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칫돈 들어오던 황금기 잊어라"…투자전문가의 답 "회수가 핵심"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정기종 기자, 박미리 기자 2023.01.0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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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미래산업? 바이오 생태계 무너진다…해법은④

편집자주 바이오가 흔들린다. 시장가치는 급락했고 자본시장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 특히 생태계의 한 축인 바이오벤처는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노출됐다. 직원 월급이 밀리고 자산을 팔고 급기야 법인을 청산하는 사례도 나온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은 주도권 다툼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산업의 뿌리인 기술 벤처가 살아야 바이오가 산다. 새해 바이오벤처는 다시 미래산업의 총아로 우뚝 설 수 있을까.

"뭉칫돈 들어오던 황금기 잊어라"…투자전문가의 답 "회수가 핵심"


새해 바이오에 대한 투자 수요는 살아날까. 머니투데이는 국내 대표 바이오 투자 전문가들에게 새해 전망 등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된 이유로 전 세계적 금융시장 불확실성 외에 일부 기업의 연구 실패와 도덕적 해이,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 부재 등을 꼽는다. 특히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시장 환경도 바이오 투자 수요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 세계적 금리인상으로 대표적 성장 산업인 바이오에 대한 투자 수요가 자연스레 위축된 측면도 있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과정에서 바이오에 대한 시장의 과도한 기대로 잔뜩 거품이 꼈다 제자리를 찾는 중이란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최근 바이오에 대한 밸류에이션은 어느 정도 바닥에 다다랐단 평가도 적지 않다. 의미 있는 신약 개발 연구 성과나 기술수출 성과가 뒷받침된다면 바이오에 대한 투자 심리가 회복될 수 있단 기대 역시 여전하다. 2022년 에이비엘바이오, 레고켐바이오가 각각 연초와 연말 1조원 이상 규모의 기술수출에 성공하며 K-바이오의 저력을 뽐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바이오벤처의 유동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투자금 회수가 보다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IPO(기업공개) 시장 회복을 꼽는다. IPO 시장에서 바이오에 대한 투자심리가 살아나고 더 많은 바이오가 코스닥에 상장하며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해야 이 돈이 다시 바이오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바이오 IPO가 쉽지 않아 엑시트의 한 축이 무너진 상태다.

또 투자를 받으려는 바이오와 투자를 하려는 투자사의 눈높이 미스매치. 즉 밸류에이션 격차를 좁히기 위한 업계의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일부 바이오 기업 오너나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도 고쳐야 한다. 일각에선 바이오벤처가 연구를 위한 투자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필요 이상의 자금을 낭비하는 사례를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를 기만해 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바이오 기업 때문에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게 아니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바이오벤처, 시장 외면 받는 이유는?
전문가들은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 수요가 위축된 이유로 일부 기업의 모럴해저드에 따른 시장 신뢰 하락, 꽉 막힌 엑시트로 인한 자금 흐름 위축을 주로 꼽는다.

그동안 코스닥이나 장외 시장에서 다수의 바이오벤처가 실제 실력과 무관하게 분위기에 편승해 고평가를 받은 측면도 있다. 이 같은 시장 환경이 부메랑이 돼 바이오가 유독 철저하게 투자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냔 분석도 나온다.

이승호 데일리파트너스 대표는 "코스닥 바이오 중 상장폐지 위기를 겪은 기업들이 있었고, 임상 실패나 직원 횡령 사건 등으로 바이오 스스로 전반적으로 투자자 신뢰를 훼손한 측면이 있다"며 "팬데믹 때 많은 바이오 기업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선언했지만, 진단 외에 약속을 지킨 기업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투자자들은 IPO나 M&A(인수합병)로 투자금을 회수해야 다시 투자를 진행하는데 회수 시장이 막히면서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수요가 급감했다"며 "글로벌 주식시장의 유동성 축소와 금리인상 등 미래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를 주저하는 경향도 있다"고 진단했다.

