘샤잠’에서는 슈퍼맨의 상반신만 등장해 샤잠의 기를 세워주는 역할까지 맡는다. 최근 ‘블랙아담’에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 슈퍼맨 복귀의 청신호를 쐈지만 헨리 카빌의 슈퍼맨 복귀는 끝내 무산됐다.

헨리 카빌은 “교체는 늘 일어나는 일”,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담담하게 자신의 하차를 알렸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을 추억으로 여기듯이, 토비 맥과이어만이 스파이더맨인 줄 알았던 시기를 지나 톰 홀랜드를 받아들였듯 헨리 카빌의 슈퍼맨도 추억이 되겠지.

그러나 ‘맨 오브 스틸’로부터 약 10년 동안 헨리 카빌은 슈퍼맨보다 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이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기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의 이런 모습은 인내라는 단어보다 슈퍼맨에 대한 헌신으로 봐야 마땅하다. 이제 팬들은 ‘헨리 카빌의 슈퍼맨’을 영원히 떠나보낸다. 적어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처럼 보내줄 수는 없었던 걸까.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물러나지 않아도 되는 때에 물러날 수밖에 없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는 잘 알게 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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