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과 미국의 탄소장벽 강화는 우리 철강업계의 변화를 더욱 부채질한다. 유럽의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와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은 환경규제의 탈을 쓴 무역규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중립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방지법)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원료를 생산해서는 수출이 어렵다. 현지화가 꼭 필요하다.
본업인 제철사업에선 수소환원제철 등 새로운 공법을 도입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연료(환원제)로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기법이다. 탄소배출이 제로에 가까운 친환경 기술이지만 다양한 기술개발과 상용화 과정이 남아있다. 포스코는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글로벌 철강사들과 힘을 합쳐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 중이다.
현대제철은 특히 수소를 중심에 둔 새로운 철강생산 체제를 하이큐브(Hy-Cube)로 이름붙였다. 수소환원제철은 물론 별도의 탄소중립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융합형 생산체제다. 공정에서 수소사용량을 늘리는 한편 탄소배출량을 줄인 신형 전기로를 활용, 탄소중립에 근접한 자동차용 철강재를 만든다.
동국제강도 순환형·저탄소를 키워드로 에코팩토리(Eco Factory) 구축에 들어갔다. 친환경 제품 생산 확대가 핵심이다. 친환경 전기로 제강의 이점을 기반으로 스크랩 조업 연구, 카본 대체 기술 등을 추가 개발하고 있다. 이른바 하이퍼 전기로·신재생 전력 공급망 구축을 통해 중장기적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철강업계는 차분히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쉬운 도전은 아니다. 오래도록 석탄과 전기를 활용해 쇠를 녹이고 쇳물을 생산해 온 철강업 구조를 감안할 때 탄소를 배출하지 말라는 주문은 사실상 사업기반을 밑바닥부터 뜯어고치라는 얘기와 같다. 기업의 일반적인 혁신 이상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작업이다.
업계는 각 철강사들의 노력에 더해 정부 차원의 전폭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부담을 줄여주는 한편 우수 인력 육성 지원도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강은 전체 산업 밸류체인의 근간이지만 사실상 우수인력 육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철강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신기술 개발과 공정 연구를 위해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하며, 경쟁력 있는 철강 전문 인력도 육성해야 한다"며 "투자비용 부담을 줄이고 고가의 수소를 원료로 사용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그린펀드 등 다양한 정책지원을 정부가 꼭 고민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