구영권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대표 역시 "투자자 입장에선 엑시트 시장이 악화하면서 투자 자체를 계속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며 "바이오 회사는 기술성평가를 통해 코스닥에 상장해야 하는데, 최근 기술성평가 제도에 대해 시장 불신이 커지면서 IPO를 통한 엑시트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새해 바이오 투자수요 살아날까
"뭉칫돈 들어오던 황금기 잊어라"…투자전문가의 답 "회수가 핵심"
새해 바이오 투자 심리는 개선될까.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새해 바이오에 대한 투자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긴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새해 하반기부터 바이오를 포함한 성장 업종의 주가 회복이 일부 기대된단 평가도 나왔다.

또 전 세계 바이오 산업 전반적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물질의 도입과 연구개발 등으로 시장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기회를 잘 포착하는 기업이 각광 받을 것이란 분석도 눈에 띈다.

구 대표는 "주식시장은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이 6개월 간격으로 반복된다면, 벤처 투자 시장은 20년 사이클로 본다"며 "기본적으로 바이오벤처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활황이었을 때와 비교해 상상도 못 할 만큼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고금리 환경에선 바이오 펀드에 출자하는 기업이나 벤처캐피탈 등이 이자율 영향으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며 "바이오가 IPO를 수월하게 못하니 추가적으로 펀딩이 어려워지고 재투자가 막히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데 마땅히 눈에 띄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과거와 같이 바이오벤처를 창업만 하면 당연히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시장 환경은 상당히 오랜 기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새해 하반기부터 바이오를 포함한 성장주의 주가 회복이 일정 부분 기대되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투자를 받는 기업에만 자금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표는 "새해 바이오 벤처가 좋을 거라고 보기 힘들다"며 "하지만 차세대 항체에 대한 좋은 임상 결과, 휴미라라는 세계 최대 의약품의 특허 만료, 더 빠르게 진행되는 기술 혁신 등은 바이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당장 새해 바이오벤처의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이야긴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글로벌 바이오 산업 지형 변화를 보면 펀더멘털(기초체력)은 상당히 좋아졌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는 기업엔 큰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벤처 살아나려면…
바이오벤처가 살아나려면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예전 너도나도 바이오벤처에 뭉칫돈을 들고 찾아와 투자하던 때를 잊고, 낮아진 기업가치 등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바이오 IPO가 늘어나며 투자와 투자금 회수, 재투자의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정부 차원의 정책 펀드 예산 확대를 통한 벤처 생태계 기여, 투자기관 간 거래를 뜻하는 세컨더리 마켓 활성화 등도 필요하다.

이 외에 국내 바이오벤처의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도입한 글로벌 제약사가 후속 연구를 통해 임상시험이나 상업화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낸다면 바이오 부활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황 대표는 "바이오벤처는 과거의 장밋빛 세상을 잊고 보수적인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기존 투자자와 관계를 더 공고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인력, 특허, 데이터라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책적으로 바이오나 AI(인공지능), 2차전지 등 성장 업종에 대한 주식시장의 공매도 제한 등 조치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며 "IPO 과정에서 밸류에이션은 시장에 맡기되 거래소에서 바이오의 코스닥 상장 문턱을 조금 낮추면 좋겠단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여러 바이오벤처가 지금 자금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R&D(연구개발) 방식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며 "무조건 해외에서 임상하겠다거나 2~3개 파이프라인을 모두 끌고가겠단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체력이 안 되는데 한 번에 여러 파이프라인을 갖고 모두 해외로 갈 수 없다"며 "한국에서 인종적 편차가 적은 적응증으로 임상을 설계하고 성공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지 무조건 글로벌 임상이 좋다고 도전하면 버티기 힘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회사 운영비용 절감과 함께 정부 과제에 선정돼 보조금을 받는 식으로 회사를 유지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바이오의 IPO나 M&A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금융이나 세제 혜택 같은 정책적 배려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또 다른 방법으로 투자기관 간 바이오 지분 거래 등 세컨더리 마켓을 조성하기 위한 출자 사업을 확대한다거나 정책 자금이 투입돼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모태펀드나 성장금융 등 정책 펀드 예산을 확대하면 바이오뿐 아니라 전반적인 벤처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정부 출자가 줄면서 투자기관들이 투자에 소극적인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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