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알맞게 찾아온 ‘사랑의 이해’

머니투데이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01.0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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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가는 현실을 담은 네남녀의 얽히고설킨 연애담

'사랑의 이해' , 사진제공=SLL'사랑의 이해' , 사진제공=SLL


어린 시절 드라마를 통해 학습된 ‘사랑’은 달콤했다. 분명 드라마는 사랑의 여러 면을 담았을 텐데 기억에 남은 거라곤 핑크빛뿐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빼어난 미모의 배우들이 등장해, 사랑의 가장 눈부신 부분만을 기록하니 어렸던 내게는 아름답게 보였을 만도 하다. 하이틴 소설에서 그린 사랑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떤 상황에도 모든 걸 가능케 하고 모든 게 용서가 되는, 사랑은 그런 것만 같았다. 때문에 현실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주인공이 됐을 땐 세상이 모두 핑크빛으로 보일 것이란 허상에서부터 깨어나야 했다. 당시 일기에 ‘드라마도 소설도 사랑의 단편만 담는다’고 적어둔 것만 봐도 그때 느꼈던 배신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 면에서 현재 방송 중인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극본 이서현 이현정, 연출 조영민)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한 은행의 지점이라는 좁고 현실적인 공간에서 네 남녀가 사랑을 두고 벌이는 감정 변화가 매 회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각기 다른 이해(利害)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理解)하게 되는 연애기’라는 설명은 첫 화만 보더라도 이해 가능하다.



드라마는 극의 주된 배경이 되는 KCU은행 영포점의 셔터와 함께 막을 올린다. 이 은행의 3년 차 계장 하상수(유연석)는 같은 지점에 근무하는 4년 차 주임이자 ’영포점 여신‘이라 불리는 안수영(문가영)을 마음에 품고 있다. 신입행원 시절부터 시작된 마음을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지 저도 모르게 시선은 안수영에게 향하고, 그의 시선은 안수영도 눈치챈 분위기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인 줄 알았건만, 안수영이 한 고객에게 투자 상품에 대해 설명하던 중 “투자에 실패하면 그쪽이 책임질거냐”는 비난을 받으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목소리를 높이던 고객은 제 분에 못 이겨 상품설명서를 찢고, 안수영의 얼굴에 뿌리려 한다. 이를 인지한 하상수는 제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곤 위험으로부터 안수영을 구한다.

'사랑의 이해' , 사진제공=SLL'사랑의 이해' , 사진제공=SLL


하지만 마음만 앞섰던 하상수는 제 업무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하상수와 안수영은 제주도 출장을 다녀오고, 이를 계기로 하상수는 안수영에게 다가간다. 안수영은 제 앞에서만 어색해지는 하상수가 귀엽게만 느껴지고, 관계에 확신을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다음 약속이 어긋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이 전보다 더욱 악화한다. 냉전의 시간이 흐르고, 몇 번의 부딪힘 끝에야 서로에게 조금은 솔직해진 두 사람. 하지만 그 사이 하상수에겐 박미경(금새록)이, 안수영에겐 정종현(정가람)이 마음을 고백하고, 가까이에서 힘이 돼준다.

4회까지 방송된 가운데, 하상수와 안수영은 성장 배경과 현재의 상황만큼이나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홀어머니의 지극정성 아래 강남 8학군-명문대 출신으로 강남 거주자라는 외피를 두른 하상수에게 사랑은 어떠한 조건에도 변함없는 상수. 사랑에도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기에 안수영과의 관계 변화를 가져올 약속 앞에서 신중했고, 고민 끝에 안수영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물론 이 마음이 안수영에겐 닿지 못했다.). 부모가 있음에도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살아가는 안수영은 그저 평범을 바라는 인물. 그에게 있어 사랑은 예쁘고 반짝이지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다. 또 박미경에게 있어 사랑은 뜨겁게 불타오르지는 않아도 늘 따뜻이 해주는 체온, 정종현에게 있어 사랑은 언젠가 다 갚아야 하는 숨 막히는 부채감 같은 빚이다. 좁디좁은 은행 지점 안,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계급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하상수와 안수영의 사랑이, 네 남녀의 감정이 어떻게 얽히고설킬지 남은 이야기에 관심이 쏠린다.

'사랑의 이해' , 사진제공=SLL'사랑의 이해' , 사진제공=SLL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낭만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영화 ‘제보자’ ‘상의원’ ‘배니싱: 미제사건’ 등 장르와 분야를 넘나드는 연기로 사랑받은 유연석은 이번 드라마에서 반듯하면서도 따뜻한 남자, 제 몫의 일은 잘 해내지만 사랑 앞에서는 어눌한 남자 하상수를 연기, 멜로 킹 명성을 이어간다.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2’ ‘그 남자의 기억법’ ‘여신강림’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 등에서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낸 문가영은 기분 좋을 때도 강해 보이고 싶을 때도 울고 싶을 때도 항상 미소로 가면을 쓰는 여자 안수영으로 분한다.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안수영에 녹아든 그의 연기 성장이 ‘사랑의 이해’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겨울, 흔히들 멜로의 계절이라고 한다. 앞서 말했듯 ‘사랑의 이해’는 여느 드라마보다 현실의 우리가, 모두가 고민하는 사랑의 면면을 담는다. 이처럼 계절에 딱 들어맞는 드라마,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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