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까'와 '억빠' 짊어진 이영지의 숙제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3.01.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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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사진=Mnet 방송화면이영지/사진=Mnet 방송화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영지의 '쇼미더머니11' 도전은 우승이라는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그러나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처럼 이영지 앞에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놓여있다.

이번 시즌 '쇼미더머니'를 이끌어간 인물은 단연 이영지였다. 예년에 비해 '네임드 래퍼'의 지원이 많지 않아 이번 시즌 '쇼미더머니'는 도무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차 예선 현장에서 포착된 이영지의 모습은 식었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끌어올렸다.



가장 먼저 화두에 오른 것은 이영지의 참가 자체에 대한 논란이었다. 일각에서는 "밥그릇을 뺏으러 나온 것 아니냐" "예능인 아니냐"며 이영지의 '쇼미더머니' 참가를 비난했다. 또한 힙합 팬들은 이영지의 음악적 커리어가 싱글과 피처링이 전부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앨범 단위의 작업물을 먼저 선보이는 것이 우선 순위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은 밥그릇을 두고 경쟁하는 '서바이벌'이다. 게다가 '쇼미더머니11' 지원 자격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므로 전자의 비판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이는 이영지라는 사람을 향한 '억까'(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힌 비난)에 불과했다.



후자의 비판은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래퍼 이영지가 이뤄낸 음악적 커리어가 빈약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비판은 비단 이영지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딘, 빈지노 등은 내겠다는 말과 달리 (계속) 연기되는 앨범 발매로 비판받고 있으며 릴보이, 사이먼 도미닉 또한 앨범을 발매하기 전까지 긴 공백기를 가지며 비판에 시달렸다. 어린 나이와 짧은 경력을 핑계삼기도 어렵다. 이영지와 비슷한 나이와 경력의 릴타치(강현준), 빅 나티(서동현) 등은 이미 앨범 단위의 작업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앨범 발매와 '쇼미더머니' 사이에서 '쇼미더머니'를 선택했다는 비판은 나름의 타당한 이유를 가졌지만 일부 팬들은 비판하는 이들을 비난하며 이영지를 과도하게 감쌌다. '억까'에 맞서는 '억빠'(과도하게 한 사람을 옹호하는 행위)가 나온 것이다.

이영지/사진=Mnet 방송화면이영지/사진=Mnet 방송화면

방송 중에도 이영지를 향한 '억까'와 '억빠' 공방전은 이어졌다. 이영지는 3차 예선에서 랩을 하지 못해 탈락 후보로 선정됐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영지에게 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크루팀전에서는 10초 이상 랩을 절었음에도 탈락자로 선정되지 않았다.

다른 시즌과 비교하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이는 젊은 층의 주요 화두인 '공정'에 위배되는 일이다. 다만 비판의 방향은 이영지가 아닌 이러한 시스템을 구상한 제작진, 혹은 형평성에 맞지 않게 탈락자를 선정한 프로듀서에게로 향해야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비판의 화살을 이영지에게 돌리며 '억까'를 이어갔다. 이와 반대로 결과적으로 수혜를 입은 이영지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며 이를 감싸고 도는 '억빠'도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결승까지 진출한 이영지는 압도적인 투표수로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방송은 끝났지만 '억까'와 '억빠' 공방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시즌 결승전은 '쇼미더머니' 역대 최초로 0퍼센트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청자 투표 수로 결정되는 금액은 평소 시즌의 배 이상을 기록했다. 시청률과 비교해 지나치게 큰 차이가 난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영지의 우승이 무대와 음악이 아닌 인기로 얻어진 것이라며 폄훼했다. 이를 반박하는 사람들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투표에서 대중적 인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이영지를 옹호했다.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억까'와 '억빠' 공방전으로 인해 이영지에게는 우승 트로피 무게보다 더 무거운 숙제가 부과됐다. 가장 중요한 숙제는 좋은 음악, 정확히는 좋은 앨범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풀어내는 것이다. 차트 상위권, 시상식 수상은 중요하지 않다. 이영지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방송에서의 활약보다 그 이후의 행보가 더욱 중요하다. 이영지가 '고등래퍼3' 우승 이후 보여준 행보를 답습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긍정적인 점은 이영지 역시 이런 상황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쇼미더머니11' 우승이 확정된 후 이영지는 분명한 목소리로 "앨범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억까'와 '억빠'를 동시에 짊어진 이영지는 자신에게 부과된 숙제를 슬기롭게 풀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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